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이철민의 뉴스 저격] 레미제라블 노래 부르는 시위대 "자유 홍콩인으로 남고 싶다"

최만섭 2019. 8. 30. 05:38

[이철민의 뉴스 저격] 레미제라블 노래 부르는 시위대 "자유 홍콩인으로 남고 싶다"

조선일보

입력 2019.08.30 03:00

[13주째 접어든 홍콩 시위… 홍콩인들은 무엇을 원하며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 홍콩인 4명중 1명 시위 참여
"무시무시한 집값 불만도 있지만 자유 빼앗기는 위기감이 더 커" 입법회 건물 벽엔 '狗官' 낙서

홍콩의 금융·외환시장, 中경제에 미치는 영향 막대
인민해방군 동원 가능성은 낮아… 건국 국경일인 10월 1일이 분수령

27일 거대한 오성홍기(五星紅旗)가 휘날리는 홍콩 입법회 종합건물에선 보름 전 이곳을 점령한 시위대가 스프레이로 갈겨쓴 구호를 지우는 작업이 아직도 한창이었다. ‘물러서지도, 흩어지지도 않는다 ‘홍콩독립’이나 정부 관리를 개(狗)에 비유한 ‘구관(狗官)’ 등의 낙서는 그대로였다.

입법회 건물의 스프레이 낙서
/이철민 기자
입법회 건물의 스프레이 낙서 /이철민 기자
홍콩 정부의 범죄자인도법(송환법)안 제출에 맞서 6월9일 시작한 홍콩시민들의 민주화 시위가 2014년의 최장 시위 일수인 79일을 넘겼지만, 열기는 사그라질 기미가 없다. 중국 정부는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 주권을 되찾으면서, 이후 50년간 본토의 체제와 분리해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보장하는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약속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안이 입법회를 통과되면 홍콩의 반중(反中)·반체제 인사들이 자의적으로 중국 본토로 송환되고, 중국 정부의 반(反)민주적 조치들이 거세질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마이클 틴 입법회 의원/이철민 기자
마이클 틴 입법회 의원/이철민 기자

이날 입법회 의원 마이클 틴(68)은 이틀 전 홍콩 샤틴(沙田)구의 한 쇼핑센터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격렬한 도심 시위를 마친 방독면 차림의 젊은이 수십 명을 쇼핑센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 치며 반기는 모습이었다. 친중파(親中派) 의원으로 분류되는 그는 “사람들이 도심에서 온갖 소동을 벌이고 돌아온 이들을 환호하는 이 영상은 지금의 홍콩 시위에 대해 많은 걸 보여준다”고 했다.

주말인 24일 카우룽(九龍) 지역의 군통 시위 현장도 같은 모습이었다. 가게 앞 상인과 행인들도 밤늦게 시위대와 “경찰 고무탄에 실명(失明)한 눈을 돌려달라” “광명(光明) 홍콩, 시대혁명(時代革命)” 등의 구호를 외쳤다. 누군가 시작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노래 “다시는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성난 이들의 노래가 들리지 않느냐(Do you hear the peoplesing?)”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홍콩정부의 캐리 람 행정수반은 반발에 밀려 지난 6월 중순 송환법안을 유보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요구는 이 법안의 완전 철회는 물론, 경찰의 유혈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와 행정수반·입법회 의원 직선제 등 5개 조항으로 확대됐다. 현재 홍콩 수반은 중국 정부가 지명한 1명에 대해 1200명의 대의원이 투표하는 간선제(間選制)로 선출된다. 또 입법회 의원 70명 중 절반도 중국 정부가 승인한 간선(間選) 직능별 의원이다. 740만 홍콩 시민은 1인1표 보통선거에 의한 직선제 완전 자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직선제 의원이자 중국 최고 입법기구인 전인대(全人代)의 홍콩 대표인 틴 씨는 “대규모 평화 시위에도 정부가 전혀 양보하지 않자, 지금 대중은 폭력적 시위에도 비판하지 않고 도덕적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며 “중국 상층부에도 송환법 철회, 독립적인 조사위 구성 등 일부 조건은 수용해야 한다고 계속 건의하지만, 지금까지 대답은 ‘노(no)’였다”고 말했다.

