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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모를 위한 러브레터… 골든글로브 품을까

최만섭 2021. 2. 19. 05:38

모든 부모를 위한 러브레터… 골든글로브 품을까

영화 ‘미나리’ 국내 언론 공개

박돈규 기자

입력 2021.02.19 03:31 | 수정 2021.02.19 03:31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윤여정·오른쪽)와 손자 데이비드(앨런 김)가 숲에서 빚어내는 장면은 이 가족이 겪는 혼돈과 거리를 두면서 스크린에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생명력과 적응력이 강한 미나리는 꼭 미국이 아니어도 1970~1980년대 우리 부모 세대가 겪은 도전과 희망처럼 읽힌다. /판씨네마

길 위에서 이 영화는 출발한다.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향해 미국 아칸소로 막 이주한 가족 앞에 ‘바퀴 달린 집(이동식 주택)’이 놓여 있다. 아빠 제이컵(스티븐 연)은 농장을 일굴 꿈에 부풀어 있지만 엄마 모니카(한예리)는 한숨부터 짓는다. 오자마자 닥쳐오는 토네이도처럼 이 부부의 날씨는 시작부터 사납다.

3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미나리’가 18일 언론에 공개됐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관객상부터 최근 미국영화연구소(AFI) 올해의 영화상까지 무려 68관왕을 차지하며 달려온 마라토너. 이제 결승점이 코앞이다. 먼저 오는 28일(현지 시각) 열리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있고 4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몇몇 트로피에 근접한 다크호스로 꼽힌다.

‘미나리’는 낯선 곳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잔잔한 드라마였다.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고 남편은 틈틈이 우물을 파고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심는다. 심장이 약한 막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 이 구멍을 메워줄 해결사는 친정 엄마. 순자(윤여정)가 고춧가루와 멸치, 한약과 미나리 씨를 싸들고 도착하자 스크린에 활기가 돈다.

꿈은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지만 파괴할 수도 있다. 카메라는 새로운 인생에 동반되는 기대와 불안, 욕망과 혼돈을 관조하듯 담는다. 땅은 비옥하지만 너그럽지는 않다. 제이컵은 속이 타고 모니카는 흔들린다. 오직 순자가 가져온 미나리만 멀쩡히 뿌리를 내린다. 뱀을 보고 놀라는 데이비드에게 던지는 순자의 대사 “그냥 둬.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나은 거야.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한 거란다”는 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흙이자 물, 빛이자 지혜처럼 반짝인다.

 

미나리는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생명력, 적응력의 상징이다. 가족은 날씨처럼 부서지기 쉽지만 그들을 구하는 것도 가족이다. 펀치력이 강한 엔딩까지 윤여정을 중심으로 스티븐 연과 한예리, 아역 배우도 ‘그곳에서 살듯이’ 연기했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바탕이 된 ‘미나리’는 그의 말마따나 “자식의 미래를 위해 인생을 걸었던 세상 모든 부모를 향한 러브레터”다.

제작사는 배우 브래드 피트가 우두머리인 플랜B. 미국 자본으로 만들었지만 한국어 대사가 80%에 이른다. 윤여정은 제작비 200만달러(약 20억원)를 200억원으로 잘못 알아듣고 출연했다고 한다. 1971년에 ‘미니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각선미 좋은 배우’(선데이서울)로 뽑혔던 그녀가 50년이 지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들어 올릴 후보로 꼽히고 있으니 인생이여 아무도 모른다.

가족 이야기는 서정적이고 따뜻하지만 추억이라는 함정에 빠져 질척거리기 일쑤다. 하지만 이 웰메이드 영화는 감상적이지 않아 담백하다. 어느 해나 2월부터 미나리 수확이 시작되듯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 정직한 봄기운을 극장가로 데려온다.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