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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스, 로고스, 파토스

최만섭 2019. 9. 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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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

논거발견술은 크게 논리적인 측면과 정감적인(또는 심리적인) 측면으로 나누어진다. 즉 수사학의 주된 기능을 설득하기(persuader)라고 본다면 그것은 논증(argumenter)과 감동(émouvoir)의 두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여 수행될 수 있다. 논증을 통한 설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논리적이거나 준논리적인 장치이며 말하거나 듣는 사람의 성향, 즉 심리적 성향은 고려되지 않는다. 논증을 통한 설득이 논리적 증거를 중요시한다면 감동을 통한 설득은 전언을 그 자체로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용도와 전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질에 맞추어 고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인 증거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심리적이며 윤리적인 증거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학의 주된 목표인 설득의 기능에 도달하는 방식들은 합리적인 방식들일 수도 있고 정감적인 방식들일 수도 있다. 이렇듯 수사학에서는 이성과 감정, 합리적인 것과 정감적인 것을 서로 분리시키지 않으며 그 전체 속에서 고려하고자 한다. 이 점은 수사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흔히 수사학을 ‘논증의 기술’로 정의함으로써 설득이 지니는 정감적인 차원은 사상시켜버리고 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차원만 부각시키는 오류를 종종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득이란, 특히 설득의 대상이 불특정 다수, 즉 익명의 대중일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감정적 상태에 호소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수사학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정감적 차원에서 수사학은 조종·이데올로기·선전, 그리고 광고 등의 설득의 전략과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논거발견술을 제기된 문제에 유리한 대답을 발견해내는 기술 또는 제기된 질문이나 문제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기에 적합한 요소들을 발견해내는 기술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설득에서부터 유혹에 이르기까지, 또는 논증에서 정념들에 대한 유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방법이 사용되어도 무관하다고 본다.

설득의 방향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설정할 것인가 아니면 정감적으로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방향들을 구분한 바 있다: 에토스(ethos)·파토스(pathos)·로고스(logos).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세 가지 방식들인 에토스·파토스·로고스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연설 자체에 의해서 제공되는 설득의 수단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는 화자의 인품에 있고, 둘째는 청중에게 올바른 (목적한) 태도를 자아내는 데 있으며 셋째는 논거 자체가 그럴싸하게 예증되는 한에 있어서 논거 그 자체와 관련을 맺는다.

(Rhétorique, I, 1356a)

이 가운데 처음 두 방향이 정감적인 방향이라면 마지막은 이성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정감적인 방향의 첫번째 방식인 에토스는 청중의 관심을 끌고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 변론가가 지녀야 할 ‘성격(caractère)’을 뜻하며 두번째 방식인 파토스는 청중의 심리적 경향·욕구·정서 등을 포괄한다. 마지막으로 설득의 이념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에 속하는 로고스는 논증 또는 논거(argument)의 방식들에 관련된다. 논거를 통한 설득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로고스에 대해서는 뒤이어 자세한 설명이 제시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에토스와 파토스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에토스란 개념은 청중이나 독자의 정서적인 반응을 의미하는 파토스와 구분되는 개념으로─물론 에토스와 파토스는 모두 정감적인 범주에 속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에토스는 파토스에 비해 정서적 강도가 비교적 미약한 것들을 주로 지칭한다─ 말하는 사람, 혹은 글쓰는 사람의 인격을 의미하는 동시에 의사 소통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관습·가치관·습속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화자의 인품은 그를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로 만들 수 있게끔 이야기될 때 설득의 원인이 된다. 대체로 우리들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믿을 만한 사람을 더욱 쉽게 신뢰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지식의 범주를 벗어난 문제점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할 때 우리들은 믿을 만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래서 이러한 신뢰는 이야기 자체에 대해서 구축되어야 하지 화자가 이러저러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앞서의 인상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이 수사학에 대해서 주장하듯이 화자의 신뢰성이 그의 설득력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우리는 역시 화자의 인품이 모든 설득의 수단 중에서 가장 막강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Rhétorique, I, 1356a)

청중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하여 변론가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청중의 심리적 상태 및 성향들을 총칭하는 파토스는 감정이나 정서들로 구성되는 정념(passion)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정념들은 지적인 삶과 대립되는 정서적인 삶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또한 사회적인 삶을 표상하기도 한다.

