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모든 것이 잘못될 수 있다… 건설적 편집증 가져야"
조선일보
입력 2020.07.10 03:14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 ALC웨비나 다이아몬드·서승환 '코로나19 이후 문명사적인 변화'
"코로나 대재앙은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중국 야생동물 시장에서 사스가 발병한 뒤, 더 많은 전염병이 같은 곳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경계했어야 합니다. 작년 12월 코로나 발생 초기 중국 정부는 검열했고, 미국은 대통령이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탓에 대응에 실패했습니다."
세계적 문명사학자로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는 최근 조선일보와 연세대학교가 '코로나 19 이후 문명사적 변화'를 주제로 공동 개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웨비나에서 "위기를 위기로 인정하지 못한 것이 코로나 대응에서 우리가 가장 잘못한 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재러드 다이아몬드(왼쪽)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와 서승환 연세대 총장은 본지와 연세대가 공동 개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웨비나에서 코로나 이후 문명 붕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블룸버그·연세대학교
이번 ALC 웨비나(인터넷을 뜻하는 웹과 세미나의 합성어)는 다이아몬드 교수와 서승환 연세대 총장이 각각 미 로스앤젤레스 자택과 서울 연세대 총장실에서 화상회의로 진행했다. 사회는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원장인 조화순 교수가 맡았고 이메일을 통해 추가 질의응답도 이뤄졌다.
◇"위기를 부정한 잘못… 문명 붕괴 위협"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은 지구상 77억 인류에게 죽음의 공포와 함께 실존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염병 대응에 충분한 과학·기술을 가졌다고 자부했던 인류가 코로나 대재앙에 속수무책인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이번 ALC 웨비나에서 다이아몬드 교수와 서 총장 모두 '붕괴'를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경제학자인 서 총장은 경제 붕괴에 주목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모든 국가와 인류 전체가 수요와 공급의 동시 붕괴를 함께 경험하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가 1년 이상 장기화하면 경제주체들이 상호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정부 역할이 커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그는 "단기적인 위기 극복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민간 부문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저해할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명사학자인 다이아몬드 교수는 세계화 관점에서 문명의 붕괴를 걱정했다. 그는 "(모든 나라가 서로 연결된)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과거처럼 한 (지역) 문명의 붕괴에 그치지 않고 지구 전체 차원에서 문명 붕괴의 위협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구 차원의 문명 붕괴는 전 세계적으로 삶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서 "코로나에 대한 대응 실패로 붕괴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대응에 각국이 나서야"
서 총장은 최근 코로나 상황에 대해 "초국가적 협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패권 국가의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다이아몬드 교수는 코로나 대재앙이 인류와 지구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폈다.
"코로나를 계기로 세계 각국은 한 나라가 자기 보호를 위해 문을 닫아걸더라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어느 나라가 자기 국경 안에서 코로나를 퇴치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코로나가 잔존한다면 언젠가 다시 감염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문제에는 글로벌 대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류가 배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면서 1980년 천연두 퇴치를 위한 세계 각국의 연대를 글로벌 협력의 성공 사례로 꼽았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좋은 위기를 결코 헛된 일로 만들지 말라"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를 인용하면서, "세계가 이번 코로나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건설적 편집증이 근본 해법"
다이아몬드 교수는 코로나뿐 아니라 기후변화, 자원 고갈 등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 대책으로 '건설적 편집증(constructive paranoia)'을 제안했다. "건설적 편집증은 모든 것이 잘못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건설적 편집증은 다이아몬드 교수가 인도네시아 동쪽에 있는 뉴기니섬에서 현장 연구를 하던 시절 그곳 주민들의 행동 양식에서 찾아낸 특성이다. "정글에서 생활하다보면 늘 각종 위험에 노출됩니다. 나무에 깔려 즉사하거나 독사에게 물려도 의사를 만나지 못해 죽을 수도 있죠. '언제라도 극도로 주의할 것(extremely careful all the time)'이 건설적 편집증의 핵심이에요."
[재앙을 부르는 리더의 특징] 과거의 교훈 잊고, 이념에 집착
이번 ALC 웨비나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위기 대응에 대한 리더십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을 내리는 리더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는 리더, 과거의 교훈을 잊어버리는 리더, 이념에 집착하는 리더…. 요즘의 코로나 대재앙도 이런 리더들의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리더의 '입'과 '귀'에도 주목했다. 그는 "대중에게 인기가 없는 말을 용기 있게 해야 하는 것이 리더의 책무"라면서 "만약 지도자가 대중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근시안적 정책을 추진하는 겁쟁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어 "'스마트 리더'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고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전문가 집단을 한자리에 모으고 그들의 조언을 들은 덕분에 인류가 핵전쟁을 피할 수 있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또 "상당수 리더는 늦더라도 위기를 위기로 인정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면서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를 예로 들었다. 작년 말 호주에서 극심한 산불이 났을 때 모리슨 총리는 가족과 함께 미국 하와이로 휴가를 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 성명을 냈다. 이후 코로나가 확산되자 모리슨 총리는 보건의료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국경 봉쇄를 포함한 강력한 조치를 취한 끝에 코로나 대응에 성공했다는 평가와 함께 지지율이 60% 중반대로 솟구쳤다.
잘못된 현실을 알면서도 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리더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이아몬드 교수는 "해법은 단 하나"라면서 "민주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서, 독재국가에서는 무장 항거를 일으켜서라도 국민을 양극화하는 리더를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누구] 베스트셀러 '총, 균, 쇠' 저자… 다양한 학문 넘나들며 문명 탐구
재러드 다이아몬드(83)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지리학과 소속으로 진화생물학·생태학·언어학·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인간과 문명을 탐구하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무기와 금속, 병균이 문명 간 발달 수준 차이를 불러왔다는 내용의 저서 '총, 균, 쇠'로 199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총, 균, 쇠는 전 세계 판매량 500만부를 넘긴 교양 서적으로,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바이러스나 전염병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다시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세균과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은 1만년 전 농경 사회가 시작하면서 발생했고, 최초 전파자는 가축이었다. 아즈텍·잉카 제국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의 총·검보다 유럽인들이 함께 갖고 들어온 감염병으로 더 많이 죽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2005년 출간한 저서 '문명의 붕괴'에선 과 거 문명 사회가 경험했던 몰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환경 파괴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틴어·그리스어·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다이아몬드 교수는 '총, 균, 쇠'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칭찬하기도 했다. 이번 ALC 웨비나에서도 그는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 체계이며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0/20200710000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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