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데스크에서] '본성'을 거스르는 정책들

최만섭 2018. 12. 1. 08:14

[데스크에서] '본성'을 거스르는 정책들

조선일보        이인열 산업1부 차장입력 2018.12.01 03:09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이익뿐만 아니라 손실도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협력 이익 공유제'를 두고 한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 최초로 기업이 돈을 벌면 납품 회사에 미리 정한 비율로 이익을 나누는 걸 법제화하는 방안을 도저히 수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업인의 주장은 당장 현실화될 수 없는 노릇이다. 현행 하도급법상 '손실 공유'는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그러니 '잘 되면 나누고, 잘못되면 독박하자는 건가'라는 기업인들의 푸념이 쏟아지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취지는 존중한다. 하지만 이익 공유제는 '돈을 더 벌려는 노력이 바로 기업가 정신인데, 이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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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직장인들이라면 대여섯 명의 팀원 사이에도 성과를 나눌 때 '공평성'이 늘 문제란 걸 안다.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측정하기도 어렵지만 제각각 자신이 실상보다 더 많은 기여를 했다고 믿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런데 이익 배분의 단위를 경제 전체로 확대해 그것도 법으로 강제한다면 심각한 부작용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자칫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욕망의 충돌만 일으키게 된다. 더욱이 손실과 위험은 혼자 떠안고 이익은 공유하라고 한다면 대기업들은 "이럴 바에 내가 왜?"라는 자문(自問)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장들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 정부 초기에 모 기업인이 "이번 정부 기업 정책의 핵심이 뭔지 압니까. 바로 이익을 줄이라는 겁니다. 돈 벌려고 존재하는 게 기업인데 말입니다"라고 너털웃음을 짓던 장면이 떠오른다. 요즘 '발언권'을 상실한 많은 기업인은 비공개 자리에서 "정권 실세(實勢)들이 경제 현장을 너무 모른다"고 아우성이다.

얼마 전 모 카드사에 다니는 선후배들과 만났더니 "창사 이래 처음 감원 얘기가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내수 침체에다 수수료 인하로 카드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탓이다. 통신료 인하에 몸살을 앓는 통신사의 임원은 "정부가 돈 벌려는 인간의 욕심과 그를 위한 노력을 '과욕'이나 '착취' '독식' 같은 개념으로 보는 듯하다"고 했다.

통상 양치기는 수십마리에서 수백마리의 양(羊)을 끌고 다닌다. 어떻게 양치기는 이렇게 많은 양을 끌고 다닐 수 있을 까. 그 핵심은 싱싱한 풀과 맛난 물을 찾는 양의 본성을 활용하는 데 있다. 양을 물과 풀이 있는 곳으로만 이끌고 다니면 양치기는 큰 노력 없이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양치기 입장에서 좋은 곳으로 가려고 양들의 본성을 거슬러 이끌면 결국 양들은 저항하게 되고 심지어 양들을 잃게 된다. 정부는 더 이상 본성을 거스르는 정책을 쏟아내지 말아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30/20181130029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