경제

[음재훈의 실리콘밸리 인사이더] 테크주 폭락했지만… 아마존처럼 기회 잡는 기업 또 나온다

최만섭 2022. 2. 15. 04:59

[음재훈의 실리콘밸리 인사이더] 테크주 폭락했지만… 아마존처럼 기회 잡는 기업 또 나온다

2001년 버블 붕괴로 닷컴기업 99% 파산… 살아남은 기업은 대성공
실리콘밸리의 힘은 긍정적 사고… 창업자·투자자들 “오히려 기회”
흉년이든 풍년이든 씨앗 뿌리는 농부처럼 스타트업 투자도 꾸준해야

음재훈실리콘밸리 벤처투자가
입력 2022.02.15 03:00
 
 

최근 수년간 급성장해 온 테크주(株)가 올 들어 전반적으로 폭락하고 있다. 최고점 대비 50% 이상 떨어진 트위터(Twitter)를 비롯해 20% 이상 하락한 업체가 수십 곳이다. 한국 뉴스를 보면 “서학 개미들 어쩌나?” 하는 걱정부터, 실리콘밸리는 괜찮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올해로 25년째를 맞는 필자는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2001년 닷컴 거품 붕괴, 2008년 부동산 거품 붕괴, 심지어 2020년 코로나 위기까지 겪으며 꽤 단련된 것 같다. 주식시장이 폭락하면 많은 업체가 파산하고 실직자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단기적으로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준다. 이는 실리콘밸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실리콘밸리에 대한 믿음이 더 크다.

지난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직후,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큰 위기를 맞았다. 당시 투자한 수많은 닷컴 스타트업은 물론, 상장사까지 부도가 날 정도였다. 벤처캐피털사들은 새 펀드 조성이 불가능해져, 기존 펀드로만으로 이미 투자한 업체들을 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재원이 부족한 투자사들은 이미 투자한 회사 중에서도 일부는 구하고, 일부는 버리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테크 업계의 많은 인재가 부도난 회사를 떠나 요식업, 부동산업 등 비(非)테크 분야로 전향했다. 당시 실리콘밸리가 하루아침에 전망이 불투명한, 어두운 곳으로 전락한 기억이 생생하다.

/일러스트=이철원

그때부터 불과 2~3년쯤 지나자 실리콘밸리는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창업자들은 꾸준히 스타트업을 세웠다. 닷컴 버블의 교훈을 되새기며, 맹목적 성장보다는 내실을 기했고 어렵게 모은 자금을 아껴 쓰며 시장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버텼다. 이때가 벤처캐피털에는 최고 기회였다. 정말 좋은 조건으로 싸게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2003년 삼성벤처투자 미국 사무소를 개소하고 미국 투자를 시작했는데, 당시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한 여러 업체가 결국 좋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실리콘밸리의 힘은 ‘긍정적 사고’다.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 무서울 정도로 ‘믿습니다’ 정신이 충만하다. 종교적 느낌마저 들 정도다. 여러 사이클을 겪어본 이들은 경제 위기가 오더라도 결국 버티면 시장이 돌아온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경제 위기가 오면 많은 이가 실리콘밸리를 떠나고 결국 확신이 있는 이들만 남는다. 여기에 창업 의지로 충만한 사람들이 새롭게 진입하며 이 믿음은 더욱 강해진다. 위기를 겪으며 ‘자연선택’이 이뤄지는 것이다. 심지어 ‘다음에 또 버블이 오면 꼭 기회를 잡겠다’며 다음 버블을 은근히 기대하는 이도 많다.

 

벤처 투자자들은 씨앗을 뿌리는 농부와 같다. 창업 초기 단계의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필자 역시 그중 한 명이다. 투자한 스타트업이 엑시트(exit·매각이나 상장 등을 통한 투자금 회수)하는 시점의 경제 상황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투자자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 밖인 만큼 아예 걱정을 하지 않는다. 농부가 추수 시점의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풍년일지 흉년일지 알 수 없어도 농부는 매년 꾸준히 씨앗을 뿌려야 한다. 올해가 흉년이라고 내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수년 후의 대풍(大豊)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도 닷컴 버블 등 산전수전을 겪으며 많이 진화했고 뿌리도 깊어졌다. 이젠 미국발(發) 테크주 폭락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다. 필자는 한국 생태계에서도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긍정적 사고, 종교적 수준의 믿음과 자신감을 느낀다. 실제로 코로나와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회를 엿보고 피벗(pivot·사업 방향 전환)을 시도해 크게 성장한 업체도 있다. 필자가 초기 투자한 한국신용데이터도 그중 하나다. 전국 소상공인 매장 70만여 곳이 도입한 매출 분석 시스템 ‘캐시노트’를 운영 중인데, 코로나가 확산하자 소상공인 긴급 자금 지원을 위한 데이터 분석 사업을 병행하며 더욱 성장했다.

닷컴 버블 당시 99% 이상의 닷컴 기업이 파산했다. 하지만 당시 살아남은 기업 중에 아마존이 있었던 것처럼,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성공하는 업체는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훗날 돌아보면 2022년 초의 테크주 버블 붕괴의 고비를 잘 넘기고 크게 성공하는 기업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여건에서 창업한 수많은 스타트업의 10년 후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