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2021.10.23

대법원 유죄에도 진압 정당성 주장… 5·18단체 “죽기전 사죄했어야”

최만섭 2021. 11. 24. 04:05

대법원 유죄에도 진압 정당성 주장… 5·18단체 “죽기전 사죄했어야”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논란

입력 2021.11.24 03:00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 논란을 생전에 해결하지 못했다. 피해자와 유족은 40여 년간 “유혈 진압의 직접적인 책임이 전 전 대통령에게 있다”며 사과와 반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이를 줄곧 부인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 명령과 관련, “자위권 발동 지시는 있었지만 발포 명령은 없었다”는 취지로 부인해왔다.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도 “전두환이 광주 유혈진압 명령에 관련한 것은 아니다”고 증언했었다. 국회 청문회, 검찰 수사, 국방부 과거사위 등의 숱한 조사·수사에서도 발포 명령자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발포 명령 문제는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광주 시민들과 5월 단체 등은 23일 “전 전 대통령이 죽기 전에 사죄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① 제 11대 대통령 취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9월 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1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② 5·18 재판 참석 전 전 대통령이 1996년 2월 12·12 및 5·18 사건 첫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③ 자택 앞 골목성명 전 전 대통령이 1995년 12월 5·18 수사와 관련해 검찰 소환 요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④ 백담사 칩거 전 전 대통령 부부는 퇴임 후 국민 저항에 부딪히자 1988년 11월 강원 인제군 백담사로 은신하기도 했다. ⑤ 올 8월에도 법정에 전 전 대통령은 올해 8월 광주지법에서 열린 고(故)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2심 재판에 출석했다. /조선일보DB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관련해 전 전 대통령이 면죄부를 받기는 어렵다. 그는 누가 뭐래도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실권자였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1997년 4월 12·12 및 5·18 사건 상고심에서 5·17과 5·18을 정권 찬탈과 내란 목적 살인으로 최종 판단하고 전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대법원은 5·18에 대해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는 일종의 협박 행위로 내란죄의 구성 요건인 폭동에 해당하고, 계엄군이 광주 시민의 정당한 시위 행위를 난폭하게 진압한 행위도 폭동”이라고 했다. 신군부 쿠데타 세력의 핵심이던 전 전 대통령의 포괄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남도청 무력 진압(5·27 상무충정작전)을 제외하고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 살인 행위는 무죄로 판단했다. 원심에서 “피고인 전두환 등이 자위권 발동 지시에 관여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발포 명령이 계엄군에 하달됐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 “피해자들의 사망은 계엄군이 포괄적인 발포 명령을 집행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을 받아들였다. 광주역 첫 발포(5월 20일)와 전남도청 집단 발포(5월 21일)에 대해선 내란 목적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22일 사면·복권된 뒤에도 진압의 정당성을 줄곧 주장했다. 2003년 한 방송 인터뷰에서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고 했고,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도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했다. 유혈 진압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 것이다.

발포 명령자를 찾는 것 외에 행방불명자 재조사, 암매장 장소 확인 등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으로, 이 가운데 6명은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최근에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 의혹과 전투기 무장 출격 대기 의혹도 불거졌다. 작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5·18 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전씨가 죽더라도 5·18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영훈 5·18 유공자유족회장은 “사죄나 고백 없이 사망한 데 대해 안타까움이 크다”고 말했다.

 

 
 
 
사회부 지방취재본부 소속으로 광주와 전남 일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