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폭력 투쟁은 싫어요” 민노총 2030 바뀐다

최만섭 2021. 1. 5. 05:26

“폭력 투쟁은 싫어요” 민노총 2030 바뀐다

금속노조 조합원 45% “세대차 느껴”

곽래건 기자

입력 2021.01.05 03:54

 

 

 

 

 

지난달 8일 오후 3시쯤 대전 동구 코레일(한국철도공사) 대전충남본부에 코레일네트워크 노조원 150여 명이 들이닥쳤다. 코레일네트워크는 코레일 자회사.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었는데 이날 코레일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건물에 들어가려 했다. 이 과정에서 출입문 유리창이 깨지고 막아서던 코레일 직원 4명이 다쳤다. 코레일 사장은 5시간 동안 건물에 갇혀 있다 빠져나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코레일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전국철도노조(철도노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철도노조에는 코레일과 코레일네트워크 직원들이 모두 속해 있다. 젊은 직원들이 익명 게시판에 “(본사) 직원들이 다쳤는데 노조는 폭력 행위를 저지른 자회사 노조원들만 챙기느냐” “폭력 사태 일으킨 노조 탈퇴하자” 등 글을 올린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신세대들은 구세대들이 습관적으로 반복하던 폭력 투쟁에 거부감을 느낄 뿐 아니라,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정치적 투쟁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서 “그런 추세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노동운동 주축인 민주노총·한국노총은 지난해 처음으로 조합원 총 규모 200만명을 돌파했지만 양적인 성장과 달리 내부에선 세대 갈등이란 질적 균열이 불거지고 있다. 주로 50대 이상 고령층이 주축을 이루는 상황에서 신구 세대 간 태도 차이는 앞으로 투쟁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조합원 44% “세대 차이 느껴봤다”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연구원은 지난달 말 ‘금속 노동자의 세대별 노조 활동 인식조사 결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작년 9~11월 금속노조 조합원 1064명을 설문 조사했다. 금속노조는 국내 최대 산별 노조로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와 주요 제조업체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합원 수가 18만3500여 명에 달한다.

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세대 차이

여기서 노조 활동 참여 이유를 묻는 질문에 50대 이상 조합원은 ‘노조 활동이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라는 응답이 44.7%로 가장 많았지만 20대는 45.6%가 ‘임금 수준과 근무 조건의 개선을 위해’로 답했고, 30대는 그 비율이 41.8%였다. 30대에선 ‘육아·양육 등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해 노조 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28.3%나 나왔다. ‘조합원 간 세대 차이를 느껴봤냐’는 질문에는 전체의 44.9%가 ‘있다’고 답했다. ‘선배 문화와 같은 권위적 관습을 극복해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50대 이상은 8.2%였지만 40대 10.2%, 30대 17.4%, 20대 24.4%로 어릴수록 높아졌다. 또 전체의 35.5%는 ‘일방적 지침을 통한 동원식 참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고, 30.3%는 ‘집회나 투쟁 위주의 관행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세대 간 인식 차이가 분명히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고령화하는 노조, 신구 세대 갈등 숙제

노조원 연령이 계속 고령화하는 것도 고민이다. 2006년 39.2세였던 금속노조 조합원 평균 연령은 지난해 45.2세를 기록했다. 정규직 위주 노조 구조가 기존 정규직만 보호하면서, 결과적으로 청년 채용이 줄고 노조원 평균 연령이 계속 올라간 셈이다. 금속노조연구원은 “이런 문제가 심화한다면 세대교체는 물론, 간부들 확보에도 지장을 받아 노조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면서 “세대 갈등으로 확대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지난해 1월 낸 보고서에선 청년 조합원들이 “(노조의) 의사 결정 구조와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다” “선배들은 일도 안 하는데 내 월급 두 배 이상을 받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 노조는 일부 지사에서 2019년 10~11월 상급 단체인 민노총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조합원에게 벌금을 물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젊은 조합원들은 “민주화를 위한다는 노조가 더 독재적”이라거나 “강제 동원 진절머리가 난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일부 조합원은 벌금 부과에 반발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올해 11월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에게도 세대 갈등은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9~2020년 진행된 총파업에 전체 조합원 중 극소수만 참여한 데다 젊은 조합원들은 조직적 동원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에 가장 큰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젊은 세대에 있다”면서 “586세대가 전통적 투쟁 위주 노동운동 시각에서 벗어나야 돌파구가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곽래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