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김정은의 '코로나 출구전략'
조선일보
입력 2020.07.28 03:18
1997년 김정일이 노동당 농업비서 서관희를 공개 처형했다. 당시 수십만 명이 굶어 죽은 건 '미제(美帝) 간첩'으로 포섭된 서관희의 농단 때문이라고 몰고 갔다. 북 경제 운용 실패의 책임을 전부 서관희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가 간첩이란 증거는 '6·25 때 행적을 재조사해 보니 이상하더라'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미제' '간첩' '반동' 같은 용어를 쏟아내며 주민들을 선동했다. 그해 김정일의 경제 분야 시찰은 한 번뿐이었다.
▶2010년엔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이 화폐 개혁 실패의 주범으로 몰려 총살됐다. 당시 김정일은 100원을 1원으로 바꾸는 화폐 개혁을 통해 '돈주'들의 시중 자금을 빼앗으려 했다. 3대 세습을 앞두고 장마당을 장악한 '시장 세력'의 확대를 막을 필요도 있었다. 그런데 섣부른 '개혁'은 물가 폭등과 장마당 마비를 불러왔다. 분노한 주민들이 집단행동에까지 나서자 서관희처럼 박남기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그 무렵 한 해 2000명이 넘는 탈북민이 한국에 왔다. 2009년엔 3000명에 육박했다. 탈북민이 북에 송금하는 돈은 장마당 밑천이 됐다. 연간 3000달러(약 360만원)만 있어도 북에선 중산층 이상이다. "나도 탈북 친척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돌았다고 한다. 2011년 말 집권한 김정은에게 탈북민 단속은 체제 안정과 직결된 문제였다. 북·중 국경의 빗장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대폭 높였다. 최근 김여정이 탈북민에게 욕설을 퍼부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4일 김정은이 "코로나 감염 의심 탈북민이 월북한 개성시를 완전히 봉쇄했다"고 한다. 북 선전 기관은 "최대 비상사태" "특급 경보 발령" "치명적 파괴적 재앙"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정부가 "그 탈북민은 코로나 판정을 받은 적도, 감염자와 접촉한 적도 없다"고 했는데도 북은 탈북민 한 명이 코로나 창궐의 발원인 것처럼 난리 쳤다. 코로나 방역 실패의 책임을 월북한 탈북민 한 명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다. 그 탈북민이 남에서 코로나에 걸려 왔으니 한국 정부가 배상하라고 생떼를 쓸지 도 모른다.
▶김씨 왕조는 자기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는 데 전문가들이다. 이런 일만 하는 조직이 있다.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식량난은 '미제 간첩', 화폐 개혁 실패는 '불충한 부하' 탓이었다. 코로나 사태도 마찬가지다. 속이 뻔히 보이는 술책이지만 주민들이 노예 상태인 북에선 통할 것이다. '북한과 주민이 김정은 소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7/20200727039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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