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중국은 상당 기간 한국 반도체를 못 따라잡는다
조선일보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前 정보통신부 장관
입력 2020.06.10 03:20
중국의 '반도체 굴기' 위협적이지만 한계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前 정보통신부 장관
중국의 제조 2025 전략은 2025년까지 부품과 중간재의 70~80%를 자체 생산·공급하고 2035년엔 선진국을 추월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여기서 중국이 가장 어렵게 느끼는 분야는 반도체이다. 중국의 반도체는 현재 자급률이 20%대에 머물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는 대부분 한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기술 격차도 3~5년이 난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14년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300조원을 투자해 단숨에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고 선언하고 거대 국영기업을 설립했다. 최근 최첨단 메모리를 개발해 한국 반도체를 바짝 뒤쫓아온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아직 양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국은 언제쯤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한다면 '당분간은 안 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1983년 반도체 사업에 투자를 시작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메모리 회사 10여 곳이 경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네 거대 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상태다. 시장의 진입 장벽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 또한 반도체 제조의 최소 선폭이 당시에는 1000㎚였으나 지금은 그 100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되어 제조 기술 자체가 훨씬 어려워졌다.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업의 문화와 노하우 등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같은 장비와 기술을 갖고도 품질과 생산량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특히, 반도체 양산은 대형 기술적 문제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민감한 영역이다. 이를 해결할 역량을 갖추는 게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다. 필자가 경험한 초대형 사건을 소개한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에서 1위로 등극하고 16MD램 세계 시장에서 6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던 1994년이다. 당시 메모리사업부장이던 필자에게 제품 담당 임원이 "이상한 불량이 난다"며 전자현미경 사진 몇 장을 보여줬다. 평소 불량이 거의 없는 반도체 기판(당시 200㎜) 중앙에서 발생한 결함이었다. 며칠 후 대형 컴퓨터 고객사가 저온 정지 상태에서 불량이 발생한다고 연락해 왔다. 그 후 동일한 불량 신고가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급하게 검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출하 대기 중인 16MD램을 대량 테스트해보고는 기겁했다. 불량률이 몇%씩 나왔다. 당장 전 세계 판매망에 연락해 수천만개나 출하된 16MD램을 전부 국내로 가져오든가 현지에서 불량품을 선별하도록 하고 더 이상의 출하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500개 제조 단계와 50일 이상 공정 기간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해 그런 이상한 불량이 발생했을까. 전 부서 간부를 소집해 매일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하루에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니 앞이 깜깜했다. 박사급 인력 수십명이 머리를 맞대고 밤잠을 설치면서 분석해 결국 원인을 찾아냈다. 폴리실리콘의 저항을 줄이고자 인(P)분자를 많이 확산시켰는데 그게 하부의 절연막에 분자 크기의 미세한 구멍을 만들고 이를 통해 흐르는 미세한 전류가 메모리 셀의 데이터를 바꾸는 희귀한 현상임을 알아냈다. 제조 공정을 바꿔 결과가 나오는 데 한 달이 걸렸고 설계까지 수정해 완전히 해결하는 데 약 6개월이 걸린 초대형 사건이었다.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첫손에 꼽히는 회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이런 위기 상황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통하고 협업하는 회사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 단계까지 올라서는 데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SK하이닉스도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며 글로벌 강자로 우뚝 섰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이렇듯 지난 30년 동안 수도 없이 터지는 기술적 문제를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반면, 그러지 못했던 일본의 메모리 업체들은 거의 소멸했다. 중국이 엄청난 돈을 투자하며 거칠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고 특히 중앙정부가 이 야심을 진두지휘한다고 해도 이런 과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 다. 현재의 중국 상황을 보면, 반도체 생산 공장과 설비는 갖췄지만 아직 이를 뒷받침할 조직 문화와 노하우 수준은 갈 길이 꽤 있어 보인다.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단 전제는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고, 뛰는 이들의 발목을 주변에서 잡지 않으면 그렇다는 얘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9/20200609044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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