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웃룩] 일관성이 독이 될 때… 팩트가 달라지면 생각을 바꾸는 게 옳다
일관성은 성실·정직 등 가치 있는 덕목이나 ‘내로남불’로 변질
미디어 이용 습관에 따라 기준과 태도의 일관성 충돌 빈번
정의 외친 집단이 위배된 행동 했을 때 지지 거두는 게 합리적
입력 2020.11.18 03:00
누군가에 대해 한결같다, 일관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칭찬이다. 일관성은 성실함, 정직함, 친절함 등과 더불어 대부분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덕목이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 가치, 행동 사이에서 내적 일관성(consistency)을 유지하고자 한다. 따라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의견과 맞지 않는 새로운 정보를 접하게 되면 이른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경험하게 되고, 이로 인한 심리적 불편함을 피하거나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취한다.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소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인지부조화를 줄이기 위한 자구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뇌 MRI 사진
일관성을 유지하는 패턴
사람들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첫째, 동의할 수 없는 뉴스는 피한다. 2009년 해외 학술지(Journal of Communication)에 게재된, 선택적 미디어 이용에 관한 고전적 연구에서는 동일한 기사에 다른 언론사 이름을 붙여 독자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기사 선택이 달라지는지 확인했다. 예상한 대로, 공화당을 지지하거나 보수적인 유권자들은 폭스뉴스 기사를 선호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나 진보적 유권자들은 폭스뉴스가 제공한 기사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심지어 여행이나 스포츠와 같은 연성 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인과 이념적 지향을 달리하는 언론사를 ‘믿고 거르는’ 경향은 동서양이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어떤 미디어를 이용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이 인식하는 현실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2020년 7월 퓨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의 85%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인들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답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46%만이 같은 답변을 했다. 코로나는 독감과 별반 다르지 않고,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으며, 세계에서 미국이 제일 코로나 사태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대통령 메시지를 줄기차게 전달하는 채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할 리 만무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3월 백악관에서 주별 코로나 누적 확진자 그래프를 설명하고 있다. /AFP 연합
둘째, 본인의 신념과 합치하는 정보를 적극 활용한다. 그 정보가 비록 가치가 없는 주변적인 단서에 불과할지라도. 예컨대 한 이슬람 지도자가 ‘테러리스트에 동조하고 민간인에 대한 이슬람 공격을 묵인했다’는 가짜 뉴스를 믿고 안 믿고는 해당 지도자가 평소 어떤 옷을 입는지에 따라 달라질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해당 뉴스가 거짓이라는 정정 보도가 함께 제시됐는데도, 문제의 지도자가 전통 이슬람 복장을 한 사진이 기사에 포함된 경우, 양복을 입은 사진이 실린 경우에 비해 여전히 가짜 뉴스가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더 높았다.
셋째, 믿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접하게 되면 해당 사실의 중요성을 깎아내린다. 2016년 미 대선에서 당시 트럼프 후보가 범죄율이나 실업률에 대해 부정확한 발언들을 했다는 언론의 팩트체킹 결과를 접한 뒤, 트럼프 지지자들은 관련 사실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수정(belief update)했지만, 허위 사실을 유포한 당사자인 트럼프 후보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수치가 좀 틀렸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267일 동안 2만55개의 명백한 허위 주장 혹은 근거 없는 주장을 했다. 그 많은 허위 정보를 쏟아내고도 그가 이번 대선에서 미국 역사상 둘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준의 일관성, 태도의 일관성
대상이 특정 인물이든, 조직이든, 아니면 사회적 이슈이든 간에, 판단의 기준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유재수(전 부산시 부시장) 뇌물수수, 왜 정권을 따집니까”라는 기사에서 보듯, 같은 행동을 두고 다른 잣대를 들이댈 때,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준의 일관성과 태도(의견)의 일관성이 어긋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사실, 객관적 증거가 나타나면 기존의 판단을 수정하는 것이 옳다. 과학에서도 연구 결과는 ‘잠정적’ 진리로 간주된다. 아무리 정교하고 엄밀하게 검증된 결과일지라도, 언젠가 반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것으로 알려졌던 사람이 뒤로는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었다면 애초의 존경을 거두는 것이 오히려 일관성 있는 자세다.
마찬가지로 평등과 정의, 공정을 기치로 건 집단이 비민주적 소통 방식으로 일관하고 집단의 무오류성을 공공연히 내세운다면, 새로운 관찰 결과에 따라 기존의 태도(지지)를 수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실제 정치나 상업 캠페인에서 기존의 입장을 뒤집은 사람들(convert communicator), 즉 일관성을 포기한 사람들의 메시지는 설득력이 있다. 1975년 해외 학술지(Social Behavior and Personalit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자였던 사람이 금주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 중독 경험이 없는 사람이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보다 더 설득 효과가 컸다. 이 같은 ‘개심자 혹은 회심자 효과’는 삼인칭 시점보다 일인칭 시점에서 메시지를 전달할 때, 또 중독 정도가 심했던 경우에 더 크게 나타났다. 2016년 대선 당시 클린턴 후보 진영에서 진성 공화당원들을 출연시켜 왜 트럼프가 아닌 클린턴을 찍기로 결심했는가를 증언하는 광고 시리즈를 내 보낸 것도 이런 이론적 배경을 깔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비합리적인 일관성에 매몰되어 있다. 원칙과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 한때 몸담았던 집단 혹은 진영을 떠나는 사람들을 한쪽에서는 변절자, 배신자 취급하고, 다른 쪽에서는 출신 배경을 문제 삼고 진의를 의심한다. 진영 논리와 패거리 문화가 득세하는 이유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왜 의견을 자주 바꾸느냐”는 지적에 “사실이 달라지면 생각을 바꾼다(When the facts change, I change my mind – What do you do, Sir?)”라고 반문했다. 우리는 어떤가?
이은주 교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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