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F 가동 急落' 때문에 廢비닐 수거 중단 벌어져
정권마다 SRF 온·냉탕… 정부가 책임지고 수습해야
폐(廢)비닐은 중국에 수출해온 품목이 아니다. 중국의 재활용 폐기물 수입 중단이 폐비닐 수거 중단 사태의 촉발 요인이긴 했지만 직접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 직접 원인은 폐비닐을 원료로 고형 연료(SRF)를 만들어 팔던 업체들 가동이 종전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데 있다. 폐비닐의 70%는 SRF를 만드는 데 쓰이고 나머지 30%는 중앙분리대, 주차 블록, 하수관 등의 제조 원료로 썼다.
SRF는 폐비닐을 압축 가열해 가래떡처럼 뽑으면서 잘게 썬 것이다. 발전소, 제지·염색업체 등에서 연료로 쓴다. 전남 함평의 SRF 제조업체 아주인더스트리얼 한준석 대표의 얘기를 들어봤다.
"우선 규제가 너무 심하다. 연 15차례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기준치에 맞추기가 아주 어렵다. 샘플을 어디서 뜨느냐에 따라 걸릴 수도, 안 걸릴 수도 있다. 한 번 걸리면 한 달 생산 정지, 두 번이면 3개월이다(환경부에 따르면 적발률은 연 13% 정도). 나도 작년 한 달 가동 정지 후 새 판로를 찾는 데 6개월 걸렸다. 이런 식이니 업체들은 정부 지원금을 딸 수 있는 최소량만 생산하고 그만둔다."
'녹색 성장' 구호를 내건 이명박 정부 시절엔 SRF를 권장했다. 폐비닐을 소각하기보다 에너지로 재활용하자는 것이었다. SRF는 공급도 안정적이고 값도 싸 환영받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엔 가정 폐비닐뿐 아니라 사업장 폐비닐, 폐타이어, 폐목재까지 SRF로 인정해줬다.
SRF는 신재생에너지로 분류돼 혜택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2008년 51업체에서 SRF를 6만3000t 만들던 것이 2016년엔 246업체가 192만t을 생산했다. 사업장 폐비닐이 대거 SRF 시장에 들어오면서 가정 배출 폐비닐로 만든 SRF 가격은 2015년 t당 10만6000원에서 요즘 4만5000원 선까지 떨어졌다. 2014년에는 고형 연료 환경 기준이 대폭 강화됐다. 사업장 폐기물의 유해성 우려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다음 작년 9월엔 대도시에서 SRF를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소규모 보일러도 SRF를 못 쓰게 했다. 대기 배출 기준도 강화했다. SRF를 신재생에너지에서 제외하는 조치도 검토 중이다. 전남 나주, 강원 원주, 충남 내포신도시에서 추진 중이던 SRF 열병합발전소 건설도 제동이 걸렸다. 나주에선 지역 난방공사가 2000억원 이상 들여 작년 5월 완공했는데 주민들이 "쓰레기 태우면 미세 먼지, 다이옥신 나온다"며 막아 가동을 못 하고 있다.
한준석 대표는 "비닐은 썩지 않기에 매립보다 소각이 낫다. 어차피 태워 없앨 바에는 연료로 쓰는 게 이득 아닌가. 일반 소각로에서 잡쓰레기 태우는 건 괜찮고 품질 인증을 거친 SRF를 태우지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지난 정부들에서 장려해 많은 업체가 새로 생기고 생산 시설도 대폭 확장됐는데 새 정부가 규제해버리면 업체들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의 비닐봉투 소비량(연간 1인당 420장)이 EU(90장)보다 지나치게 많은 것은 그간의 SRF 장려 정책 탓이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폐비닐을 연료로 태우기보다 저급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로 재활용하는 게 환경적으로도 나
다만 기존 업체들의 사활이 걸려 있어 일도양단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가정 배출 폐비닐로 만든 SRF의 검사 횟수를 통합해달라는 업계 요구는 들어줄 필요가 있다. SRF 열병합발전소는 엄격한 배출 가스 관리를 주민들에게 증명하는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정부마다 다른 변덕 환경 정책으로 빚어진 혼란인 만큼 정부가 책임지고 수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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