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여섯 살 꼬마들은 생일선물 대신, 가난한 친구의 ‘산타’가 돼주었습니다
[김민지의 런던 매일]
‘채리티 숍’만 9000개 달하는
세계서 둘째로 기부 많은 나라
얼마 전 저희 큰아이의 생일이었습니다. 파티에 초대하는 것도 참석하는 것도 기꺼운 마음이 되기 어려운 요즘이라, 생일이 비슷한 학교 아이들끼리 묶어 공동으로 생일 파티를 열어주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5번에 걸쳐 할 것을 한 번에 끝내자면서요. 11월, 12월생 다섯 아이들의 엄마가 의기투합해 계획을 세우던 중, 파티에 와주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지 않는 대신 아이들 이름으로 기부를 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제 막 여섯 살이 되는 어린아이들이 선물 상자가 없는 생일 파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나오긴 했지만, 아이들이 생일 선물로 어떤 좋아하는 장난감을 받아도 ‘나누는 즐거움’만큼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요.
영국이 깊고 오래된 자선의 전통을 가진 나라인 만큼, (영국에서 자선의 정의에 대한 기초는 1601년에 마련되었습니다) 이곳에 살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자선 활동을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재 영국의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한 달에 한 번 봉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인구의 절반 이상인 63%가 지난 1년 동안 자선 단체에 기부를 했고,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자선 상점이나 푸드 뱅크를 통해 판매할 수 있는 물품을 기부했습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자선구호재단 ‘Charity Aid Foundation(CAF)’의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전세계에서 미얀마를 제외하고 둘째로 기부를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기부 방법으로는 현금 기부가 가장 많지만 상품 구매, 모금 행사 등이 뒤를 이었는데요. 옥스팜, 영국 심장병 재단 등 나에게 필요 없어진 물품을 기부하고 그것들을 판매해 수익을 기부하는 채리티숍은 영국에 9000여 개로, 브랜드 상점이 즐비한 번화한 거리에서 그 상점들을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또한 매해 1000만 명 이상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어, 영국에서의 자선 활동은 교육, 건강, 사회 복지 같은 사회 시스템을 형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7년 상원 특별자선위원회에서는 자선 단체가 곧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눈, 귀, 양심이라는 선언이 나와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남을 위하는 행동은 대개 모든 곳에서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지요. 자신 소득의 10%를 주는 십일조와 재산의 2.5%를 주는 자카트의 개념이 있는 기독교와 유대교뿐만 아니라, 불교와 힌두교, 시크교에서도 관대함과 사랑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어 세계의 대중 종교 대부분은 이타성을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 결과는 우리가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것은 단지 이러한 가르침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을 도움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남을 돕는 행위에 대한 육체적·심리적 장점은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는데요. 이타적인 행동을 한 뒤에 찾아오는 들뜬 행복감은 ‘Helper’s high’라고 불립니다. 정신과 의사 오칸 우퍼크 이펙 (Okan Ufuk İpek)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도움의 크고 작음이나 금액의 높고 낮음과는 관련이 없이, 고립감과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과 더 깊은 유대관계를 맺게 해 더 높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비결은 바로 친절을 베풀고, 남을 돕고, 자선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요.
그날 저녁, 한 엄마가 채팅창에 짧은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이미 네 살 생일부터 환경 단체에 기부를 해오던 로사의 엄마였어요. 애들한테 설명하기엔 역시 영상이 최고라면서요. 어린이 구호 단체가 제작한 영상에는 깨끗한 물을 길어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오랜 시간을 걸어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집중해서 보다가 바닥에 고인 물을 마시려는 장면을 보고는 “안 돼! 엄마, 아기가 더러운 물을 마시고 있어!”라며 놀라더군요. 세상에는 물이나 먹을 것처럼 꼭 필요한 것들이 부족한 채로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우리는 다 연결돼 있어서 네가 원한다면 그 아이들한테 필요한 것들을 보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연우가 돕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내주면 그 친구들의 기뻐하는 마음이 연우한테로 돌아올 거야. 우리 이번에 생일 선물 받는 대신 그 아이들을 돕고 연우는 기쁜 마음을 받으면 어때?” 깨끗한 물을 마시고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 깨끗한 물을 마시네. 다행이네. 응 나 선물 안 받아도 돼. 친구한테 보낼래.”
다섯 아이들의 생일 파티가 끝나고 이벤트 계좌엔 715파운드(한화로 약 113만원)라는 금액이 모였습니다. 엄마들은 모아진 금액을 자선 단체에 보내고 증명서와 함께 배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다섯 아이들이 똑같은 무지개색 배지를 달고 함께 껴안고 웃는 모습은 우리 모두를 무척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아이도 그사이 훌쩍 큰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가 빠진 자리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이 마냥 개구쟁이 같더니 이제 다 큰 소녀가 된 것 같았습니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그 조그만 입만 열면 “내 거! 내 거! 다 내 거야!” 외치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요?
한참을 기특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아이가 쪼르르 다가와 귀에 대고 속닥거리는 말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엄마, 나 착한 아이지? 이거 산타 할아버지도 다 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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