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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선수 심정… 혼술로 자축”

최만섭 2021. 3. 17. 05:37

“올림픽 선수 심정… 혼술로 자축”

‘미나리’ 윤여정, 한국 첫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박돈규 기자

입력 2021.03.17 03:00 | 수정 2021.03.17 03:00

 

 

 

 

 

일흔네 살이지만 청바지도 어울린다. 배우 윤여정은 “수상을 바라실 텐데 한 작품을 여러 배우들이 연기해 등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기에 후보 지명만으로도 상을 탄 거나 같다”며 “이제 여유가 생겼는지 뭘 원망하기보다는 감사하게 된다”고 했다. /후크엔터테인먼트

‘미나리’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에게 윤여정(74)이 던진 질문은 딱 하나였다. “정 감독 할머니랑 똑같이 할까?” 자전적 경험을 시나리오로 옮긴 정 감독은 “마음껏 창조해도 된다”고 답했다. 윤여정은 최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실 전형적인 할머니나 엄마만큼은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배우가 한 일은 평생 그런 전형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었다.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은 출발부터 전형적이지 않았다. 대학 신입생 때 방송국에서 선물을 전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배우를 해보라”(김동건 아나운서)는 권유를 받았다. 1966년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통과했고 첫 배역은 8·15 특집극에서 ‘엇나가는’ 재일교포 아이였다. 1969년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을 악녀로 연기하자 대중이 알아봤다. 거리에서 “나쁜 Χ”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윤여정은 “연기에 대한 칭찬보다는 돈을 꽤 많이 줘 ‘어머, 이거 해야지’ 했다”고 술회했다.

영화 데뷔는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 김기영이 얼마나 유명한 감독인지도 몰랐단다. “어떤 아저씨가 만나자고 해서 갔는데 그분도 당황했을 거예요. 자기는 김기영인데 제가 전혀 모르니깐(웃음). 당시 들어온 시나리오들은 사랑하다 죽거나 삼각관계 같은 뻔한 이야기들이었는데 ‘화녀’는 달라서 끌렸지요.”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윤여정은 “김기영 감독은 대단한 리얼리티를 끌어내려 했고, 당하는 나는 스물서너 살 때라서 괴로웠다”며 덧붙였다. “최근 저와 영화를 하는 감독들은 김기영 덕을 본 수혜자들이에요. 벗으라면 벗고 입으라면 입고 그러잖아요(웃음).”

 

가수 조영남과 결혼 후 이혼했고 13년 만에 배우로 돌아왔다. 몇 년 전 tvN 예능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은 “예순을 넘어도 인생 몰라. 나도 67세가 처음이야”라며 웃었다. 요즘 ‘윤스테이’에서도 쿨하다. 농담을 많이 하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다. ‘미나리’는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한인 가족 이야기다. 윤여정은 “최고의 연기는 돈이 필요할 때 나온다”는 말로 뼈를 때렸다.

드라마 ‘파친코’(원작 이민진) 촬영 후 캐나다에서 귀국한 윤여정은 자가 격리 중 후보 지명 소식을 듣고 혼술을 했다. 16일 발표한 소감은 “응원이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올림픽 선수들의 심적 괴로움을 느꼈다”로 시작됐다. “이런 나이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후보만으로도 영광이고 최선을 다했기에 상을 탄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제 친구 이인아 PD에게 감사합니다. 어제 소식을 같이 들었는데 제 이름 알파벳이 Y 다 보니 끝에 호명되어 이 친구도 많이 떨고 발표 순간엔 저 대신 울더라고요. 지나온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네요.”

‘미나리’는 미국 영화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찍었다. 윤여정은 “대사 다듬는 것부터 밥짓는 것까지 현장에 찾아온 지인들이 그대로 눌러앉아 도움을 줬다”고 했다. “그렇게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지 않을, 기꺼이 비료가 되어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영화예요. 아마 한국인이라는 유대감 덕분에 가능했던 일 아닐까.”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올해 아카데미에서 여주조연상(윤여정)을 비롯해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화평론가 윤성은씨는 "여우조연상 부문은 다른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약해 윤여정의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판씨네마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