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포커스] '라스트 오더'라는 단어 배우는 식당 주인들

최만섭 2019. 1. 3. 09:12

[경제포커스] '라스트 오더'라는 단어 배우는 식당 주인들

입력 2019.01.03 03:13

최저임금 올라 속 타는 식당들… 일찍 주방 마감해 인건비 줄여
불황으로 국민 시름 깊은데 政府만 "오늘이 행복한 나라"

이진석 논설위원
이진석 논설위원
자주 가던 만두집에 얼마 전 '라스트 오더(last order·마지막 주문)'가 생겼다. 저녁 8시면 "곧 주방 마감하니 추가 주문은 지금 하셔야 한다"고 한다. 얼마 전 모임 자리에서 한 선배가 툴툴댔다. 단골 식당 가운데 두 군데나 '라스트 오더 8시 30분'이라고 써 붙였다고 했다. "손님 있으면 10시, 11시까지 영업하던 곳들인데 연말부터 그렇더라"고 했다. 최저임금 올라서 손님 뜸한 시간에 가게 문 열어놓는 것보다 종업원들 퇴근시키는 게 나을 테니 그럴 것이다. '라스트 오더'라는 낯선 단어를 배워야 하는 식당 주인들의 속은 어떨까. 올해까지 2년 만에 최저임금이 공식적으로 29% 올랐다.

불황이 닥치면 과거에는 "시장통 거지 굶어 죽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시장통 상인들이 더 걱정"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퇴직금 털어 만든 가게, 그나마 큰길로 못 나가고 뒷골목에 어렵게 자리 잡은 가게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더 걱정이라는 것이다. "불황이 닥치면 화이트칼라도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 있다. 불황으로 해고 바람이 불면 관리직들도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불황이 깊어지는데 식당 주인들이 무슨 대단한 고용주, 자본가 대접을 받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노총 파업 조끼 한번 입어본 적 없지만,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장사하는 가장(家長)들이고, 일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못 주면 최저임금법 위반 고용주로 조사받게 됐다.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악덕 자본가 취급을 받을 판이다. 최저임금이든 뭐든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고 했다.

보수는 세상을 세로로 자르고, 진보는 가로로 자른다고 한다. 가로로 잘라놓고 보면 높낮이와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누구는 10억원 넘는 아파트에 사는데 누구는 변두리 방 한 칸을 못 구한다. 그래서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세상에는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도 많지만, 모든 걸 오늘 다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다 하겠다고 한다. "저걸 어떻게 두고 보느냐"고 씩씩댄다. 윽박지른다.

세상을 세로로 잘라서 보면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50년 전 우리 수출은 4억달러가 조금 넘었다. 이제는 6000억달러가 넘는다. 세계 최빈국 밑바닥에서 올림픽, 월드컵 다 해보고 이만큼 살게 됐다. 어릴 적 길거리에는 보닛을 열어젖힌 택시들이 자주 보였다. 엔진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바이트'를 한다고 하거나, "차가 퍼졌다"고 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그 택시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던 시절 방송에서는 일본 'MK택시'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일본 택시 기사는 신호 대기에 걸리면 걸레로 대시보드를 닦는다"고 했지만, 우리 택시 기사들은 그렇게 못 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라의 수준이 그만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캠페인 없이도 택시는 깨끗하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오바이트하던 브리사, 포니 택시가 사라지고 자동변속기 달린 쏘나타, 그
랜저 택시가 나오면서 달라졌다. 이 정부는 세상을 가로로 자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오늘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고 했다. 더 잘살게 될 내일을 꿈꾸면서 내일을 만들었던 국민에게 오늘만 보고 살자고 한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꺼내고 헤집으면서 서두르고 재촉한다. 이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굴고 있다. 올해도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2/20190102029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