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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양자암호망으로 세계 위협하는 中… 美는 기술 봉쇄로 맞서

최만섭 2021. 12. 16. 05:03

[최원석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양자암호망으로 세계 위협하는 中… 美는 기술 봉쇄로 맞서

미·중 양자기술 전쟁

 

입력 2021.12.16 03:00
 
 

미 상무부는 지난달 24일 미국 기업이 중국 8개 기업·연구소에 양자컴퓨팅 기술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주고받는 기밀통신 암호의 해독과 대(對)스텔스·대잠수함 기술 등 중국의 새로운 군사기술 개발을 막겠다”는 게 이유였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이 무역·반도체 제재를 넘어 양자기술로 확대되고 있다. 양자기술이 국가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팅으로 기존 암호를 전부 풀 수 있고, 양자암호통신기술은 절대 뚫리지 않는 보안 체계를 만들 수 있다. 미국은 양자컴퓨팅기술, 중국은 양자암호통신기술에서 각각 세계 1위다.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전 나토(NATO)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미·중 전쟁의 승패는 어느 쪽이 최고 기술을 갖고 있느냐에 좌우된다”며 “미국이 아직 앞섰지만, 중국이 인공지능·극초음속순항미사일, 신흥 분야인 양자컴퓨터에서 맹추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하경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중국이 아무리 날카로운 창(최고의 양자컴퓨팅)에도 뚫리지 않는 무적의 방패(양자암호통신망)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뛰어난 양자컴퓨팅 기술로도 최고의 양자암호통신을 해킹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21세기 첨단 정보전에서 중국이 우위를 점할 가능성마저 있다.

올해 1월 지상·위성을 포함한 중국의 4600km 세계 최대 양자암호통신망의 전모가 드러났다. 중국 양자기술을 선도하는 중국과학기술대학(USTC)이 네이처지 논문에 상세한 내용을 발표하면서다. 중국은 베이징에서 산둥성 지난(濟南), 안후이성 허페이(合肥)를 거쳐 상하이까지 핵심 도시를 연결하는 2000km 네트워크를 땅으로 연결했다. 중국은 이미 2016년 세계 최초 양자암호위성 ‘무쯔(墨子)’를 발사한 이래, 허베이성 싱룽(興隆)현과 선전(深圳) 난산(南山)구를 잇는 2600km 위성 네트워크도 가동 중이다. 이 네트워크는 신화통신·중국공상은행·중국국가전망공사(中國國家電網公司·SGCC) 등이 기밀 정보 송수신에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양자암호통신망 구축은 미국 입장에서 국가 안보 균형이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 현재 중국의 관련 특허는 3000건을 넘어, 미국의 2배 이상이다. 미국으로선 ‘제2의 스푸트니크 쇼크’였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면서, 우주·미사일 개발 리더로 자부하던 미국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 상황을 말한다. 2018년 미국은 중국의 위협에 맞서 ‘양자법’을 제정, 앞으로 4년간 12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백악관 직속 ‘국가양자조정실(NQCO)’도 설치했다.

세계 각국도 양자암호통신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2019년 네덜란드·독일 등 유럽 7국은 10년 내 유럽에 양자암호통신망을 구축하는 프로젝트 ‘유로 QCI(European Quantum Communication Infrastructure)’를 출범했다. 양자암호통신에서 중국·유럽에 뒤졌던 미국도 ‘포스트 양자암호’ 개발을 시작했다. 올해 양자암호통신 분야 예산도 배로 늘렸다.

양자암호통신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분야인 양자컴퓨팅에선 구글·IBM 등 미국 기업이 가장 앞섰다. 구글은 2019년 슈퍼컴이 1만 년 걸리는 문제를 양자컴퓨터로 3분 20초에 풀어 ‘양자 초월’ 즉 양자컴퓨터가 기존 수퍼컴의 성능을 월등히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 지난 5월 구글 개발자회의에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2029년까지 상업용 양자컴퓨터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양자컴퓨터 서비스 1위 IBM도 개발을 가속하고 있다. 현재 기업·단체130곳(사용자 30만명)에 양자컴퓨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양자컴퓨터의 연산 단위인 ‘큐비트(Qbit) 수를 현재의 65에서 2023년 1000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의 양자컴퓨팅 선도 기업으로는 구글·IBM 이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인텔·하니웰·아이온큐(IonQ)·리게티(Rigetti) 등이 있다.

