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공장 돌리려고 직장폐쇄… 르노삼성의 '웃픈 현실'

최만섭 2020. 1. 11. 16:54

공장 돌리려고 직장폐쇄… 르노삼성의 '웃픈 현실'

조선일보
  • 임경업 기자 
  • 입력 2020.01.11 03:13

    [오늘의 세상]

    勞의 공장마비용 '게릴라 파업'에 使, 일하려는 근로자만 출근 허용
    공장 스톱만은 막으려는 부분폐쇄… 어제 80% 출근, 평소의 절반 생산

    9일 밤 르노삼성자동차 부산 공장 생산직들은 회사로부터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제목은 '부분 직장 폐쇄 공고'. "10일부터 별도 공지 시까지 부산 공장을 부분 폐쇄하며, 즉시 노조원들은 공장에서 퇴거하고 허가 없이 사업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내부 홈페이지에도 공고문이 게시됐다.

    하지만 이건 공장을 닫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최소한이나마 공장을 돌리기 위한 회사 측의 궁여지책이다. 왜 공장 가동을 위해 부분 폐쇄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공장 돌리기 위해 부분 폐쇄

    10일 오후 부산 강서구에 있는 르노삼성차 공장. 오후 4시가 되자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통근버스 20대에 타고 공장 문을 나섰다. 원래 공장은 주야간 교대로 하루 18시간 가동했다. 하지만 이날은 주간 작업만 이뤄졌다. 공장은 근로희망서를 낸 1720여명이 돌렸다. 이 회사 노조가 파업을 선언했지만, '일을 하겠다'며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출근한 이들이다. 전체 임직원의 약 80%다.

    르노삼성 노조는 임단협 협상이 결렬되자, 지난달 20일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첫날 참가율은 43.5%를 기록했지만, 최근 30%까지 떨어졌다. '파업 대신 공장을 돌리는 게 우선'이라며 파업에서 이탈한 이들이 늘었다. 회사는 이들을 중심으로 공장을 부분적으로나마 돌릴 수 있었다.

    상경집회 vs 파업 불참, 엇갈린 勞 - 르노삼성이 노조의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10일 부분 직장 폐쇄를 선언한 날, 노조 조합원들은 엇갈린 길을 걸었다. 파업을 계속 하기로 한 노조 지도부 등 200여명은 서울로 올라와 강남구 르노삼성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왼쪽). 반면 파업에 불참한 약 80%의 직원들은 근로희망서를 제출하고 공장을 돌렸다. 주간 근무를 마친 직원들이 오후 4시 퇴근 버스로 향하고 있다(오른쪽).
    상경집회 vs 파업 불참, 엇갈린 勞 - 르노삼성이 노조의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10일 부분 직장 폐쇄를 선언한 날, 노조 조합원들은 엇갈린 길을 걸었다. 파업을 계속 하기로 한 노조 지도부 등 200여명은 서울로 올라와 강남구 르노삼성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왼쪽). 반면 파업에 불참한 약 80%의 직원들은 근로희망서를 제출하고 공장을 돌렸다. 주간 근무를 마친 직원들이 오후 4시 퇴근 버스로 향하고 있다(오른쪽). /장련성 기자·김동환 기자

    그러자 노조는 지난 7일 부분파업으로 파업 방식을 바꾼 다음, 출근한 근로자들을 2~3개 조로 쪼개 특정 시간에 작업하지 않는 '게릴라 파업'을 벌였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인 자동차 공장의 한 개 공정만 멈추면 생산 라인 전체가 멈추게 된다. 이런 특성을 노조가 노린 것이다. 회사는 미리 근무조를 짤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회사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 회사에 가장 효율적으로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파업을 벌인 것"이라고 했다.

    보통 '직장 폐쇄'는 노조 파업에 맞서는 회사 측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회사를 접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하겠다"는 직원이 80%인 상황에서 르노삼성이 공장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부분 직장 폐쇄'라는 선택지를 꺼낸 이유다. 부분 폐쇄를 하면 파업 중인 노조원의 공장 출입을 막고, 파업 비참가자를 중심으로 일부나마 공장 가동이 가능하다. 르노삼성은 10일 평소 생산 대수의 절반 수준을 생산했다.

    ◇세계 최고 수준 임금 공장의 파업

    르노삼성 파업 참가율이 저조한 것은 공장 생산직 직원 스스로 생각에도 파업의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임단협에서 기본급 15만원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올해 회사가 적자 위기인 상황에서 기본급을 올려주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미 르노삼성 부산 공장은 전 세계 르노그룹 생산 기지 중 그룹 본사가 있는 프랑스(2위)와 스페인(3위)을 제치고 시간당 인건비가 제일 비싸다. 르노삼성 25년 차 생산직 임금은 약 8250만원(성과급 포함)이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삼성은 이미 수주 절벽에 직면해 있다. 올해부터 본사의 위탁 생산 물량 10만대(닛산 로그)가 끊기고, 후속 모델인 XM3 수출 물량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회사는 작년부터 반복된 파업으로 인한 누적 매출 손실이 45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르노삼성 경영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로스 모조스 제조·공급담당 부회장이 오는 2월 말 부산 공장을 찾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2월 "노조 파업이 더 장기화하면 부산 공장에 신차 물량을 줄 수 없다"고 경고했던 인물로, 신차 물량 배정을 결정하는 핵심 임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파업으로 르노삼성의 신차 배정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회사의 미래를 걸고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는 당장 파업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 10일 노조 조합원 약 200명은 서울 강남구 르노삼성 본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함께 싸우고 다 같이 살자' '고된 노동 박살 내고 고용 안정 쟁취하자'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사측을 규탄했다. 박종규 르노삼성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얼마나 겁을 먹었
    으면 부분 직장 폐쇄를 하느냐. 하려면 전면 폐쇄를 하라"고 했다.

    르노삼성의 부분 직장 폐쇄는 이번이 두 번째다.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는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파업을 벌였고, 파업이 길어지자 사측은 부분 직장 폐쇄를 결정했다. 당시엔 폐쇄 결정 하루 만에 노조가 파업을 풀었다. 하지만 이번엔 노조 입장이 더 강경해 상황이 장기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