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단독] 충북동지회, 김정은에 혈서 썼다…"원수님의 전사"

최만섭 2021. 8. 7. 12:58

[단독] 충북동지회, 김정은에 혈서 썼다…"원수님의 전사"

[중앙일보] 입력 2021.08.07 02:00 수정 2021.08.07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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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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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은 인터넷 언론사 대표가 운영하던 매체 홈페이지 메인 화면. 현재는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홈페이지 캡처]

북한의 지령에 따라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 반대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 충북 활동가 손모(47)씨 등 4명이 ‘원수님의 전사로 살자’는 등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피로 써 충성을 맹세한 혈서(血書) 내용이 확인됐다.
 

충북동지회’ USB 혈서·지령·보고 84건 내용은

이들의 구속영장 신청서에는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적대행위 중단을 선언한 이튿날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조와 접선해 “군부대 정보 수집” 지령을 받았다는 내용도 담겼다. 국가정보원과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5월 27일 압수한 휴대용 저장장치(USB) 안에서 이들이 북한 공작원과 주고받은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혈서 등 84건을 찾아내면서다.
 

“적대중단” 판문점선언 이튿날 北공작원 “군부대 정보수집” 지령

6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 등은 손씨 등 4명에 대한 영장 신청서에 김 위원장(조선노동당 총비서)을 향해 “영명한 우리 원수님! 만수무강하시라!”(A씨), “위대한 원수님의 영도, 충북 결사옹위 결사관철”(B씨),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원수님과 함께”(C씨), “원수님의 충직한 전사로 살자”(손씨)라며 혈서로 맹세한 내용을 포함했다.
 
혈서는 구속된 A씨가 지난 2017년 5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조모씨를 만나 “충북지역에 북한의 전위 지하 조직을 결성하라”는 지령을 받고 돌아온 약 석 달 뒤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충북동지회)’를 결성한 직후 썼다고 한다. 이들은 같은 해 8월 13일 청주 모처에서 조직을 결성하고 8월 15일 ‘충북동지회 결성대회 정형’(상황)이란 제목의 대북 보고문에 혈서 사진을 함께 보고했다.
 
수사기관은 영장 신청서에 북한의 ‘지하당 공작’의 일환으로 합법정당 민중당 내부 동향(국가기밀)을 수집해 보고한 간첩 혐의를 포함해 ‘충북동지회’관련 혐의를 낱낱히 기술했다. 이에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4조), 금품수수(5조), 잠입탈출(6조), 찬양고무(7조), 회합통신(8조) 혐의 등을 모두 적용했다.
 
A씨가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난 건 앞서 이들 4명이 2017년 대선 직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노동특보단 명의로 문 후보 공개 지지 선언(5월 4일)한 17일 뒤, 문재인 대통령 당선(5월 9일)으로부터는 12일 후였다.
 
문 정부 출범 한 달 뒤(2017년 6월 24일)에는 북한으로부터 “진보운동 세력이 문재인 정권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좌왕우왕(우왕좌왕)하고 있다”며 “추진 중인 사업들을 구체적으로 보고해달라”는 지령문을 받았다.
 
이듬해 4월 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적대행위 전면 중지’ 등 판문점선언을 채택한 다음 날인 4월 28일 B씨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북한 공작원 리모씨와 조씨 등을 만나 ‘충북위수사령부 37사단 정보수집’ ‘모 대기업 사업장 현장 재침투’ ‘내국인 신원정보 수집’ 등 지령을 받고 5월 1일 국내에 다시 잠입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 4명 중 최소 3명은 2017 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노동특보단으로 임명돼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또 일부는 지역 언론사를 운영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北지령문 “민중당 강화·발전” 60명 포섭대상 언급…‘간첩죄’ 적용

이들은 충북동지회 결성 직후 조직 체계와 세부 임무 분담 내용도 북한에 보고했다. ▶A씨는 ‘고문’으로 사상교양 사업과 조직 생활지도 ▶손씨가 ‘위원장’으로 모 대기업의 지역 노동 현장에서 조직 건설 ▶‘부위원장’ B씨는 민중당(현 진보당) 내부에 산하당 구축 ▶C씨는 ‘연락담당’으로 본사(북한)와 연락 및 조직의 중국 재정거점 마련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충북동지회는 ‘수령방침의 혁명적 관철’ 등 이른바 북한의 3대 혁명규율을 준수하는 등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하당 조직 운영체계와도 유사하다는 것이 국정원 등의 수사 결과다.
 