일부 홍콩 매체는 구두상자 만한 홍콩 아파트를 살 돈이면 프랑스에선 저택을 살 정도라는, 최악의 주거·생활 환경에 젊은이들이 분노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샘슨 위엔 링난대 교수/ 이철민기자
샘슨 위엔 링난대 교수/ 이철민기자

그러나 샘슨 위엔 링난대 교수(정치학)는 23일 “그런 사회경제적 요인은 부차적”이며 “경찰의 불허에도, 전체 인구의 4분의1인 170만 명이 나와 평화 행진을 한 것은 그 동안 누려온 시민적 자유를 계속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홍콩의 실업률은 세계 최저 수준인 2.8%로, 실업률이 40~50%에 달했던 ‘아랍의 봄’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가 동료 교수들과 12차례에 걸쳐 6688명을 상대로 시위 현장에서 직접 실시한 면접 조사에서도 시위의 주(主)동기는 민주주의 쟁취였다.

딕슨 밍 싱 홍콩과기대 교수(사회과학부)는 “사람들은 ‘중국의 법치 수준이 세계 상층 3분의1에 속한다’는 홍콩 보안장관의 보고서나 170만명이 평화시위를 한 즈음에 인민일보에 나온 ‘우선 홍콩의 판사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칼럼을 접하면서, 갈수록 자신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장치들이 사라진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법치와 같은 핵심적 가치를 지키려면 평화적 수단뿐 아니라 때로는 보다 강력한 불법적인 저항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딕슨 밍 싱 홍콩과기대 교수/이철민 기자
딕슨 밍 싱 홍콩과기대 교수/이철민 기자

‘홍콩인(Hong Konger)’라는 정체성(正體性)이 계속 훼손된다는 인식도 이들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중국 정부는 수년 전부터 이웃 하이테크 도시인 선전(深圳)과 광저우(廣州) 등 남부 광둥성의 주요 도시와 홍콩을 잇는 거대 경제권을 구축하며 홍콩의 젊은이들에게도 이 지역으로의 이주를 권유한다. 그러나 싱 교수는 “학생들은 중국 국경만 넘으면 구글·페이스북 접속이 차단되고 문화도 달라, 매우 냉소적”이라고 말했다. 또 여론을 이끄는 지역 사회의 요직은 중국 본토 출신이나 친중파가 장악했고, 지난 22년간 120만 명이 유학·금융업 종사·친족 결합 등의 명목으로 대륙에서 홍콩으로 이주했다. 최고 명문인 홍콩대와 홍콩폴리테크대(PolyU) 총장도 처음으로 본토 출신이 임명됐다.

싱 교수는 “홍콩대에선 캠퍼스 내 대자보(大字報)도 금지되는 등, 홍콩인의 정신을 지배하려는 작업이 계속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젊은층일수록 ‘홍콩인’의 정체성은 훨씬 강했다. 지난 6월 홍콩대 조사에선 18~29세 연령층에서 무려 75%가 ‘중국인’ ‘홍콩의 중국인’이란 표현보다‘홍콩인’을 선택했다. 30세 이상에서도 49%가 스스로를 ‘홍콩인’이라고 불렀다. 전체적으로는 1997년 35.9%에 그쳤던 ‘홍콩인’이란 인식이 20여년 뒤에 오히려 52.9%로 올랐다. 위엔 교수는 “홍콩은 청나라 말기부터 본토와 분리돼 150여년간 영국 지배 속에서 독자적인 경제·민주성장을 이뤄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는 의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중국이 실제로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진압에 나설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드물다. 서방이 신뢰하는 국제적 상법 기준에 따라 개방된 홍콩의 금융·외환시장이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1997년 중국 경제(GDP)에서 18%였던 홍콩의 경제력은 작년엔 3%로 줄었다. 그러나 전세계 4위의 홍콩 증시로 몰려든 외화의 70%가 중국 기업들에 흘러간다. 텐센트·샤오미 같은 거대 중국 IT 기업이 상장(上場)한 곳도 상하이가 아니라 홍콩 증시다. 홍콩 은행이 본토 은행들에 제공한 융자만 1조2770억 달러. 엄청난 채무에 시달리는 중국 부동산 기업들의 돈줄도 홍콩이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외자(外資)의 60%도 홍콩을 거친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가 빠르게 글로벌화했지만 금융·법률 개방을 하지 않아 역설적으로 홍콩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중국도 굳이 추가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무릅쓰지 않아도, 시위를 옥죌 수단을 많이 갖고 있다. 최근 홍콩 정부가 운을 띄우는 ‘긴급조례’도 그 한 예다. 또 홍콩인들과 언어가 같은 광둥성의 무장경찰 2000명이 이미 잠입해 홍콩 경찰과 함께 시위를 진압하면서, 공산당 용어인 ‘동지(同志)’란 표현을 쓰는 게 TV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고무탄 발사 등 최근 수개월 간 홍콩 경찰이 행사한 과도한 물리력은 홍콩인들이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건국 국경일인 10월1일까진 어떤 형식으로도 시위를 진정화해야 한다. 틴 의원은 “중국 정부로선 지난 40년의 업적을 만방에 홍보하는 국경일에 언론의 관심을 홍콩의 대규모 시위와 공유할 수는 없다”고 했다. 2047년 이후 홍콩의 ‘일국양제’는 어떻게 될까. 싱 교수는 “중국은 형식은 유지하되, 그 이전에 홍콩의 저항을 부수려 할 것”이라고 했다. 틴 의원은 “그건 시진핑 주석도 답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봐요, 그때까지 홍콩이 일국양제를 유지하기만 해도 행운”이라고 했다.

