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병태의 경제 돌직구] 경제학과 싸우는 文 정부의 '이념 주도형' 주택정책

최만섭 2020. 8. 10. 05:54

[이병태의 경제 돌직구] 경제학과 싸우는 文 정부의 '이념 주도형' 주택정책

조선일보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경제지식네트워크 대표

 

입력 2020.08.10 03:12 | 수정 2020.08.10 05:46

빈곤층 自家점유율 OECD 상위권… 부동산 양극화 현실과 달라

 

이미지 크게보기/그래픽=김현국

 

국민이 "나라가 당신의 사유물이냐"면서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감행할 정도로 이 정부 주택정책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그 밑바탕에 부동산 시장에 대한 몰이해와 주택정책을 주택 문제 해결이 아니라 이념적 목표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이 정부 철학이 깔려 있다.

주택이 가진 자들 재산을 불려 양극화 주범으로 작동한다는 인식은 '가짜 뉴스'에 가깝다. 2019년 OECD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중산층 60%의 가계 소득과 순자산 점유율은 아주 높다. 빈곤층 자기 집 소유율도 평균보다 높다. 중산층·저소득층 모두 부동산을 중요한 자산으로 삼고 있으며, 고소득자만 부동산을 활용해 재산을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코로나19 사태로 소득원이 대거 사라진 미국에선 빈곤층이 임차료를 내지 못해 강제 퇴거를 비롯한 각종 주택 문제로 고통받고 있지만, 우리는 저소득층 주거 안정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다.

대도시 집중화로 부동산 가격 상승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경제지식네트워크 대표

 

 

서울은 2015년부터 미분양 주택이 급감하고 민간 건설 인허가마저 줄면서 부동산 가격 인상 조짐이 예고된 바 있다. 수도권 인구도 2016년까지 조금씩 줄다가 2017년부턴 다시 늘면서 이런 추세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양적 완화, 금리 인하로 돈이 대거 풀리면서 주택 수요가 증가하고 자가 보유 비율이 2014년 53.6%에서 2019년 58%로 증가했다. 디지털 경제화에 따라 대도시 집중은 심화되고,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의료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로 노인들도 몰린다. 2019년 100억원 이상 벤처 자금이 투자된 기업 중 소재지가 서울인 곳은 83%, 수도권은 95%에 달했다. 이런 구조적 환경이 서울 집값을 끌어올리는 근본 원인인데 이 모든 걸 투기 수요로 오판하는 정부 고집은 '패닉 바잉(panic buying)'을 부추길 뿐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지역 집값은 유동성과 금리에 반응한다. 서울 강남과 미국 뉴욕 주택 가격 추이를 살펴보면 상당히 유사하게 이동한다. 그러다 큰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한 건 2018년 9월. 2017년 후반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집중적으로 쏟아낸 투기과열지구 확대와 대출 규제 부작용이 반영되면서 앞으론 구매도 어렵고 공급도 부족할 것이란 신호에 대해 시장이 가격 상승으로 대응한 셈이다.

주택 시장 과열 후유증으로 우려하는 현상 중 하나는 과도한 가계 부채다.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가계 부채의 28%는 이자 부담이 없는 주택 임대 보증금이다. 주택 담보대출이 가계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부동산 대출이 가계 대출 증가의 주요 원인도 아니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정당화할 이유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자주 공언하는 1가구 1주택 원칙도 허망한 얘기다. 최신 OECD 자료를 보면 자가 보유율은 국민소득 수준과 반비례 경향을 보인다. 산업화·도시화에 따라 경제 흐름이 빨라지고 다양성이 높아져 자주 이동하게 되고, 1·2인 가구가 많아진 데다 주택 품질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임차 수요가 늘 수밖에 없는데 이를 무시하고 1가구 1주택 정책을 고집하면 임차 수요는 정부나 부동산 전문 회사가 공급을 담당하지 않는 한 맞출 수 없다. 시카고대·UC버클리 연구에 따르면 1964~2009년 주택 규제가 심한 대도시들은 생산성 높은 고급 인력이 가길 꺼려 GDP를 13.5% 낮추는 부작용을 낳았다.

전세 제도 순기능 사라질 위기

우리 주택 시장은 전세 제도라는 독특한 구조와 낮은 자가 보유 비율이 특징이다. 이는 정부 대출 규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LTV(주택 담보대출 비율)는 한국이 50%인 반면, 네덜란드는 106%에 이른다. 집을 사는 데 돈을 충분히 빌려주지 않고 여기에 DTI(총부채 상환 비율) 등 규제를 중복 적용하여 대출로 집을 사는 걸 봉쇄해 왔다. 이러한 금융 규제 탓에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전세 보증금이라는 이름으로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사적 금융 수단을 시장이 고안해 낸 것이다. 이런 구조를 무시하고 전세 제도를 질식시키고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서민들이 집 살 가능성은 훨씬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전세 제도는 낮은 금융 비용으로 집을 사게 하고, 집을 빌리는 세입자도 낮은 금리로 임차할 수 있게 하는 순기능을 했다. 우리나라 가처분 소득 대비 주거 비용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평균 집값 상승률은 경제성장률보다 낮았다. 임대 수익 기대율도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이런 순기능이 앞으론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주택을 통한 '불로소득'은 틀린 말이다. 주택 투자 수익은 임금 소득이 아니긴 하지만 부당한 소득을 뜻하지 않는다.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 불로소득 전형은 정부 복지 정책에 의한 이전소득이다. 주택 투자 수익이 주식 수익과 차별되어 죄악시될 이유는 없다. 임금 소득도 온전히 본인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도 아니다. 노동만이 모든 가치 원천이라는 건 사회주의 경제학 교리일 뿐이다.

OECD 자료는 각국 임대료 규제가 높을수록 비가 새는 임대주택 비율이 높아지고, 임대주택 부족 현상이 심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에서는 최근 주택 거래 활성화를 경기 회복 증거로 해석한다. 건설 산업 지출은 전 세계 GDP의 13%를 차지하고 있고, 건설 산업 부가가치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나라들이 고도성장한다.

우리나라의 자산 관련 세수는 이미 OECD 국가 중에서 영국·캐나다에 이어 셋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동산 보유보다도 거래 관련 세금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서 과격한 정책 변경에 따른 국민 퇴로를 봉쇄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 주범이 정부라는 걸 방증한다. 퇴직연금도 없는 자영업자가 열심히 저축해서 작은 주택 몇 채 마련하면서 노후를 대비한 게 무슨 죄냐고 울부짖는데 이를 조롱하는 세력은 과연 정상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0/20200810000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