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빌보드 점령한 이 남자는 ‘밀양 박씨’
지난주 빌보드 1위 오른 앤더슨 팩, 3년간 받은 그래미 트로피만 4개
입력 2021.04.24 03:00 | 수정 2021.04.24 03:00
LOS ANGELES, CA - FEBRUARY 10: Anderson .Paak (L) and guest pose in the press room during the 61st Annual GRAMMY Awards at Staples Center on February 10, 2019 in Los Angeles, California. (Photo by Alberto E. Rodriguez/Getty Images for The Recording Academy)
“밀양 박씨가 미 그래미뿐 아니라 빌보드까지 점령했다.”
지난주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밴드 ‘실크 소닉’의 곡 ‘리브 더 도어 오픈(Leave the door open)’이 오르자 국내 네티즌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기다. ‘실크 소닉’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잘나가는 힙합 가수”라고 평가받는 앤더슨 팩(Paak·35)과 알앤비 가수 브루노 마스가 결성한 밴드다. 팩은 지난 3월 미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멜로디 랩 퍼포먼스’상을 받는 등 2019년부터 그래미 트로피만 네 개를 받았다. 이번에 빌보드 1위까지 차지하자, 국내 팬들이 “밀양 박씨 최고의 인물”이라며 환호하고 있다.
팩이 ‘밀양 박씨’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는 그의 가정사에 있다. 그의 어머니는 6·25 전쟁고아였다. 한국인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군 사이에서 태어나 고아원에 버려졌고,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그때 행정상의 실수로 어머니 성이 ‘박(Park)’이 아니라 ‘팩(Paak)’으로 잘못 기재됐다.
그의 어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아버지와 결혼해 팩과 여동생을 낳았다. 하지만 마약 중독자인 아버지는 팩이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심하게 때리다 수감됐다. 그가 고등학생일 때에는 어머니가 도박을 하다 체포됐다.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굴곡진 삶을 살았던 영향일까. 그는 잘못 적힌 어머니의 성 ‘팩’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제이린 인스타그램
팩과 한국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술 고등학교에 다니며 혼자서 음악 공부를 했던 그는 음악 학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한국인 유학생 제이린(한국명 혜연)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정식 가수로 데뷔하기 전인 2011년 산타 바버라에 있는 마리화나 농장에서 일했는데, 어느 날 농장 주인이 그를 해고하면서 그의 가족은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며 “그러나 낙천적인 성격과 가족 덕분에 버텼다”고 했다.
미 로스앤젤레스 언더씬에서 ‘브리지 러브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그를 양지로 끌어올린 건 힙합 가수 샤피크 후세인이다. 팩은 “그는 내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했다. 나는 그의 작사와 프로듀싱을 도왔다. 그리고 거기서 내 첫 앨범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앤더슨 팩’으로 이름을 바꾸고 2014년 발표한 앨범 ‘베니스’가 힙합계의 전설 닥터 드레의 눈에 들면서 이듬해 닥터 드레의 소속사 ‘애프터 매스’와 계약했다. 2016년 발표한 앨범 ‘말리부’가 인디펜던트지 올해의 앨범 2위에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뒀고, 2018년 발표한 노래 ‘버블린’으로 첫 그래미상을 받는다. 그가 나이 서른이 넘어 거둔 성공이다.
팩에게는 한국인의 피가 4분의 1만 흐르지만, 언제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2015년 한국 가수 딘의 ‘풋 마이 핸드 온 유’에 참여해 “샷 오브 더 참이슬/ 자기야 이리 와 빨리 와 가자” 등의 한국 랩을 선보였고, “김치찌개를 좋아해”라고 말하는 영상을 유튜브에도 올리기도 했다. 그의 첫째 아들 소울(Soul)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고, K팝 가수가 꿈이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단상에 함께 오른 소울이 아빠가 상 받는 건 신경도 안 쓴 채 방탄소년단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영상은 유튜브에서 화제였다. 팩은 에스콰이어 인터뷰에서 “늘 소울에게 ‘케이팝을 하려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어 랩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집에서는 늘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말한다”고 했다. 그는 이 잡지에서 그룹 방탄소년단과의 콜라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저는 그들과 접촉하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만약 당신이 방법을 안다면 알려주세요.”
이혜운 기자
음악과 음식, 넷플릭스 등 OTT를 담당하고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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