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인다, 어쨌든 살아야 한다'… 익숙한데 색다르죠?
조선일보
입력 2020.06.04 05:01
비평가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 등단 50년 만에 첫 산문집 출간
프랑스 현대시를 새로 옮기고 풀이한 오생근 교수는 “외국시 번역은 독자의 창조적 상상력을 촉발하는 원천일 수도 있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평생 공부한 프랑스 문학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시인들의 작품을 새로 번역하고 원문과 대조하며 해설하는 일에 더 전념하겠다. 비평을 쓰는 것보다 이게 더 재미있다."
오생근(74) 서울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산문집 '시인과 나무, 그리고 불빛'(문학판)을 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번역가로 이름 높은 오 교수는 초현실주의 문학연구서와 평론집을 여럿 냈지만, 산문집을 낸 건 비평가 등단 50년 만에 처음이다.
삶과 문학을 성찰한 에세이지만, '프랑스 시 깊이 읽기'가 눈길을 끈다. 프랑스 현대시의 정수(精髓) 20여 편을 새롭게 번역하고 원문의 묘미를 평이한 언어로 풀이했다. 강단을 떠난 학자가 일반 독자를 위해 인문학 강의하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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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의 새 번역은 폴 발레리의 대표 시 '해변의 묘지'에서 두드러진다. '정오(正午)는 언제나 거기서 불꽃들로/ 바다를 구성한다,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를!'이라고 노래한 시다. 바다와 묘지의 대비를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를 성찰케 하는 순수한 의식의 힘을 보여주기에 전 세계적으로 애송돼 왔다. 마지막 연 'Le vent se lève!… il faut tenter de vivre!'가 가장 유명하다. 역자(譯者)에 따라 '바람이 일어난다… 살아야겠다'거나,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고 옮겨져 왔다. 영역은 'The wind is rising!… We must try to live!'이다. 독특하게도 오 교수는 '바람이 인다… 어쨌든 살아야 한다!'고 옮겼다. 그는 "살려고 시도해야만 한다고 산문처럼 번역하기보단, '어쨌든'을 넣어 시의 느낌을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샤를 보들레르의 시 '알바트로스'도 새로 풀이했다. '흔히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갑판 위에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이라고 전개된 시는 현대 사회에서 대중에게 조롱당하는 시인의 처지를 노래한 것. 오 교수는 "갑판(Les planches)'이란 표현은 원래 '판자나 널빤지'를 뜻하는 단어를 복수(複數)로 써서 연극 무대를 뜻한다"며 "뱃사람들이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를 대중의 무대 위에 올려놓고 웃음거리로 삼는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오 교수는 폴 엘뤼아 르의 시 '여기에 살기 위해서'를 번역하면서 "내가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빛이 나에게 준 것을 그 불(火)에 주었다'는 구절"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준다(donner)는 동사에 기부를 뜻하는 명사(don)가 들어 있고, 하느님과 자연이 준 '선물'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10월 프랑스 시선집 해설도 출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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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4/20200604000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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