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28 03:13
핵무기·ICBM 포기하면 자본과 기술 북한 들어와
북한이 개발 독재로 방향 틀면 나태해진 한국 긴장할 것
김일성은 1993년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싶다는 인민의 숙원을 실현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중요 목표입니다." 36년 전인 1957년 신년 벽두에 밝혔던 약속의 되풀이였다. 김일성은 집권 기간(1948~1994)에 이 공약을 한 번도 지키지 못하고 사망했다.
김일성 집권 시기는 남북 관계에서 두 단계로 나뉜다. 전반 20년은 북한 우위(優位) 기간이다. 경제·군사 면에서 몇 걸음 남쪽을 앞서갔다. 이 시기 북한에 밀입북(密入北)했던 유명 대학 학생들이 발전한 평양 모습에 충격받고 간첩이 돼 돌아오기도 했다. 김일성은 이 우위를 믿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하듯 대남(對南) 제의를 잇따라 내놨다.
상황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이 1차 5개년계획(1962~1966)과 2차 5개년계획(1967~1971)을 진행하는 동안 남북은 백중세(伯仲勢)를 이뤘다. 1965년 한일 회담 타결로 일본 청구권 자금 8억달러와 기술이 들어왔다. 경부고속도로를 놓고 포항제철이 세워지자 1974년을 고비로 남쪽 우위가 확립됐다. 최근 연구는 물가를 감안한 실질 성장률을 토대로 한국의 북한 추월 시기를 1968년으로 당겨 잡기도 한다.
김일성이 '흰 쌀밥에 고깃국'이야기를 다시 꺼낸 1993년 GDP는 한국 3863억달러 북한 107억달러, 1인당 GDP 한국 8712달러 북한 503달러, 수출 한국 822억달러 북한 9억9000만달러였다. 경제 격차는 재래식 군사력 격차로 이어졌다. 공산(共産) 종주국 소련이 붕괴하고 북한의 외교 고립은 심화됐다. 북한은 자신감이 크게 흔들리고 체제 불안에 시달렸다. 이 시기 북한이 핵 개발에 몰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일성의 유훈(遺訓)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민을 배불리 먹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재임 기간(1994~2011) 주민들은 고깃국은 제쳐놓고 흰 쌀밥은커녕 강냉이로도 배를 불리지 못했다. 식량 부족으로 1997년 이후 수년 사이에 60만~100만명이 굶어 죽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하나가 비핵화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여러 차례 '비핵화는 선대(先代)의 유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핵실험을 거듭했고 며칠 전 김정은은 '핵무기의 병기화(兵器化)를 완료했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 개념이 의혹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회담의 성패는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 문제에 얼마나 의견 접근을 이뤘느냐에 달렸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 쪽으로 다가와야 한다. 거꾸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접근한 안(案)이 나오면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가능성이 커진다. 트럼프는 '비핵화란 북한이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정의(定義)했다.
발표된 남북 공동선언문은 아름다운 표현에선 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닮았다. 북한에 대한 포괄적 지원 약속이란 점은 노무현-김정일 간 10·4 선언을 계승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겠다는 데선 문재인 정권과 북한 희망이 반영됐다. 그러나 정작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 문제는 암호(暗號)처럼 처리됐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 말고는 한미 동맹 또는 주한 미군과 관련해 어디에 무슨 지뢰(地雷)가 묻혔는지 알 도리가 없다. 미-북 담판의 밑그림 성격의 회담이라지만 너무 안갯속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을 포기하면 미국 위협은 즉시 사라진다. 한미 동맹은 방어 동맹이다. 미국 국민과 정치인 어느 누구도 한국 통일을 위해 미군 생명을 희생할 뜻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격차로 체제 불안을 느낀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구해야 한다. 박정희 시대에 한국은 북한 우위를 뒤집었다. 지금 북한처럼 자본도 기술도 없던 때였다. 한반도에서 '박정희 방식'의 위력(威力)을 절감한 사람은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였다.
필리핀·인도네시아·미얀마·타일랜드 등 일본의 전후(戰後) 배상금을 받았던 나라 가운데 일본 자본을 경제 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