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아버지 원수 용서하며… 고해성사에 담긴 神의 사랑 깨달아

최만섭 2020. 7. 10. 05:42

아버지 원수 용서하며… 고해성사에 담긴 神의 사랑 깨달아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0.07.10 05:00

'성사 안에…' 펴낸 임덕일 신부, 반세기 사목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곱 가지 聖事의 의미 쉽게 풀어

성당 보좌신부에게 외할머니가 어떤 노인을 데리고 찾아왔다. 신부는 그동안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줄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6·25 때 동네 사람의 밀고로 인민군에게 잡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데려온 노인이 그 밀고자였다. 죄책감에 수십 년을 떠돌던 그는 신부의 발밑에 무릎 꿇고 "하느님 아버지! 신부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흐느꼈다. 외할머니는 묵주 위에 두 사람의 손을 포개고는 "신부야, 이분을 용서해라"며 통곡했다. 두 달 뒤 그 노인은 세상을 떠났다. 신부는 "고해성사는 죄의 고백을 통해 하느님의 용서의 은총을 낳고, 하느님의 용서의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의 은총을 낳는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사랑의 덧셈 표지이다"라고 말한다.

 

은퇴 후 고양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는 임덕일 신부. 그는 "50년 동안 신자들과 어울리며 후회 없는 사제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뒤로 보이는 CD는 임 신부가 전 세계에서 수집한 크리스마스캐럴들. /김한수 기자

 

최근 사제생활 50주년(금경축)을 맞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원로 사목자 임덕일(80) 신부가 겪은 실화다. 임 신부는 최근 '성사 안에 숨어 있는 사랑'(가톨릭출판사)을 펴냈다. 성사(聖事)란 천주교 신앙생활의 뼈대. 세례, 견진, 병자, 혼인, 성품, 성체성사 등 일곱 가지로, 신자들이 천주교에 입교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신앙생활 가운데 늘 접하게 된다. 신자들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일반인들에겐 용어부터 난해하다. 임 신부는 반세기 사목 경험을 바탕으로 일곱 가지 성사의 의미를 쉽게 풀어준다. 그는 "모든 성사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다"며 "신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끔 쉽게 썼다"고 했다.

책을 읽다 보면 임 신부의 일생은 드라마틱한 사건의 연속이다. 임종 직전에 드리는 '병자 성사'에서는 욕쟁이 할머니 일화를 소개한다. 재래시장에서 돼지국밥을 파는 할머니는 항상 임 신부를 "어이, 신부 총각!"이라고 불렀다. 당시 성당은 신축 비용 때문에 빚이 많았던 상태. 어느 날 욕쟁이 할머니는 "이거 주보(週報)인가 하는 신문에 내지 마시우"라며 봉투 하나를 내민다. 3000만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의 두 아들은 대학교수와 변호사였다. 아들들이 사드린 빌라를 팔고 장사로 번 돈을 합해 고향의 학교에 장학금도 20억원이나 기부하고 자신은 시장 골목 가게에서 살아온 분이었다. 2년 후 할머니 장례식 때 관 옆에는 장사할 때 쓰던 솥단지와 국자가 함께 놓였다. 임 신부는 "솥단지와 국자들은 할머니의 '빛나는 인생 졸업장'"이라고 말한다.

자살하려던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은 사건은 그가 사제가 된 지 일주일 만에 벌어졌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 남성은 사업이 어려워 유서와 극약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로만칼라 차림의 신부 옆자리에 앉게 된 그는 '냉담자(신앙생활을 쉬는 사람)'였음을 고백하고 펑펑 울면서 마음을 돌렸다. 임 신부는 '성품 성사' 부분에 이 사건을 소개하며 사제가 얼마나 성스러운 직책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적었다.

시흥동성당, 노원성당, 장안동성당, 방배성당 등 주임신부를 지낸 그는 사람 사이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30여년 전 혼인성사 주례를 봐준 부부의 막내아들 혼인 주례를 다시 맡기도 한다. 자살하려던 남성의 아들과는 지금도 교류하고 있다. 임 신부는 "사제 될 때 표어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를 골랐다"며 "사제 생활 50년 동안 양 떼 사이에서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

임 신부는 이번 책을 비롯해 '사랑의 산책길' '말씀의 365일, 삶의 뜨락에서' 등 5권의 저서 저작권을 서울대교구에 위임했다. 그는 2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평소엔 손이 떨린다. 그런데 책이나 편지를 손으로 쓸 때는 멀쩡해진다. 임 신부는 지금 '유머'를 주제로 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이유를 묻자 "요즘 세상에 웃음이 없잖아요?"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0/20200710000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