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평균값이 11억인데… 상속세 공제는 24년째 10억
1997년에 멈춘 상속세 부과 기준
입력 2021.05.06 03:00 | 수정 2021.05.06 03:00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서울 동작구에 사는 김모(42)씨는 지난해 말 부친상을 치른 뒤 지난달 상속세 1억원을 냈다. 시세가 10억원 정도인 서울 관악구의 공급면적 141㎡(43평) 아파트가 유일한 유산이었는데, 부자들만 낸다는 상속세를 내게 된 것이다.
상속세는 일반적인 일괄 공제의 경우 고인의 배우자 5억원, 자녀들 5억원 등 10억원을 제외하고 초과분만 과세한다. 일괄 공제 이외에도 기본 공제 2억원에 자녀 1명당 5000만원씩 공제받는 방식이 있지만, 대부분 공제 한도가 높은 일괄 공제를 선택한다.
김씨는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셔서 10억원에서 자녀 공제 5억원만 빼고 나머지 5억원에 대해 20%의 세율로 상속세를 냈다. 5년 전만 해도 5억원이었던 아파트 가격이 2배로 뛰었기 때문이다. 상속세는 시가를 기준으로 과세한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24년째 그대로인 상속세 과세 기준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97년에 만들어진 공제 한도 10억원은 작아져버린 옷처럼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무컨설팅 손무 신규환 대표세무사는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이 10억원을 넘어서면서 집 한 채 물려받은 보통 사람들도 부자를 타깃으로 도입된 상속세 대상이 됐다”며 “집값은 폭등했는데 20년 넘은 기준을 유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
늘어나는 상속세 납부 대상과 할부 납부 신청
◇유족이 상속세 낸 사망자 숫자 10배 늘어
5일 국세청에 따르면, 현행 상속세 공제 한도는 1996년 12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개정돼 1997년 1월 1일 이후 사망자부터 적용됐다. 개정 직전인 1995년에 상속 재산이 10억원을 넘어 유족들이 상속세를 납부한 사망자는 739명에 불과했다. 24년이 지난 2019년의 경우는 8357명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대표적인 상속 재산인 주택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집값이 더 올랐기 때문에 상속세 대상자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국세청은 예상한다.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1억1123만원이다. 2년 전인 2019년 4월(8억1131만원)에 비해 37%나 올랐다. 이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08년 12월(5억2530만원)과 비교하면 2배 넘게 올랐다.
예상하지 못한 상속세 부담을 지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상속세 할부·납부 신청도 2010년 1989명(사망자 기준)에서 2019년 4151명으로 늘었다. 납부기한(6개월) 후 2개월 이내에 이자 없이 두 차례에 걸쳐 상속세를 나눠 내는 분납이 2745명, 연리 1.2%로 5년간 나눠 내는 연부연납은 1406명이었다.
◇24년 전 10억···압구정동 65평 가격
1997년의 10억원은 중산층 가족의 재산과는 거리가 한참 먼 금액이었다. 그해 1월 국세청이 고액 부동산 자산가 특별 세무조사에 나섰는데 기준 금액이 10억원 이상이었다.
당시 신문 매각 공고 등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대지면적 281㎡(85평)인 4층짜리 건물 시세가 10억원이었고, 아파트 가운데 시세가 10억원인 경우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215㎡(65평) 등 극소수였다. 지금은 서울 마포구 114㎡(34평) 아파트 전세가다. 현재 압구정 현대아파트 65평 매매가는 65억원쯤 된다.
1997년 1월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13~17명의 선수가 소속돼 있는 프로농구팀의 연봉 총액 상한선(샐러리 캡)을 10억원으로 정했었는데, 지금은 유명 선수 1명의 연봉이 그 정도 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상속세를 담당하는 일선 세무서의 재산세제과가 과거에는 일이 별로 없는 부서였는데, 최근 상속세 신고가 늘면서 일이 고된 기피 부서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전문가 “물가 반영해 현실화해야”
물가 변화에 맞춰 상속세 기준 금액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정부와 국회는 “부의 대물림을 방지하고,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개정에 나서지 않았다. “상속세 내는 부자들 편든다”는 소리를 들을까 싶어 뒷짐을 지고 있었던 셈이다.
신규환 세무사는 “서울 금천구의 82㎡(25평) 아파트를 상속받아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상속세 상담은 세무사가 최소 수백만원 수수료를 받는 고액 상담이라 과거에는 고급차를 타고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엔 쏘나타를 타고 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과세 기준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해 상속세만이 아니라 소득세, 법인세 등 전반적인 과세 기준 점검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2009년부터 13년째 유지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공시가격 9억원 초과) 등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공제한도 금액이 큰 데다 물가 상승을 반영해 매년 기준 금액을 정하고 있다. 현행 공제한도는 1000만달러(약 112억6000만원)이고, 지난해 사망자에게 적용된 상속세 면세 한도는 1158만달러(약 130억4000만원)였다.
정석우 기자
기획재정부,국세청 등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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