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삼성전자 사장, 처음으로 '위기'를 말하다

최만섭 2019. 8. 9. 05:21


삼성전자 사장, 처음으로 '위기'를 말하다

입력 2019.08.09 03:05

갤럭시노트 10 공개한 고동진
"사장 된 후 한번도 말안했는데 내년 위기라고 말해야 할 상황"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현재 3~4개월을 버틸 준비는 돼 있습니다. 다만 장기간 지속되면 스마트폰 사업도 상당히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고동진(58)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 총괄 사장은 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새 프리미엄폰인 갤럭시노트10 시리즈를 공개한 뒤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세계 1위 스마트폰 사업을 이끄는 고 사장이 공식적으로 이런 내용을 밝힌 것은 처음. 고 사장은 "보통 4차 벤더(협력사)까지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PCB(인쇄회로기판) 같은 부품까지 감안하면 여러 재료 수급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또 "당장 갤럭시폴드나 갤럭시노트10 등 하반기 신제품에 직접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몇 달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며 "힘을 합쳐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위기 말해야 할 듯"

지난해 삼성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사용자들의 폰 교체 주기마저 길어지면서 '연간 판매량 3억대' 벽을 넘지 못했다. 6년 만에 처음이었다. 삼성전자는 여기에다 일본의 수출 규제, 미·중 무역 분쟁의 여파까지 맞고 있다. 고 사장은 "사장이 된 이후 지난 4년간 한 번도 '내년은 위기'란 말을 하지 않았는데, 올 연말에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며 "세계 경제 침체와 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직간접 영향, 일본 문제 때문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난주와 이번 주가 다르고, 아침에 나왔던 얘기가 오후에 바뀌는 식으로 불확실성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라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동진 삼성전자 스마트폰 총괄사장이 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갤럭시 언팩 2019’ 행사를 갖고 갤럭시노트10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행사 후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4년간 한 번도 ‘내년은 위기’란 말을 하지 않았는데, 올 연말에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동진 삼성전자 스마트폰 총괄사장이 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갤럭시 언팩 2019’ 행사를 갖고 갤럭시노트10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행사 후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4년간 한 번도 ‘내년은 위기’란 말을 하지 않았는데, 올 연말에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그는 이날 갤럭시노트10과 노트10플러스를 공개했다. 삼성이 갤럭시노트를 두 종류(6.3인치, 6.8인치) 모델로 낸 것은 2011년 노트 시리즈 첫선을 보인 이래 최초다. 고 사장은 "펜을 쓰고 싶으면서도 작은 화면을 선호하는 유럽, 여성 고객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빠른 시간 내에 두 개의 모델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마켓셰어(시장점유율)는 생명, 수익은 인격"이라며 "생명과 인격은 둘 다 지키면 좋지만,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일단 생명이 먼저고 그다음에 인격을 챙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은 다소 희생하더라도 '세계 판매량 1위'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절박한 의지로 해석된다.

"'빨리'보다 '잘하겠다'"

고 사장은 다음 달 출시하는 폴더블폰 '갤럭시폴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잠시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초 삼성은 지난 4월 미국에서 폴더블폰을 출시하려다 결함이 불거지며 출시를 연기한 바 있다. 그는 "가슴을 열어서 보여줄 수 있다면 굉장히 시커멓게 돼 있을 것"이라며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하다보니 모르는 것이 많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무선개발실장 출신인 고 사장은 "이번 결함 사태를 겪으면서 제품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신뢰하고, 좀 더 많은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중국 화웨이와 벌이고 있는 폴더블폰 출시 시점 경쟁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업계에서 20년 이상 일하며 월드 퍼스트(세계 최초)를 많이 보고 또 직접 드라이브도 걸어봤지만,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혁신이 아니면 소용없다는 걸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가 폰을 손에 쥐었을 때 '삼성이 (신제품을) 빨리 내놨네'보다 '삼성이 참 잘했네'란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고 사장은 "당초 계획했던 폴더블폰 생산량 100만대보다는 적은, 한정 물량을 한국 등 20국 정도에만 낼 계획"이라며 "첫 폴더블폰은 기술적 제약 때문에 가격이 높지만 향후에는 가격도 상당히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