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비율 급등→신용추락' 악순환에… EU우등생 스페인도 무너졌다
조선일보
입력 2020.06.09 03:25
['재정확대' 한국 향한 충고] [1] 한번 쌓인 빚, 되돌리기 힘들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23년 국가 채무비율을 46%로 전망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2023년 국가 채무비율이 46%가 되면 중장기적으로 신용 등급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이 같은 정부 전망에 바탕을 둔 것이다. 피치가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지킨다는 약속을 못 지키면 신용 등급 하락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한 것은 국가 채무가 재정운용계획보다 더 빨리 늘어날 경우 2023년 이전에도 등급 강등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나라에서도 국가 채무 급증은 대부분 신용 등급 강등으로 이어졌다.
◇스페인, 경제 위기 한 번에 채무 급증
2007년까지만 해도 유로존의 경제 우등생이었던 스페인이 대표적인 예다. 10여년간 이어진 관광 산업 호황과 부동산 붐으로 성장률은 유로존 국가 중 가장 높았고, 세수가 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35.5%에 불과했다. 국가 신용 등급은 3대 신용평가사에서 모두 최고 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과거 국가 채무 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유로존 경제 우등생'으로 불리던 스페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재정 적자가 불어나며 국가 부도 위기에까지 몰렸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재정이 건전해도 한번 빚이 늘어나면 되돌리는 게 어렵다"고 경고한다. 사진은 지난 201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실업자들이 고용관청 밖에서 줄 서 있는 모습. /블룸버그
그러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경제의 취약점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은행이 급속히 부실화하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세수가 감소하는데도 실업수당 지출이 급증하자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전까지 아무 문제 없다던 신용평가사들은 신용 등급을 한두 단계씩 강등하기 시작했고, 스페인 5년물 국채 금리는 2%대에서 6%대로 치솟았다(국채 가격 하락). 정부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면서 재정 적자는 훨씬 더 빠르게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스페인의 국가 채무 비율은 불과 7년 만에 100.4%로 치솟았고, 신용 등급은 더 빨리 곤두박질쳤다. '트리플 에이(AAA)'를 자랑하던 국가 신용 등급은 5년간 9단계 하락했고, 특히 2012년에는 한 해에 신용 등급이 3단계나 추락하며 투기 등급 직전까지 떨어졌다.
◇신용 등급, 한번 떨어지면 회복 어려워
올해 우리나라 국가 채무가 100조원 증가하며 재정 건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우리나라의 채무 비율은 다른 OECD 국가보다 양호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재정이 건전한 나라도 한번 빚의 고삐가 풀리면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신용 등급 강등과 맞물리면 순식간에 경제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요즘 국제 금융계의 관심사는 이탈리아의 신용 등급 강등이다. 이탈리아는 무디스와 피치에서 투자 적격 중 가장 낮은 등급을 받고 있는데, 한 계단 떨어져 '투자 부적격'이 되면 채권시장에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한 투자 전문가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탈리아 채권은 쓰레기"라며 "투기 등급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은 오로지 유럽중앙은행(ECB)의 지원 덕분이지만, 지원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유럽 3대 경제 대국 이탈리아가 이런 신세가 된 것도 막대한 국가 채무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국가 채무는 1조7000억유로로 유럽에서 가장 많고, 채무 비율은 135%로 그리스 다음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자를 갚는 데만 GDP의 4%를 쓴다.
이탈리아도 처음부터 빚이 많았던 건 아니다. 1980년 53.5%였던 이탈리아의 국가 채무 비율은 1992년 100%를 돌파했다. 정치 혼란, 방만한 재정 운영, 통화정책의 실패, 저출산 고령화 등이 결합한 결과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80년대 이탈리아의 채무 급증은 재정 관리 실패의 전형적인 사례"라며 "정치권이 재정 운용에 과도한 영 향력을 행사하면서 비효율이 증가하고 공공 행정이 파편화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지금 같은 재정지출을 이어가면 국가 채무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한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일본처럼 ECB나 엔화라는 방패막이도 전혀 없어 국가 채무 증가와 신용 등급 강등으로 인한 고통과 혼란이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9/20200609001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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