중국은 ‘양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판젠웨이(潘建偉)의 주도로 중국 과학기술대가 2020년 양자컴퓨터 주장(九章)을 개발해 양자 초월을 달성했다. 올해는 계산 속도가 수퍼컴의 1000만배 이상인 양자컴퓨터 주충즈(祖沖之)까지 개발했다. 민간 기업에선 알리바바가 2015년 중국과학원과 양자계산실험실을 설립하고 2018년부터 클라우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중국은 2016년 5개년 계획에 양자컴퓨터를 국가 중대프로젝트로 넣고 개발을 강화해 왔다. 2000년 안후이(安徽)성에 중국과학원 산하의 양자기술 연구개발센터를 열고 1000억위안(약 19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조사회사 아스타뮤제에 따르면, 중국의 2009~2018년 양자컴퓨터 연구 투자비는 6억3000만달러(약 7500억원)로, 미국(10억6000만달러)을 맹추격하고 있다.

 

미국 조사 회사 IDC는 세계 양자컴퓨터 시장이 2020년 4억1200만달러에서 2027년 86억달러(약 10조1000억원)로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IDC에 따르면, 2021년은 양자컴퓨터산업의 전환점이다. 정부기관·투자사·기업 투자액은 2027년까지 164억달러(19조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한국, 최소 5년 失機”… 글로벌 양자경쟁에서 뒤처져]

美, 中 기술 봉쇄에 동맹 활용

양자동맹 체계에서 한국만 빠져

“5년 전에는 양자 투자와 계획을 세웠어야 합니다. 그 시기를 이미 놓쳤습니다.”

서울대 양자과학기술포럼 의장을 맡은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국내 양자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와 전문 인력이 경쟁국보다 턱없이 부족하다”며 “지금이라도 국제 협력 시스템에 참여하려면 빨리 국가 차원 전략을 수립하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양자과학기술 수준은 분야별로 세계 15~20위권으로 평가된다. 연구 커뮤니티도 아직 좁다. 투자도 걸음마 단계다. 미·중은 10년, 다른 주요국도 4~5년 전부터 국가 전략을 세웠지만, 한국은 지난달 16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양자기술특별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위원회는 ‘2030년대 양자기술 4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제시했으나, 현실과 차이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 정보통신기술 기술 수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양자기술은 최선도국 대비 81.3%, 특히 양자컴퓨팅은 71.8% 수준으로 타 정보통신기술(이동통신 97.8%, 인공지능 87.4%) 대비 현격히 낮다. 정부는 내년 양자기술 연구개발 예산으로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699억원(정부안, 전용사업 기준)을 편성했다. 이영민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는 “지금이라도 양자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하지만, 문제는 단기·정량평가에 익숙한 우리의 연구 관행”이라며 “국가 전략이나 인력 양성 면에서 수십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관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발이 늦은 한국이 양자기술을 만회하려면, 분야별 선택·집중, 미국을 비롯한 가치 공유·안보 동맹과 협력이 절실하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양자기술 논문 수 톱 5에 드는 독일·영국·일본과 협력하려 해도, 동맹 틀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양자기술이 안보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5~10년 뒤 정보통신 전쟁에서 한국만 눈뜨고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중국 양자컴퓨터·암호통신 굴기를 봉쇄하기 위해 안보 동맹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일·호주·인도가 참여하는 쿼드(Quad), 호주·영국·미국의 새 안보 동맹 오커스(AUKUS)에서 양자기술 협력을 통한 중국 봉쇄망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양자기술 글로벌 동맹의 협력체계에 한국만 빠져 있다.

양자(量子) 기술

원자 단위 이하 극소물질에 작용하는 양자역학을 활용하는 기술. 컴퓨터·암호통신·소재·센서·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파급력을 갖지만, 가장 주목받는 것이 양자컴퓨터다. 글로벌 조사회사 CB인사이트는 양자컴퓨팅이 바꿀 9개 분야로 의료·금융·사이버보안·암호화폐·인공지능·물류·제조설계·농업·안보를 꼽았다. 양자컴퓨터 외에도 도청 우려가 없는 암호통신은 실용 단계이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사용 않고도 위치를 알 수 있는 양자센서 등도 개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