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한삼희의 환경칼럼] ‘2050 탄소중립案’ 짜면서 비용은 생각도 안해봤다니

최만섭 2021. 9. 15. 05:21

[한삼희의 환경칼럼] ‘2050 탄소중립案’ 짜면서 비용은 생각도 안해봤다니

코로나로 작년에 줄어든
세계 온실가스 겨우 7%
그런 고통 30년 이어가야
탄소중립 가능한데
위원회는 비용 계산 없이
‘신재생으로 에너지 70%’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입력 2021.09.15 00:00

 

 

 

 

 

 

 

 

지난 5월 29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체중 288g으로 태어났던 초미숙아가 다섯 달의 집중 치료 끝에 며칠 전 퇴원해 부모 품에 안겼다. 어느 언론은 ‘사과보다 가벼웠던’이라고 표현했다. 뉴스를 보면서 12년 전 서강대 이덕환 교수가 했던 강연이 생각났다. 이 교수는 당시 500g도 안 되는 미숙아가 태어났다면서 “기적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2년 더 살면 수명이 1년씩 늘어나는 시대’라고도 했다. 12년 전 500g이었던 기적의 한계가 288g까지 낮아졌다.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다.

제인 구달의 제자였던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가 1990년대 말 ‘요리 가설’을 내놨다. 인간의 두뇌 진화는 180만년 전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발동이 걸렸다. 침팬지는 하루 온종일 뭔가 우물우물 씹으면서 보낸다. 단단한 줄기·뿌리나 날고기 같은 것은 위나 장(腸)에서 잘 소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은 불에 굽거나 익혀 먹을 줄 알게 되면서 많은 영양분을 뇌로 보낼 여력을 갖게 됐다. 사람 뇌 조직은 몸무게의 2.5%밖에 안 되지만 기초대사량의 20~25%를 소모한다. 2012년 브라질의 뇌신경 학자가 세어봤더니 고릴라의 신경세포는 330억개인데 사람은 860억개였다. 불로 요리를 하게 되면서 커진 두뇌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루 종일 먹을 걸 찾아다녀야 한다면 수학이나 철학을 연구하고 예술 활동을 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200년 전 지층에 수억 년 축적된 고밀도 화석연료를 끄집어내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때부터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현대 미국인은 원시 인간의 100명 분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 잉여 생산력을 갖고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전문 집단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의대생들이 10년을 공부에 투자할 수 있는 것도 사회의 생산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얘기했듯, 200년의 과학 기술 진보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너무 많이 먹어 죽는 사람이 못 먹어 죽는 사람보다 많고, 늙어 죽는 사람이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군인·테러범·범죄자 손에 죽는 사람보다 많게 됐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일 것이다. 되돌릴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하다. 산업혁명의 혁신적 생산성 향상으로 인간은 여분의 시간을 갖게 됐다. 지구 반대편 오지까지 여행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탄생시키고, 실험과 연구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발전시킨 과학기술로 고밀도 생활 공간인 도시를 건설하면서 국립공원 같은 자연보호 구역을 설정할 수 있게 됐고, 비료·농약의 농업 혁명으로 숲 생태계를 보호할 공간적 여유도 갖게 됐다. 이덕환 교수는 12년 전 강의에서 민주주의도 과학기술 덕에 가능해졌다고 했다. 소수 지배계급이 다수를 노비·노예로 착취하지 않아도 모두 함께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경제 자원이 되면서 전쟁이 사라질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점령해봐야 약탈해갈 실리콘 광산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가 2050 탄소 중립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러려면 30년 동안 매년 7%씩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가야 한다. 작년에 마침 세계 배출량이 7% 줄었는데, 코로나 때문이었다. 그러느라 겪은 고통은 너무나 컸다. 그걸 30년 동안 연속 겪는다고 생각해보라. 탄소 중립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과제다.

미래의 기후 도전에 대처하려면 가능한 지식 자원을 다 동원해야 할 것이다. 어떤 기술도 배척하지 않고 각국 형편에 맞게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국토가 넓고 태양이 내리쬐는 나라라면 태양광이, 바람 자원이 넉넉하면 풍력을 하면 된다. 우리는 국토가 좁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은 인간 두뇌가 궁극의 자원(Ultimate Resource)이라고 했다. 1956년 미국 워커 시슬러 에디슨 전기 회사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원자력 연구를 권하면서 “원자력은 두뇌에서 캐는 에너지”라고 했다. 30년간 원자력을 배척했던 이탈리아의 환경장관이 얼마 전 소듐고속로·초고온가스로·소형모듈원전 등의 4세대 원전 기술을 활용하자고 호소했다. 그는 고밀도 에너지가 환경을 지켜준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지식이 자원인 시대에, 국토가 좁은 나라가 스스로 기술의 선택 폭을 좁혀 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달 태양광·풍력 비중을 56~71%로 늘리고 원자력은 6~7%로 억제한다는 2050 탄소중립안(案)을 발표하면서 “소요 비용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대안이 국민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아예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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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 선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