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7.18 03:15
20·80대가 예능 프로 함께 출연, 車에도 '노인이 운전' 스티커 붙여
병원·공항서도 세대 공존 배려… 우리도 '高齡 친화 사회' 고민을
노인들이 많이 사는 일본 도쿄 외곽에 가보면,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를 쉽게 볼 수 있다. 고령자가 운전하는 차다. 차의 뒤창에는 실버 마크 스티커가 붙어 있다. 70세 이상이 운전하고 있다는 표시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가 아니라, "노인이 운전하고 있어요"라는 의미다. 주행 속도가 느릴 수 있으니, 알고 잘 판단하라는 신호다. 실버 스티커 차량 앞으로 급속히 끼어들기를 하면 교통 위반 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애초 실버 스티커는 주황색과 노란색의 나뭇잎 모양이었다. 그러자 낙엽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나왔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낙엽이라니…. 이에 7년 전부터는 녹색 위주 네 잎 클로버 모양으로 바뀌었다. 나이 들어도 운전이 가능하면, 네 잎 클로버 붙이고 돌아다니면 된다.
일본 종합병원에는 노인들만 진료하는 클리닉이 있다. 이른바 노년내과다. 그런데 간판은 고령자 클리닉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줄여보고자 한 성의다. 치매라는 말도 어리석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환자를 비하한다는 지적에 따라 인지증(認知症)으로 진작에 바꿨다. 그런 인지증 환자들이 다니는 진료과의 간판은 건망증 클리닉으로 되어 있다.
초고령사회 일본은 초창기에 노인 폄하, 고령 차별 현상을 겪으면서 가능한 한 고령 친화, 세대 교류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쓴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돋보기 광고가 나오는데, 이름은 '리딩 글라스(reading glass)'다. 젊은 여자도 함께 등장해 손톱 매니큐어 바르는 데도 좋다고 덧붙인다. 예능 프로그램 패널로 80세 배우와 20세 아이돌이 같이 출연한다. 우리 눈으로 보면 이게 어느 세대를 위한 방송인지 헷갈린다.
도쿄 하네다공항 국내선 게이트 앞에는 여느 공항처럼 수십 개의 의자들이 놓여 있다. 여기 의자 등받이엔 군데군데 노란색 커버가 씌워져 있다. 노인과 임산부를 위한 자리 표시다. 경로석을 한쪽에 몰아 놓는 것이 아니라 일반석과 자연스레 섞이게 했다. 고립이나 격리의 느낌을 뺀 것이다.
세대 교류를 생활 공간에 심으려고도 노력한다. 일본 정부는 유아·노인 일체 사업이라고 해서 보육원·유치원을 고령자 거주 시설과 나란히 짓도록 하고 예산을 지원한다. 종이 접기, 찰흙 빚기, 화초 심기 등 기실 아이들과 시니어 모두에게 필요한 놀이들이 많다. 이를 같이 즐기게 하니, 누구에게 더 좋은 건지 모를 정도로 조화롭다는 평이다. 건강한 시니어가 바쁜 부모를 대신해 아기를 돌봐주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고령 선진국들은 동네 놀이터를 할아버지·할머니도 같이 쓰는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여기에 아이들과 시니어 모두에게 필요한 균형감 키우는 한 줄 걷기 시설이나 하체 근력 다지는 운동 장비를 들여 놓는다. 초등학생들에게 골다공증을 가르쳐서 왜 경로석이 필요한지를 알려주고, 시니어가 그림책을 실감 나게 읽어주는 세대 교류 수업을 한다.
요즘 30세 넘어 아이를 낳으니 한 세대는 30년으로 길어졌다. 자칫 골 깊은 피해의식과 딱딱한 권위의식이 만나면 큰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자산을 쥐고 있는 시니어층이 고립과 단절에 머물면, 경제 활력은 크게 떨어진다. 노인
일본에 와보면 노인 인구 비율이 높기도 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만큼 고령자가 세상 속에서 활발히 돌아다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이 초고령사회를 버티는 힘이지 싶다. 이제 세대 교류와 고령 친화로 누구에게나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