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동서남북] '낙제점 경제'를 김정은으로 가릴 수 없다

최만섭 2018. 5. 12. 10:44

[동서남북] '낙제점 경제'를 김정은으로 가릴 수 없다

'제1 업무지시' 일자리 最惡… 혁신성장은 한 걸음도 못 나가
장관들도 南北 經協에 정신 팔려… 지지율 90%도 경제 나쁘면 短命

김영진 경제부 차장
김영진 경제부 차장

노무현 정부가 집권 1년 뒤 내놓은 자체 평가집은 1년간 비판받던 10대 쟁점을 제시하고 자답(自答)하는 형식이었다. '대한민국은 뚜벅뚜벅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는 제목의 평가집에서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았지만, 노무현은 선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좌파 언론조차 '청와대의 딱한 자화자찬(自畵自讚)'이라고 깎아내렸다. '성장보다 분배에 치우친 친노동, 반기업 정부' '청년실업에 팔짱만 끼고 있다' 같은 지적에 여러 통계로 해명했지만, 여론조사와 전문가들로부터 "잘한 게 없다"고 뭇매를 맞았다.

그에 비해 노무현을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가 최근 발간한 집권 1년 평가집은 당당하다.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 소식으로 시작하는 평가집을 보면, 곧 통일이 이뤄지고 모두 잘 먹고 잘살게 될 것 같다. '문재인 정부 1년, 국민께 보고드립니다'는 제목의 평가집엔 김정은 사진이 문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실려 남북회담 국민보고대회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외교안보·복지·경제 등 35개 국민과의 약속을 모두 잘 지켜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목표 중 2번이었던 '더불어 잘사는 경제'는 4번으로 밀려나 있다. 15개 향후 과제 가운데 혁신성장의 핵심인 규제 완화는 쏙 빠졌다. 판문점에 12시간 등장한 김정은으로 1년간 이슈를 덮어버렸다.

하지만 낙제점에 가까운 경제성적표는 가린다고 가려질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의 '제1 업무지시'인 일자리는 최악이다.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세금(추경) 11조원을 퍼부었지만, 실업률은 17년 만에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매달 30만명 이상씩 늘던 취업자 수는 10만명대로 쪼그라들며 일자리 창출 능력은 되레 뚝 떨어졌다. 올 3월 청년 취업자 수 증가는 제로(0)라고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에 선명하게 새겨 있다. 그럼에도 일자리 정부는 또다시 세금에 기대어 일자리를 늘려 보겠다고 추경에 매달리고 있다.

문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소득주도성장은 소득 늘리는 실험 도구인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일자리를 잡아먹는 '고용쇼크' 주범이 되면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최저임금을 듬뿍 줘 내수를 살리고, 활성화된 내수가 성장을 자극해 다시 소득을 늘려준다는 선순환 구조는 환상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성장률은 반도체 수출에 힘입어 간신히 3%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용은 늘지 않아, 고용 없는 성장마저 우려된다. 성장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문 정부의 양대 경제축인 혁신성장은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다. 혁신성장에 필요하다며 8대 핵심 선도사업을 선정했지만, 막상 혁신기업의 손발이 되는 규제개혁엔 손 놓고 있기 때문이다. 3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다던 혁신성장 점검회의는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남북문제가 급진전하자, 성장동력이고 뭐고 안중에 없는 것이다. 경제 장관들도 남북경협에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러나 해외투자가들 생각은 다르다. 외국계 증권사 사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금 한국에 바이(buy·투자)할 생각이 없다"며 "외국인 눈에는 남북 정상이 만났다는 것 외에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고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김정은만 바라보고 있다. 남북회담 이후 80%를 넘나드는 지지율이 영원하리라 믿을 것이다. 걸프전의 영웅 아버지 부시 대통령도 군사·외교 성공으로 사상 유례없는 90% 지지율을 얻었다. 하지만 부시는 빌 클린턴에게 일격을 당하며 단명했다. 골리앗 부시는 클린턴의 한마디 구호에 무릎 꿇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1/20180511029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