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美, 제재할테면 해봐"… 中 반도체 벌떼작전

최만섭 2018. 11. 5. 17:19

"美, 제재할테면 해봐"… 中 반도체 벌떼작전

입력 2018.11.05 03:00

["한둘 쓰러져도"… 중국의 전략]
- 전세계 신설 라인 절반이 중국에
165조원 반도체 투자펀드 조성… 전국 10곳 19개 라인 건설 중…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중국 반도체 업계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시작됐다. 지난주 미국 정부는 중국 D램 메이커 푸젠진화에 대해 미국산 부품·장비 수입을 사실상 금지시킨 데 이어 기술 절취 혐의로 이 회사를 기소했다. 푸젠진화는 D램 메모리 자급률 0%인 중국에서 D램 국산화의 총대를 멘 업체다.

이제 싹이 트기 시작하는 중국 반도체 굴기가 이번 조치로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푸젠진화가 짓고 있는 생산 라인을 빼고도 토종 반도체 생산 라인이 전국 곳곳에 건설되고 있다. 설령 한 업체가 삐끗한다 해도 다른 업체가 나서 전진하는 '벌떼 작전' '인해전술'이다. 민관을 합쳐 최대 1조위안(약 16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반도체 투자 펀드들이 이런 물량 공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사다리 걷어차기'를 이겨내고 자립화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곳곳에 반도체 생산 라인…벌떼 작전

지금 중국에서는 최소 19개 반도체 생산 라인이 건설 중이다. 작년과 올해 중국의 반도체 생산 라인 신설 규모는 같은 기간 글로벌 반도체 생산 라인 건설 규모의 50%를 넘어섰다. 전 세계에서 지어지는 반도체 공장 두 곳 중 한 곳이 중국에 들어서고 있는 셈이다.

19개 반도체 생산 라인 중 절반 정도는 중국 토종 업체의 것이다. 안후이성의 허페이에서는 중국 국영 반도체 메이커 허페이창신의 모바일 D램 생산 라인이 건설 중이다. 장쑤성 난징에서는 국영 칭화유니그룹의 낸드 플래시 라인이, 산시성 시안에서는 모바일 D램 공장이 한창 공사 중이다. 후베이성 우한에는 창강춘추의 낸드플래시 라인이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고, 푸젠성에선 미국의 견제와 압박 대상이 되고 있는 푸젠진화의 생산 라인이 이미 시험 가동에 들어갔다. 이 지역들을 포함해 반도체 생산 라인이 들어섰거나 현재 건설 중인 곳이 전국에 10곳이 넘는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청두, 충칭, 랴오닝 등 그 입지는 중국 전역에 걸쳐 있다. 국영 칭화유니그룹 한 곳만 해도 840억달러 규모 반도체 프로젝트를 위해 9개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SEMI(국제반도체협회)에 따르면 2017~2020년 사이 전 세계에서 증설 예정인 62개의 웨이퍼 생산 라인 중 26개가 중국에 소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신설 반도체 라인 절반이 중국에

글로벌 조사 분석 회사인 번스타인 리서치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 라인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중국 내 반도체 장비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업계의 관련 지출 규모는 2017년 36억달러에서 2018년 71억달러를 거쳐 2019년에는 110억달러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 같은 반도체 투자 붐 속에서 중국만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반도체 설계·디자인 분야에선 그 규모가 이미 대만을 앞질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후공정이라고 불리는 패키징·테스트 분야에서도 중국 토종 업체들이 성장하면서 관련 장비 및 재료 구매 규모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중국반도체협회에 따르면 중국 로컬 반도체 업계는 2014년 이후 매년 20% 이상 성장했고 지난해에는 무려 25%나 성장했다.

반도체 산업 컨설팅 회사 IC카페의 후윈왕 대표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반도체 개발은 중국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직군이었지만 이제 반도체 엔지니어는 가장 인기 좋은 직업 중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반도체 투자 붐은 지난 2014년 6월 '국가 집적회로 산업 발전 추진 강령' 발표하고 '2020년까지 반도체 분야 매출액 연평균 20% 성장'을 선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중앙과 지방, 민관을 가리지 않고 투자 펀드 조성 열풍이 풀어 올해까지 그 규모가 총 1조위안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말 현재 이 펀드들이 투자한 프로젝트는 55개에 이른다. 지방 정부들은 반도체 업체에 대한 세계 혜택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공장 유치에 혈안이 됐다. 해외 반도체 업계에선 '동시다발로 추진되는 프로젝트 중 한두 곳만 성공해도 대성공이라는 게 중국의 계산'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 엔니지어, 각광받는 직업

대대적인 벌떼 작전이나 물량 공세가 세계 반도체 시장의 한 축을 차지하며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의 출현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국이 국산화에 가장 혈안이 된 D램 메모리의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기존 메이커와의 기술 격차도 크다. 푸젠진화가 양산을 목표로 하는 22나노 메모리 제품의 경우 이미 세계시장에선 철 지난 제품으로 수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도체 굴기를 위해서라면 '없는 수요도 만들어 주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의지다. 자국 스마트폰 메이커 등 중국 내 반도체 수요자들에게 중국산 메모리나 반도체 제품을 일정 비율 이상 장착하도록 의무화해 자국 반도체 업체들의 초기 수요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난 5월 발표한 '2019년 중앙 국가 기관 IT 제품 구매 계획 공고'를 통해 중국 부처와 공공 기관, 반도체 부품 조달 기업들은 중국산 반도체 제품 및 부품을 일정 비율 구매하도록 규정했다. 중국 정부의 조달 계획에 자국산 반도체 제품 구매가 명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공고가 나오기 한 달 전인 4월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우한에 있는 중국 토종 반도체 업체 우한신신(XMC)을 시찰하면서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며 "사람이 아무리 덩치가 커도 심장이 튼튼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며 반도체 기술을 강조했다.

◇중국산 반도체 제품 사용 의무화

반도체 분야에 대한 중국의 이런 요란한 움직임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경계심과 견제를 촉발한 측면도 있다. 중국 정부는 외국 반도체 업체와 합작, 협력을 독려하며 자국 반도체 업계의 등을 떠밀고 있지만 해외 업계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다만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준 인텔은 중국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면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인텔은 중국 칭화유니그룹과 손잡고 2019년을 목표로 5G 이동통신용 모바일 칩 개발을 시작했고 중국 국산 반도체 장비·재료 메이커와도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인텔이 만약 중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해외 반도체 메이커들 간 대중(對中) 합작 경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중국의 반도체 벌떼 작전의 성공에 있어 또 다른 큰 장애물은 인재 부족이다. 지난해 말 현재 중국 반도체 업계 반도체 전문가는 40만명. 그러나 오는 2020년까지 72만명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중국 업계는 해외 반도체 인력, 특히 대만 기술자들의 스카우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만 업계의 3배 수준 연봉, 1년에 8번 대만 여행, 주택 지원, 더 높은 직급을 내세워 올해만 300명을 스카우트했다. 2014년부터 작년까지 대륙으로 옮긴 대만 기술자가 1000명에 이른다. 한국과 일본 반도체 업계를 겨냥한 중국의 인재 빼내기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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