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강천석 칼럼] 北核 열차 貴賓席에 앉은 김정은

최만섭 2018. 3. 31. 14:38

[강천석 칼럼] 北核 열차 貴賓席에 앉은 김정은

北, 制裁 약한 고리 부수고 중국을 美·北담판 응원군으로
한국, 同盟과 共同步調 허물면 핵폭탄 안고 살아야

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북핵 정세가 요동치면서 각국 지도자의 몸값 또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먼저 반짝하고 움직인 것은 문재인 대통령 주가(株價)다. 북의 평창올림픽 특사 김여정을 받아들이고 대북 특사를 올려 보내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미·북 정상회담이란 대형 뉴스를 생산했다. 인내한 보람이 있어 한반도 운전대를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아베 총리 모두 한국 특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했다. 문 대통령은 북핵 위기 종결의 대단원(大團圓)을 장식할 '남·북·미(南北美) 정상회담' 설계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대통령 참모들은 분위기를 더 띄웠다. 얽히고설킨 핵 매듭을 단박에 끊어버리는 일괄 타결 방식으로 마침표를 찍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몸값은 급등(急騰)과 급락(急落)을 거듭하면서 큰 시세 변동이 없는 보합세(保合勢)를 유지했다. 한국 특사에게서 김정은 위원장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상회담 제의를 덥석 물었을 땐, 뭘 믿고 저러나 하는 걱정을 샀다. 그래도 갈고닦은 거래(去來) 솜씨는 어디 가지 않았다. 국무장관·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교체해 예방 전쟁,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초강경(超强硬) 인사로 진용을 짰다. '협상을 위한 전쟁 팀'인지 '전쟁을 위한 협상 팀'인지 헷갈릴 정도다. 한반도 남과 북을 견제하는 작은 펀치도 연속 날렸다. '(김정은과의) 논의가 좋으면 수용하겠지만 나쁘면 (회담장을) 걸어 나올 것'이라고 북에 한 방 먹이고, 한·미 FTA 개정 협상안 서명을 미·북 정상회담 뒤로 미룰 수도 있다는 뜻을 비쳐 한국의 대열(隊列) 이탈 가능성에 쐐기를 박았다.


아베 일본 총리의 주가는 일단 하락세(下落勢)다. 김정은의 신축성을 지나치게 과소(過小) 평가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표방한 원칙을 너무 믿었던 탓이다.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결정적 장면을 놓친 셈이 됐다. 일본 안보관의 저류(底流)를 흐르는 핵심 불안이 한반도 정세라는 걸 생각하면 '재팬 패싱'이라는 단어는 아프다. 사실 북한 핵무기의 위협을 한국과 가장 비슷하게 한국만큼 직접적으로 느끼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시진핑 주석은 동북아 안보 시장에서 언제든지 특정 주식 주가를 끌어올리거나 떨어뜨릴 수 있는 '작전(作戰) 세력'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5월 말 미·북 정상회담이 발표된 것이 3월 8일이었다. 중국을 건너뛰고 미·북이 먼저 만난다 해서 '차이나 패싱'이란 말이 돌았다. 그 말이 무색하게 17일 후인 25일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하루 만에 7년 동안 쌓인 냉기류(冷氣流)를 싹 쓸어냈다. 시 주석 앞에서 김정은은 '조·중 친선을 대를 이어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이어 나갈 일은 나의 숭고한 의무'라고 했다. 중국은 유엔의 대북(對北) 제재에 참여하고 있다. 북·중을 가르는 제재의 둑은 안전할까. 구멍이 났거나 금이 갔다고 봐야 상식이다.

김정은 몸값은 천정부지(天井不知)다. 그가 청와대 안보실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한 말은 "비핵화 의지가 있고 (대화 중) 핵실험은 하지 않겠다"가 거의 전부다. 이걸로 미·북 정상회담을 낚았다. 미·북 정상회담을 발판으로 중국에서 초대장을 받아냈다. 중국 지도부가 총출동해 김정은을 맞았다. 시진핑 주석은 '중·조 친선은 피로 맺어진 세상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이며 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영원히 마르지 않을 샘'이라고 했다. 미·북 담판에 앞서 든든한 응원군을 확보했고, 담판이 실패해 더 강한 군사·경제 제재에 부딪혀도 몸을 피할 방공호(防空壕)도 장만했다. 한국·중국 순(順)으로 제재의 약한 고리부터 부숴나갔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한 '비핵화 의지'는 '단계적 동시 조치'로 판명 났다. 아버지 때 그 수법 그대로다. 한반도 운전대를 누가 쥐고 있는지 모르지만 운전석 뒤 귀빈석(貴賓席)에 앉은 인물은 틀림없는 김정은이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행보(行步)를 예측했을까. 청와대 대변인은 '중국이 한반도 평화 논의에 참여한 것은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논평을 발표했지만 당혹스러운 느낌을 지우진 못했다. 문 대통령이 북핵 위기 종결의 마
지막 장면으로 중국이 빠진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거론했던 걸 봐도 현재 진행이 애초 설계도와 사뭇 어긋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은 김정은이 파놓은 또 다른 함정(陷穽) '단계적 동시 조치' 앞에서 다시 휘청하며 북한·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러다간 게도 구럭도 다 잃듯 동맹은 부서지고 핵폭탄만 부둥켜안은 세월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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