수사학의 목표가 변론가와 청중의 거리를 좁히는 데 있다고 한다면 정념들이란 바로 우리와 타인들을 서로 연결시키면서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수사학에서 파토스 즉 정념론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정념의 수사학은 심리학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이다. 수사학에서 정념들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설득의 도구로 고려된다. 청중들의 유형에 연관되어 있는 정념들은 논거들의 선택을 유도하고 결정짓는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하고 있듯이 화가 난 사람이나 평온한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말을 걸지는 않는 법이다.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판단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았거나, 그렇더라도 아주 경미한 것을 저지른 것처럼 보인다. 증오를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정반대이다. 잘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미래의 사태는 좋은 조건 속에서 성취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나타나지만 정념이 없고 그 정신 상태가 슬픈 사람에게는 그 정반대이다.

(Rhétorique, II, 1378a)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념을 “우리를 변화시킴으로써 우리의 판단에 차이를 만들어내고 고통과 즐거움을 수반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그의 수사학 제2권 중 처음 열 장(chapitre)을 정념들에 관한 논의에 할애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수사학이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정념들은 다음 열네 개로 구분될 수 있다: 분노와 평온, 우정과 증오, 불안과 신뢰, 수치심과 파렴치, 친절, 동정, 분개, 선망, 경쟁심과 경멸.

이렇듯 이성의 수사학과 정념의 수사학으로의 구분 및 그것들간의 유기적 결합은 약간의 용어상의 변형을 거치기는 했어도 수사적 개념망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틀이라고 볼 수 있다.1) 이러한 분류는 모든 언어적 메시지가 실행될 때 구분해낼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들─변론가/에토스/발화자, 담론/로고스/텍스트, 청중/파토스/수신자─에 대응한다.

중요한 점은 앞서 언급했듯이 설득이란 텍스트를 통해서만, 즉 차갑고 추상적인 논증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변론가의 성품이나 성격 또는 변론가가 청중의 영혼에 불러일으키는 정념들 또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주장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증명이 그 필요충분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바로 이러한 확신에서 스토아 학파의 제논은 “두 개의 담론을 다 들어보기 전에는 결코 판결을 내리지 마라”는 법정의 일반적 견해에 반대하게 되었는데 그가 두번째 담론을 들어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첫번째 담론은 논리적으로 옳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첫번째 담론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했을 경우 두번째 담론을 들을 필요가 없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두번째 담론이 옳을 것이므로 또 들을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학이 상정하는 모순의 상황에서는 진위를 통한 절대적인 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학은 진술의 내용만큼이나 그것이 행해지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성뿐 아니라 감각이나 정념들에 호소하는 설득을 지향하게 된다.

‘유혹의 수사학’이라는 수사학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가능하게 한 설득의 이러한 정념적 차원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수사학, 예를 들어 소피스트 계열의 철학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고르기아스는 설득을 일종의 마술 행위에 비유하곤 했다. 즉 훌륭한 변론가는 청중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이성이 저항할 수 없는 곳으로 청중들을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고르기아스에 의하면 이러한 담론의 마술은 시로부터 차용해온 여러 가지 문체론적 방식들─이미지, 리듬, 다양한 반복적인 표현들─에 의해 가능해지는데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의사 소통의 심리적 조건들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훌륭한 변론가는 문법이나 논리 또는 도덕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른바 심리학에도 정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로고스·에토스·파토스 가운데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수사학의 방향이 달라지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만약 파토스를 강조하게 되면 수사학은 이데올로기적 조종(manipulation)에 가까워지고 로고스에 초점을 맞추면 청중에 대한 설득 효과나 변론가가 전달하는 가치들과는 독립되어 있는 수사학에 대한 논리적이고 논증적인 관점이 생겨나게 되며 에토스에 강조점이 놓이면 주체들의 모럴, 즉 그 의도가 중요해지는 수사학을 얻게 된다. 또한 이성의 수사학과 정념의 수사학 가운데 어느 것을 더 강조해야 하며 어떠한 비율로 혼합시켜야 할 것인가는 결코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이는 변론가-담론-청중으로 이어지는 수사적 상황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다루고자 하는 문제가 긴박하거나 변론가와 청중들간의 사전의 합의가 보다 제한되어 있을 경우, 그리고 청중이 논리적인 논증에 쉽게 싫증을 내거나 익숙하지 않은 경우에는 에토스나 파토스를 이용한 설득의 전략이 훨씬 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법정과 같은 곳에서는 사실을 왜곡해서 감정에 선처를 호소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논거를 통한 설득이 보다 더 중요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 (수사학, 2000. 2. 15., 박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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