특히 이들 전원에 ‘간첩죄’로 불리는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혐의(4조)도 적용했다. 합법정당인 민중당의 의사결정 과정 등 내부 동향을 탐지‧수집하고 민중당 및 시민단체 간부 등 ‘포섭대상자’로 지목된 이들의 신상을 파악해 북한에 보고했기 때문이다.
 
실제 민중당 충북도당 간부 2명의 구체적인 신원 및 사상 동향을 보고하는 등 지령문·보고문에 포섭대상 또는 통일전선 대상으로 언급된 내국인만 약 60명에 이르고, 이중 북한이 직접 포섭을 시도한 인물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이런 민중당 내부 동향 및 간부 동향 보고는 “대한민국의 안전에 직·간접적인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 국가기밀에 해당한다”는 게 국정원 등의 판단이다. 지극히 한정된 사람만 알고 있는 정당 내부 정보나 인사들의 개인정보를 북한이 인지할 경우 대남공작의 전략‧전술을 수립하는데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이같은 대북 보고문이 북한 문화교류국이 지난 2018년 충북동지회에 “민중당을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 “민중당 안에 산하당 조직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을 면밀히 하라”는 취지의 지령을 이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영장 신청서에는 2020년 4월 5일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총선의 기본 목표를 친미우익 보수세력을 확고히 제압하고, 진보민주 개혁세력이 압도적 승리를 이룩하는 것과 함께 합법적 진보 정당인 민중당의 조직 사상적‧대중적 지반을 더욱 공고히 다지며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 확대해나가는 것”이라고 적힌 암호화 파일을 받은 내용도 나온다.
 

2일 오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구속영장심사를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휴대폰 바꾸고, 은어로 메모해라” 北 보안수칙 하달

이번에 혈서를 포함해 북한 지령문·보고문을 무더기로 확보한 건 5월 27일 압수수색에서 B씨의 자택 이불 사이에서 봉투‧은박지 등 4중으로 밀봉한 USB(64GB)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USB에는 2017년 6월~2021년 5월 3년간 북한 공작조와 주고받은 지령문과 보고문 84건이 암호화 파일 형태로 저장돼 있었다.
 
국정원 등은 이를 “그동안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분량”이라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은 이들의 범행이 ‘은밀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중요 내용은 은어로 메모하고 철저히 삭제 ▶교체주기는 컴퓨터 3년, 메일‧모뎀‧심카드 6개월 등으로 보안 수칙까지 북한에서 하달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신사장’(손모씨), ‘A사장’ ‘B사장’ ‘C부장’ 등으로 부르면서 대북 통신용 암호화 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프로그램을 이용해 북한 문화교류국과 연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령문·보고문 파일(docx)들을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C씨가 2019년 11월 중국 선양에서 공작금 2만달러(한화 약 2270만원)를 받을 때도 무인함을 이용하고 동선에 아들 학업 관련 상담 절차를 추가하는 등 감시망을 피하려 애썼다는게 수사기관의 판단이다. B씨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고 돌아온 뒤인 2018년 6월과 8월 C씨가 서울 명동 사설 환전소에서 별도로 2만 달러를 환전한 사실을 확인해 추가 공작금을 수령한 것으로도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 등은 4명 중 A씨 등 일부는 10~15년 전부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공작부서인 문화교류국(옛 225국) 공작원과 접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들이 2000년대 초부터 각각 중국만 10~35회 오가는 등 중국을 집중 방문한 사실 역시 문화교류국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이들과 접촉한 공작조 선임인 리모(61)씨는 1990년대 수차례 국내에 침투한 공로로 ‘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충북지부가 지난 1월 13일 배포한 제안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탄핵을 촉구하기 위한 광고비 모금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충북지부]

손씨 “충북동지회, 유령 조직…北공작원도 가공 인물”

하지만 손씨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 및 의견서를 통해 “동지회는 출처가 불분명하며 공안기관이 조작한 유령조직”이라며 “우리가 접촉했다는 북한 공작원 3명 역시 실제하지 않는 가공된 인물”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국정원과 국수본에서 가공한 조작의 전형이자 짜맞추기식 수사와 불법 사찰을 통한 불법 취득물의 결과”라며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목적수행 혐의를 받는 민중당 내부 동향 보고에 대해서도 “민중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된 활동이기 때문에 국가기밀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단독] 충북동지회, 김정은에 혈서 썼다…"원수님의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