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2021.10.23

집권기간 평균 9%대 고도성장… 서울올림픽·아시안게임 유치 성과

최만섭 2021. 11. 24. 04:09

 

집권기간 평균 9%대 고도성장… 서울올림픽·아시안게임 유치 성과

5공화국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21.11.24 03:00
 
23일 별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로 집권 기반을 마련했다. 그의 집권기(1980~1988년)는 정치적으론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고 인권을 탄압한 ‘철권통치’의 시대였지만,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과 물가 안정을 이루며 선진국 진입의 기반을 닦은 시기이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12·12 군사 반란에 이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하며 집권했다. 집권 중반을 지나며 곳곳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가 일어났지만 이를 강경 진압했다.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박종철·이한열 등 대학생들이 고문이나 시위 중에 숨졌다. 삼청교육대 운영은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로 꼽힌다. 정의 구현과 새 질서 확립을 명목으로 했지만, 일반인까지 무차별 구금했다.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같은 인권 유린도 발생했다.

제 11대 대통령 취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9월 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1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② 5·18 재판 참석 전 전 대통령이 1996년 2월 12·12 및 5·18 사건 첫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③ 자택 앞 골목성명 전 전 대통령이 1995년 12월 5·18 수사와 관련해 검찰 소환 요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④ 백담사 칩거 전 전 대통령 부부는 퇴임 후 국민 저항에 부딪히자 1988년 11월 강원 인제군 백담사로 은신하기도 했다. ⑤ 올 8월에도 법정에 전 전 대통령은 올해 8월 광주지법에서 열린 고(故)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2심 재판에 출석했다. /조선일보DB

신문·방송사가 통폐합되고, 보도 통제와 사전 검열로 언론도 암흑기였다.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을 개정해 외부로부터의 노동조합 설립 및 노동운동 지원을 전면 금지시켰다.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요구했지만, 그는 1987년 4·13 호헌 조치를 통해 이를 거부했다. 이런 비민주적 통치는 재임 내내 정통성 시비와 함께 국민의 저항을 불렀다.

퇴임 후에는 집권기 수천억원대 비자금 조성 비리와 5·18 유혈 진압에 대한 책임 문제가 불거졌다. 친구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5공 청산 청문회에 불려 나갔고, 백담사에 유폐됐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서는 재판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가 사면됐다.

반면 그의 집권기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경제정책에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고 전문가들에게 맡긴 결과 ‘경제성장’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이뤄냈다. 집권 초반 국내외 경제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1980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6%,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7%에 달했다. 경상수지는 적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실업률은 5.2%에 달했다. 1979년 석유 파동 여파도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 전문가를 발탁하고 이들에게 정책의 전권을 위임했다. 전 전 대통령이 당시 김 전 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전권을 맡겼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경제 참모들은 공산품 가격 인상을 억제했고, 수입 규제는 풀었다. 예산도 동결·긴축해 시중에 돈이 풀리는 것을 막으며 물가를 잡았다. 중화학공업에 대한 과잉·중복 투자도 정리해 거품을 제거했다. 그 결과 전 전 대통령 집권기에는 연평균 약 9%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집권 첫해인 1980년 1714달러이던 국민 1인당 GDP는 집권 마지막 해인 1988년 4754달러가 돼 2.8배로 늘었다. 부가 가치가 높은 자동차·전자·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로 인해 중산층이 두꺼워졌다. 다만 이런 경제적 성과의 이면에는 정경유착 등 각종 권력형 비리도 있었다. 재임 중 ‘통치 자금’ 명목으로 대기업들에서 약 7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재임 중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국가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강종합개발사업도 추진해 강변북로⋅올림픽대로 등을 확대 신설했다. 사회적으로는 야간 통행 금지를 풀고 과외 금지, 교복 자율화를 시행했다. 의료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도 했다. 또 프로야구 출범 등으로 사회에 개방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으려 했지만, 이는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 전 대통령 측은 그가 결과적으로 7년 단임 약속을 지켰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부를 평화적으로 후임에게 이양한 것은 우리 현대 정치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자평했다.

 
 
The Two Koreas correspondent & Author of "the Secret of Israel military forces(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