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낼 돈도 없지만 청춘이여, 사랑하라
조선일보
입력 2020.06.19 05:00
'코로나 시대'와 공명… 80년대 뉴욕 그린 뮤지컬 '렌트'
도시는 재개발을 이유로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옥탑방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치료약 없는 죽음의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며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지난 16일 개막한 뮤지컬 '렌트'가 그리는 1980년대 미국 뉴욕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문제가 되고 코로나에 모두가 숨죽인 2020년 한국 상황과 공명을 일으킨다. 초연 때 뉴욕타임스가 "짜릿하고 기념비적인 록 오페라" "미국 뮤지컬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라고 불렀던 작품. 그 뒤 20년의 세월을 지나온 지금, 이 뮤지컬은 한국 무대를 만나 더 강렬해졌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 직격탄을 맞은 뉴욕 이스트빌리지를 배경으로, 뮤지션·무용수·가수·영상작가 등 젊은 예술가들이 겪는 1년 동안의 이야기. 무대 위 예술가들은 속삭이듯 감미로운 화음으로, 때론 터져나갈 듯 폭발적인 비트를 타고 노래한다. '돈의 힘에, 감염병의 공포에 무릎 꿇지 말라'고. '죽음이 두려워 비켜갈 만큼 서로 사랑하라'고.
전기도 끊긴 뉴욕의 낡은 건물에 사는 댄서 '미미'(김수하)는 성냥을 빌리러 뮤지션 '로저'(장지후)의 방에 들렀다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신시컴퍼니
◇무대를 찢는 최고 배우들의 화음
'렌트'의 매력은 한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릴 수밖에 없는 중독성 강한 노래들이다. 무용수 '미미'가 뮤지션 '로저'와 함께 부르는 '렌트'의 상징과 같은 노래 '어나더 데이(Another Day)'는 여전히 귀를 녹일 듯 달콤하다. "어떤 남자보다 더 남자답고, 어떤 여자보다 더 섹시했던" 남자 '앤젤'이 죽은 뒤 그의 연인 '마크'와 친구들이 '널 지켜줄게(I Will Cover You)'를 노래할 때, 눈물을 참을 수 있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오종혁, 장지후, 정원영, 배두훈, 아이비, 김수하, 최재림, 김호영 등 이름만으로 뮤지컬 팬들의 신뢰가 두터운 배우들이 이 아름다운 노래들로 무대를 채운다. 강렬한 기타와 드럼의 로큰롤에 올라 타는가 하면, 붉은 조명 아래 요염한 탱고를 추다가, 어느 순간 흑인 성가대가 부르는 가스펠처럼 고결한 화음을 선보인다. 무대로부터 객석으로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는 듯하다.
국립극장장을 지낸 안호상 홍익대 공원예술대학원장은 "40대 초반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이 공연을 처음 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우리 배우들이 주·조연 가리지 않고 극을 소화하는 최고의 재능과 기량을 보여줘 깜짝 놀랐다. 역시 뮤지컬은 배우의 예술인 것을 다시 실감했다"고 말했다.
◇불안의 시대를 품는 희망의 메시지
원래 '렌트'는 프랑스 파리의 옥탑방에 사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인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의 내러티브를 현대 뉴욕으로 옮겨와 재해석한 이야기. 여주인공 이름이 '미미'로 같은 것도 그 때문이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라보엠은 결핵, 렌트는 에이즈라는 감염병이 중요한 소재인데, 공연을 보는 내내 취업난과 생활고에 더해 코로나와도 싸워야 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이 겹쳐 가슴이 아팠다. 젊은 배우들이 서로 부딪치며 일으키는 스파크에 원작의 실험 정신이 살아 있 고, 극의 이음새가 매끄러워 완성도도 높다"고 했다. 박병성 평론가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활기를 한국 무대에 가장 근접하게 표현해낸 점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며 "모두가 불안한 시대에 두려움을 이겨내는 희망을, 사람 만나는 게 꺼려지는 시대에 공동체의 소중함을 전하는 뮤지컬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도 크다"고 했다.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8월 23일까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9/2020061900169.html
'종교-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읽기]바꾸지 않는 용기 (0) | 2020.06.23 |
---|---|
[백영옥의 말과 글] [154] 포기의 심리학 (0) | 2020.06.20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4] '짐(朕)'이 부른 외로움 (0) | 2020.06.19 |
KPOP (0) | 2020.06.19 |
뉴욕주 한인 직원, 흑인에게 "마스크 쓰세요"했다가 폭행당해 (0) | 2020.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