"독립 아닌 진정한 자치 원해… 日·대만 우리 지지, 한국도 기대한다"

'데모시스토' 사무총장 조슈아 웡, 한국 정부와 정치인의 지지 호소

조슈아 웡

"우리는 한국이 30년 전 싸웠던 위협에 맞서고 있다."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단체인 '데모시스토(Demosistō)를 이끄는 사무총장 조슈아 웡(黃之鋒·22·사진)은 27일 "홍콩인들도 스스로의 주인이 되고 싶다"며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의 공개 지지를 호소했다. 웡은 2014년 홍콩 행정수반의 자유 입후보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운동(Umbrel la Movement)에서 학생 시위를 이끌어 당시 79일을 끈 이 시위에서 국제사회의 아이콘이 됐다.

지난 6월 17일 두 번째 투옥에서 풀려난 그는 "우리는 독립이 아니라, 진정한 자치(自治)를 원한다"고 말했다.

웡은 "중국 정부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시위는 10월 1일 중국 건국일을 넘어 11월 24일 구의회 선거일까지도 계속된다"며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꿈을 이루려고 싸운다"고 했다.

그는 "5년 전 우산운동 때 시진핑은 주석이었지만 지금은 황제"라며 "이후 많은 활동가가 투옥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회 의원들이 자격을 박탈당해 홍콩은 '양제(two-system)'가 아니라, '1과 2분의 1'제도"라고도 했다.

그는 "타이완은 물론 일본의 아베 총리까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데 한국은 수동적"이라고 말했다. 웡은 "문재인 대통령도 수십 년 전 민주화를 위해 일하지 않았느냐"며 "중국과의 어떠한 상업적 이익도 기본적 인권을 앞설 수는 없다"고 했다.



진압 경찰에 레이저포인터 쏴… 빼곡히 붙은 민주화 구호 - 지난 25일 밤 홍콩 츠엔완 구에서 시위대원 중 일부가 이날 물대포차 두 대를 배치한 경찰에 레이저포인터를 쏘고 있다(위 사진). 같은 날 쿤통 구의 한 지하 통로 벽에 빼곡히 붙은 민주화 구호와 집회 장소를 알리는 쪽지들을 한 홍콩 시민이 읽고 있다(아래 사진).
진압 경찰에 레이저포인터 쏴… 빼곡히 붙은 민주화 구호 - 지난 25일 밤 홍콩 츠엔완 구에서 시위대원 중 일부가 이날 물대포차 두 대를 배치한 경찰에 레이저포인터를 쏘고 있다(위 사진). 같은 날 쿤통 구의 한 지하 통로 벽에 빼곡히 붙은 민주화 구호와 집회 장소를 알리는 쪽지들을 한 홍콩 시민이 읽고 있다(아래 사진). /AP 연합뉴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30/20190830000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