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코로나에 휘말린 19㎏ 돼지방어… 나는 ‘놈’과 바다로 갔다

최만섭 2020. 12. 22. 05:36

코로나에 휘말린 19㎏ 돼지방어… 나는 ‘놈’과 바다로 갔다

2020 미니픽션, 코로나와 나

이혁진 소설가

입력 2020.12.22 03:00

 

 

 

 

 

모두가 힘들었던 한 해. 하지만 코로나 와중에도 성탄과 연말은 어김없이 도착했다. 소설가 3인에게 미니 픽션을 청탁했다. 키워드는 성탄, 연말, 그리고 코로나.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독자들이 읽고 난 뒤 조금이나마 힘과 희망을 떠올리도록 해달라는 게 유일한 주문이었다. 이혁진·문지혁·장강명 3인이 응답했다.

① 이혁진 - 돼지방어

② 문지혁 - 어떤 선물

③ 장강명 - 또 만나요, 시리우스 친구들

소설가 이혁진.

여기쯤이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시동을 껐다. 전조등 너머 파도가 몰아쳤다. 트렁크의 플라스틱 박스에는 대방어가 실려 있었다. 녀석은 반쯤 옆으로 누운 채 아가미만 움직였다. 남자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막상 오고 나니 왜? 뭘 어쩌자고 온 걸까, 싶었다.

남자가 녀석을 매입한 것은 2주 전이었다. 활어차 기사의 사진에 낚였다. 작달막한 녀석이 살집은 근육질 어깨처럼 떡 벌어져 있었다. 무려 19kg이었다. “합성 아냐?” 기사는 올라가서 직접 보라는듯 고갯짓했다. 남자는 어창 위로 올라가 뚜껑을 열어 젖혔다.

대방어 네댓 마리가 함께 있었지만 녀석은 수사자처럼 달랐다. 물속에서도 우람했고 차멀미에 시달렸을 텐데도 활발했다. 바짝 선 지느러미로 물을 가르며 광물 같은 청록색 등을 드러냈다. 어창 속 어떤 놈들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녀석은 그야말로 돼지방어였다. 차디찬 울진 바다 깊숙한 곳에서 빵빵히 지방을 채운, 대방어 중의 대방어, 겨울 대방어들의 왕.

탐이 났다. 회칼 좀 쓴다는 사람이라면 안 날 수 없는 녀석이었다. 계산도 섰다. 단골 중 적게는 여섯에서 많게는 열서넛까지 모이는 동네 모임이 있었다. 대부분 진성 낚시꾼에 회라면 안 먹어본 어종이 없을 만큼 애호가들이었다. 그들이라면 이 녀석을 알아볼 터였다. 아니, 녹아날 터였다.

 

남자가 보낸 사진과 동영상을 본 모임의 회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 핵심 멤버들끼리 맥주 한잔씩 하며 대방어 출조 여행을 모의하던 중이었다. 여행 전에 돼지방어 기운을 받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회장은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흘 뒤 목요일로 예약을 잡았다. 가족 포함 최소 열네 명이고 당일 사정에 따라 스무 명 이상일 수도 있다고 장담했다.

남자는 수납장에서 아끼는 회칼을 꺼내 새로 날을 잡았다. 수조 관리도 하루 두 번씩 했다. 멤버 가족 중 한 명이 유튜브를 하는데 그날 촬영도 할 수 있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정말 그럴 만한 녀석이었다. 남자도 설렜다. 볼수록 기운차고 아름다운 녀석이었다. 살점 하나 낭비 없이 완벽하게, 제대로 된 회와 요리로 만들어 내고 싶었다.

/일러스트=박상훈

목요일이 됐다. 남자는 회장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미안한데 하루만 미루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에도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도 없었다. 남자가 몇 번이나 전화하고 문자도 보냈지만 회신이 없었다. 토요일 오후에야 회장은 전화했다. 미안하다고 그날 맥줏집 모임 때문에 모두 확진 판정을 받아 자가 격리 중이라고 했다. 일요일 저녁에는 다시 2단계로 격상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9시 이후로는 영업할 수 없었다. 또 시작이었다. 어디 한번 죽어보라는 듯.

 

녀석부터 빨리 잡아야 했다. 피를 빼고 배를 갈라 저온 숙성고에 넣으면 일주일쯤은 두고 팔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팔기에도 녀석은 너무 크고 비쌌다. 잘해야 반이나 팔고 말 터였다. 무엇보다 애초에 그러려고 산 녀석이 아니었다. 녀석도 그런 대접이나 받을 주제가 아니었다. 녀석은 돼지방어였다.

아홉 시가 넘으면 남자는 수족관과 주방에만 등을 켜둔 채 어둑한 홀에 혼자 앉았다. 배달 주문을 기다렸다. 운이 좋은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남자는 밖으로 나와 녀석을 봤다. 일주일이 넘도록 녀석은 기운을 잃지 않았다. 산소 거품 바글거리는 수조 속을 부지런히 헤엄쳤다. 구릿빛 테가 박힌 눈을 치뜬 채. 남자는 처음으로 알았다. 눈꺼풀 없는 생선의 눈은 오직 삶을 향해서만 열려 있었다. 아둔할 만큼 집요하게, 그래서 죽어서도 물러지기 전까지는 살아있을 때와 진배없었다.

 

남자는 운전석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었다. 반쯤 누운 녀석은 입술 주위가 허옇게 까졌고 빵빵하던 배도 줄어 있었다. 등의 푸른빛도 탁했고 지느러미에는 물때가 끼어 있었다. 바다에 풀어준들 다시 살 수 있을까?

남자는 박스를 힘겹게 들어 올렸다. 비틀거리며 모래사장을 가로질렀다. 박스의 물이 출렁출렁 넘쳤다. 윗도리를 적시고 금세 바지까지 적셨다. 이가 덜덜 떨려왔다. 하늘에는 멀끔한 보름달이 태연하게 떠 있었다.

물속은 의외로 따스했다. 몸도 한결 가벼웠다. 바다는 뭍보다 편안했다. 파도에 휘청거리면서 남자는 박스를 밀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미친 짓이었다. 방어 한 마리를 돌려보내겠다고 이 한밤에, 12월 바다에 뛰어들다니.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하면 누구라도 결국 미치고 말 것이다. 어쩌면 모두 끝장내고 싶어 온 것인지도 몰랐다. 대물만 취급하는 숙성 횟집으로 열었다가 석 달 만에 코로나로 배달 전문 횟집이 되고 만 가게도,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호기롭게 횟집을 차린 자신도.

 

박스를 가라앉혔지만 녀석은 누운 채 아가미만 뻐끔거렸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허망함과 분노가 남자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남자는 녀석의 꼬리를 움켜쥐고 뜯어낼 듯 잡아당겼다. 녀석이 갑자기 요동치며 퍼덕거렸다. 몸을 곧추세우고는 빨려들어 가듯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손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따가웠다. 달빛에 비춰보자 지느러미에 긁혀 피가 흥건했다. “나쁜 새끼.” 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떤 후련함도 함께 새어나왔다. 한 해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떤 후련함이.

 

남자는 천천히 뭍으로 몸을 옮겼다. 더럽게 춥고 어쩌면 새해가 돼도 더 추워질지도 몰랐지만 결국 그 뭍이 남자에게는 바다였다. 남자는 핏물이 흐르는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