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누가 삼성의 발목을 잡나
이영미 온라인뉴스부장
입력 : 2020-06-23 04:01
삼성가(家)에는 우군이 많구나. 전직 장관이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을 보며 새삼 그런 생각을 했다. 중국 반도체의 맹추격이 매섭지만 한국 반도체의 초격차는 당분간 유지될 거라는 낙관을 담은 글은 이런 말로 마무리됐다. “뛰는 이들의 발목을 주변에서 잡지 않으면 그렇다는 얘기다.” 며칠 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 정부의 반도체 기업 지원이 중국·미국 정부에 비해 부실하다’는 시장 분석을 내놓았다. 돕지도 않으면서 잘나가는 삼성전자 발목은 그만 잡자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한 해 매출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8%(2019년 기준)나 된다. 단일 회사 매출파워 1위다.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는 개미들의 희망이다. 3월 기준 주주는 약 136만명. 주식 액면분할 직전(24만명)과 비교하면 5배 넘게 증가했다. 선망의 대상이던 황제주가 국민주로 변신한 지난 2년간 개미는 든든한 투자처를, 삼성전자는 ‘백만 응원군’을 새로 얻었다. 삼성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지원군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지분 10%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있다. 국민경제도, 개인의 노후도, 개미의 투자 실적도, 사실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삼성전자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까 한 가지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삼성의 발목 같은 건 잡고 싶어 할 리가 없다.
삼성을 사랑하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게 뭔지는 안다. 오는 26일 검찰 수사심의위에서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가 논의된다. 국정농단 재판이 끝을 향해 가는 마당에 주가조작 및 분식회계 사건이 새로 터졌다. 폭풍 하나를 견뎠는데 더 큰 폭풍이 밀려오는 형국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를 거쳐 검찰 수사까지 장장 3년6개월이 걸린 대장정에 단계마다 당국과 삼성 간 혈투가 벌어진 총력전이었다. 결과에 따라 한편은 큰 상처를 입을 거다. 국내외 회계 전문가들이 총동원된 논쟁에 말을 보탤 능력은 없지만, 한 가지만은 짚어두고 싶다. 삼성물산 주가조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은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사실이다.
삼성그룹 승계 현안과 삼성·최서원·박근혜로 이어지는 부정청탁의 존재는 이미 법원에서 인정됐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1, 2심에서 엇갈렸던 판단이 지난해 8월 대법원에서 ‘인정’으로 최종 결론 난 것이다.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대도 달라질 건 없다. “승계를 위한 부정청탁은 있었다.” 부정청탁의 핵심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이니, 합병의 불법성은 따져볼 문제인 게 맞다. 적법한 합병이 가능했다면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연금공단에 손해를 입혀”(2심 판결문) 가며 두 회사의 합병을 도울 이유가 뭔가. 이번 사건은 일부의 오해처럼 반삼성 세력의 전면 공격 같은 게 아니다. 국정농단 재판이 다다른 자연스러운 종착지일 뿐이다.
이참에 삼성 가문을 돕는 게 삼성을 지키는 일인지 다시 논쟁했으면 좋겠다. 그걸 풀어야 우리 사회의 오랜 매듭도 함께 풀린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 이후 지난 25년 삼성 승계 드라마에서 삼성가의 무기는 ‘오너의 위기가 회사의 위기’라는 주장이었다. 설득은 잘 먹혔다. 대표 사례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복귀였다. 승계작업과 관련된 여러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은 2009년 대법원에서 집행유예(일부 무죄, 일부 유죄)를 선고받고 그해 말 사면됐다. 회장은 용서받고, 기업은 흥하고, 이제 모두가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11년 뒤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아들은 정확히 아버지와 같은 처지가 됐다. 고리는 그때 끊었어야 했다. 놓쳤다면 두 번째 기회라도 잡는 게 좋겠다.
이영미 온라인뉴스부장 ymlee@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3990&code=11171358&sid1=col&sid2=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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