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403일의 기다림, 이제야 희망을 맞다

최만섭 2021. 2. 27. 10:07

403일의 기다림, 이제야 희망을 맞다

아스트라 백신 전국 접종 시작… 첫날 의료진 등 1만6813명 맞아

조홍복 기자

이준우 기자

입력 2021.02.27 03:00 | 수정 2021.02.27 03: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첫 날인 26일 오전 대구 북구 한솔요양병원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대구 첫 접종자인 황순구 원장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뉴시스

26일 전국 보건소와 요양병원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코로나 국내 확진자가 처음 나온 지 403일 만이고, 전 세계 나라 가운데 104번째 백신 접종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유럽 등보다는 두 달 정도 늦었지만 코로나에 대한 반격이 국내서도 시작됐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전후로 전국 보건소에선 65세 미만 요양병원·요양원 입소자·종사자를 대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또 전국 292개의 백신 보관 시설이 있는 요양병원에서도 자체 접종 계획을 세워 이날부터 접종에 들어갔다. 첫날 백신 접종자 수는 오후 6시 기준 1만6813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인천·포항 등에서 접종 후 어지러움 등을 호소해 병원에 이송되는 사례도 있었으나, 전반적인 접종 과정은 순조로웠다.

작년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 환자가 나오고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우리 사회를 덮친 뒤 백신 접종까지 고통은 길었다. 지난해 3월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질 땐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도 공적 마스크를 사기 위에 길게 줄을 늘어서야 했고(위 사진),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영업 타격이 심각했던 허희영 카페연합대표(중간)는 지난 5일 국회 앞 삭발 결의식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긴 기다림 끝에 26일 국내에서도 첫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이날 경기도 용인시 흥덕우리요양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있다(아래). /장련성·고운호 기자, 연합뉴스

국내 첫 백신 접종자는 서울 노원구 보건소에서 나왔다. 접종 공식 시작 시각인 오전 9시보다 15분 이른 8시 45분, 이경순(61) 상계요양원 요양보호사가 왼쪽 팔에 백신을 접종받았다. 이씨는 “1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불안했는데 맞으니까 안심이 된다”고 했다.

정부는 전 국민의 70%에게 백신을 맞혀 오는 11월 집단면역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자칫 백신 사고라도 나면 불신이 커지기 때문에 안전한 접종이 이뤄져야 하고, 기존 백신 효과를 떨어뜨리는 변이 바이러스 차단 방책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선 지역별 1호 접종자가 줄을 이었다. ‘광주광역시 1호’ 고숙(57) 광주보훈요양원장은 접종을 마친 뒤 ‘백신 접종과 함께하는 한 분 한 분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글귀가 적힌 꽃 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고 원장에 이어 요양원에서 8년째 생활하는 정진덕(57)씨가 휠체어를 타고 백신 주사를 맞으며 “코로나로 거의 1년간 생이별한 가족들과 어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전국의 1호 접종자들. 왼쪽부터 서울 요양보호사 이경순씨, 춘천 요양병원환자 김영선씨, 세종 요양병원 간호사 이하현씨, 충남 김미숙씨, 춘천 요양병원환자 김영선씨, 대구 한솔요양병원장 황순구씨, 광주 보훈요양원장 고숙씨, 부산 노인요양시설 간호과장 김순이씨, 제주 요양보호사 양은경씨. /연합뉴스

◇지역별 1호 “긴 터널을 지난 느낌”

다른 백신 접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반응도 많았다. 제주 첫 접종자인 요양보호사 양은경(48)씨는 “독감 주사는 맞은 부위가 뭉치거나 딱딱해지는 느낌이 있는데, 오늘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했다. ‘전북 1호’ 김정옥(51·한의사) 참사랑요양병원 원장도 “별다른 이상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경남 창원에선 다솜노인복지센터 방역책임자 김경숙(62)씨가 처음 백신 주사를 맞으며 “1년 넘게 직원들과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라고 했다. ‘부산 1호’ 은화요양병원 간호부장 김순이(57)씨는 “일단 접종하니 안도감이 들지만, 앞으로도 기본 방역 수칙을 잘 지켜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접종 후 어지러움을 호소하거나 혈압이 오르는 일도 있었다. 서울 도봉구 보건소에서 첫 접종을 한 김정옥(57) 노아재활요양원 원장은 “접종하고 약간 울렁거렸는데, 15분쯤 지나니 괜찮아졌다”고 했다. 인천 서구 보건소에선 간호사 2명이 접종 후 대기하던 중 숨이 차고 혈압이 올라 병원에 이송됐다가 수액 주사를 맞고 상태가 호전돼 귀가했다. 포항에선 50대 여성이 접종 후 혈압이 오르고 어지러움증이 심해져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두통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은 백신 접종 시작으로 기대가 크다고 했다. 21학번 대학생 장서희(20)씨는 “해외여행도 가보고 싶고, 화면으로만 봤던 동기들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오창희 여행업 생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어두운 터널 끝에 빛이 보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코백스 통한 화이자 백신 첫 도입

26일 오후 경남 양산시 양산 부산대학교병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남권역 예방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백신 분배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화이자 백신 5만8500명분(11만7000회분)도 26일 오전 11시 58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코백스 퍼실리티를 운영하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에 따르면, 우리보다 앞서 코백스를 통한 백신이 배송된 나라는 개도국인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정도다. 코백스 백신은 선진국들이 공여한 돈으로 백신을 구입해, 주로 중·저개발국 국가에 지원된다. 개도국 이외에 코백스 백신을 도입한 나라는 우리가 첫 번째로 추정된다.

이날 도착한 화이자 백신은 27일 국립중앙의료원 종사자 199명과 수도권의 코로나 환자 치료병원 종사자 101명 등 300명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한다. 순차적으로 코로나 환자 치료를 맡은 의료진 약 5만5000명에게 접종될 예정이다.

이날 식약처의 전문가 자문 절차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선 화이자 백신에 대해 “만 16세 이상에 대한 사용으로 허가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만 16~17세까지 접종 대상이 확대될지는 추후 질병관리청 예방접종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앞서 미 식품의약국(FDA)은 화이자 백신의 냉동 보관 조건을 영하 75도에서 일반 약국 냉동고 수준인 ‘2주간 영하 25도에서 영하 15도’로 완화했다. 하지만 우리 당국은 냉동 보관 조건 완화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내 도착한 화이자, 오늘부터 의료진 접종 - 화이자 코로나 백신 5만8500명분(11만7000회분)이 26일 오전 11시 58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7일 국립중앙의료원 종사자 등 300명을 대상으로 이 백신의 접종이 시작될 예정이다. /김지호 기자

전문가 “접종률 높이고, 변이 대비해야”

백신 도입과 접종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첫 단추를 잘 끼우자는 전문가 조언도 이어졌다. 정재훈 가천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당면 과제는 고위험군인 노약자를 빨리 접종시켜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며 “고령자 접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에 대한 대국민 불신을 불식시켜 ‘접종률’을 높이는 것도 관건이다. 실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각)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자신도 접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