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김우철의 재정 인사이트] 가진 건 집 하나인데… 술·도박에 세금 때리듯 해선 안 돼

최만섭 2020. 11. 11. 07:49

[김우철의 재정 인사이트] 가진 건 집 하나인데… 술·도박에 세금 때리듯 해선 안 돼

오른 고가 주택 더 올리고 낮은 중저가 더 낮추는 극단적인 세제
‘넓은 세원 적정 세율’ ‘재산세 단일세율’이란 국제 기준과 동떨어져
주택 정책 실패 인정 않고 징벌적 세제 남용해서 편 가르기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재정학

입력 2020.11.11 03:00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논란의 한가운데 섰던 보유세 개편의 마지막 조각이 지난주 당정 간 파열음 끝에 겨우 맞춰졌다. 정부는 2030년까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세의 90%까지 올리고, 중저가(6억원 이하) 1주택 보유자는 재산세 세율을 일부 인하해주는 안을 확정했다. 공방은 주로 감면 대상 주택 가격 수준(6억원)이 적절한지를 두고 벌어졌으나, 정작 우려해야 할 점은 재산세 개편을 끝으로 마무리된 부동산 세제의 불합리한 구조다. 3년간 험난한 과정 끝에 어렵사리 도달한 지점은 ‘넓은 세원 적정 세율’같이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보유세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극히 적은 비율의 고가 주택과 다주택자에게는 높은 종부세 부담이 집중되고, 대다수 주택에 대해서는 기존의 낮은 재산세 부담마저 경감된 극단적인 이분법 구조로 보유세가 재편됐다. OECD 국가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비효율적인 거래세에 유럽 일부 국가에서 특정 상위 계층에만 부과하는 부유세에 가까운 징벌형 종부세가 더해지고, 모두가 내는 재산세는 낮은 세 부담을 더 낮춰준 결과, 우리가 얻게 되는 부동산 세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형적인 구조다.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여간다는 정부 초기 부동산세 개편의 대원칙과는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 향후 개선이 필요하다.

종합부동산세 세수 추이

‘마녀사냥식’ 세제 개편

부동산 가치를 평가하는 연구자들이나 관련 협회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평가 오차로 인해 공시 가격이 시장가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을 고려한다. 시장 가격의 80%를 적정 평가 수준으로 권고하는 이유다. 실제 미국 상당수 주정부에서는 80%를 기준선으로 적정 가격을 산정한다. 우리는 공시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고 지역마다 고르지 않아 이를 극복하긴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에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현실화율 90%는 불필요하게 높은 수준이다. 많은 전문가는 현실화율을 80%로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중장기 로드맵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공시 가격이 연거푸 올랐음에도 고가 주택은 당장 내년부터 현실화율이 인상된다. 다른 주택들 공시 가격은 나중에 천천히 현실화한다. 이번 공시 가격 상향 조정 목적이 서울 고가 주택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까닭이다. 더구나 정책이 정권에 따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 여건상 2030년까지 현실화율을 90%로 맞추겠다는 건 실현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고가 주택만 공시가가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고가 주택 세금 역차별 심각

중저가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재산세 세율 인하는 말 그대로 고가 주택 소유자 입장에선 역차별적 조치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재산과세는 공공 재정 투입에 따른 편익의 제공이 주거 서비스를 개선하고 이로 인해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는 것에 대한 세금이라는 점에서 ‘편익과세’가 기본 원칙이다. 따라서 보유세는 중저가 주택이 아닌 무주택자와 유주택자를 기준으로 구분하고 과세하는 게 공평하다. 이미 고가 주택 소유자들은 종부세를 별도로 부과받는데 재산세마저 누진 구조를 따르도록 한 건 독특하고 희소한 제도다. 국제적으로 재산세는 단일세율 체계가 기본이다. 전 세계 수많은 지방정부 중 누진 체계를 따르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세르비아 지방정부나 브라질 상파울루 정도가 누진세율 체계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영국의 카운슬세(council tax)가 누진 구조를 띤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많은 세를 부담하는 역진성(逆進性)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주택자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기존 세 부담 격차를 주택 가격과 수를 기준으로 더욱 누진적 구조로 차별화하겠다는 이번 재산세 개편 방침은 부적절한 선택이다.

 

 

정치적 지지층 확대 위한 술책

재산세마저 양극화한 종부세를 닮아가도록 만드는 건 보유세 정상화에 도리어 역행한다. 주택 1채당 평균 재산세 부담을 31만원이란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올리려면 세율 격차 확대를 중단해야 한다. 현행 재산세제엔 이미 재산세액의 급격한 인상을 완화하기 위해 재산세액 증가율을 전년도 세액의 일정 비율 이하로 제한하는 세 부담 상한제가 있다. 이를 통해 공시가 현실화에 따라 중저가 주택 세 부담이 크게 늘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굳이 세율을 또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것도 공시 가격이 현실화하는 2030년 시점을 한참 앞둔 지금 대다수 주택에 대해 재산세 세율을 인하하겠다는 것은 재산세 감세를 통해 정치적 지지 계층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라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1주택 가구에 대한 감면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세 부담 상한을 조정하거나 장기 거주 또는 고령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해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세율 격차를 확대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다.

 

생활 필수재에 표적 과세 문제

주택은 생활의 필수재다. 단지 고가 주택이라 해서 이들을 모두 ‘주택 자산가’라는 식으로 개념화하고, 이를 특별 과세 대상으로 취급하여 징벌적으로 과세하는 건 중세식 마녀사냥과 다름없다. 주택 자산가를 경계선으로 한 보유세 부담 양극화는 우리나라만 나타나는 예외적인 현상이다. 전형적인 ‘표적 과세(targeted taxation)’다. 표적 과세는 원래 환경오염이나 술·도박과 같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대상에 활용하는 기법이다. 단지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른 주거 필수재에 표적 과세를 도입하는 건 정책적으로 난센스다. 정치권과 정부는 주택 공급 정책 실패가 초래한 막대한 주택 시세 차익에서 소외된 대다수 계층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부동산 세제를 거의 남용하고 있다. 2025년 종부세 세수는 5조3000억원으로 4년 만에 세 배로 커진다. 이쯤 되면 폭증이다. 종부세 부담이 조세 저항으로 연결되기 전에 정부는 정책을 다시 검토하고 수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