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내 전생은 다빈치?… 할머니가 들려준 귀신 얘기 매일 그렸죠"

최만섭 2018. 2. 12. 10:25

"내 전생은 다빈치?… 할머니가 들려준 귀신 얘기 매일 그렸죠"

美아카데미 13개 부문 후보 오른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단독 인터뷰
"어둡고 슬픈 이야기 줄곧 끌려… 고통 이겨낸 판타지 만들고 싶어요"

"아카데미상요(웃음)? 다들 예측을 쏟아내지만 결과는 알 수 없죠. 음악상이나 의상상, 미술상·편집상 후보에 오른 것이 기분 좋습니다. 함께 일한 사람들 노고를 알아준 것만으로도 기뻐요."

영화‘셰이프 오브 워터’촬영장에서 배우 샐리 호킨스(왼쪽)·옥타비아 스펜서(오른쪽)와 이야기하는 기예르모 델 토로(가운데) 감독.
영화‘셰이프 오브 워터’촬영장에서 배우 샐리 호킨스(왼쪽)·옥타비아 스펜서(오른쪽)와 이야기하는 기예르모 델 토로(가운데) 감독. 그는“진짜 판타지는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멕시코 과달라하라 출신 천재 감독과의 대화는 물처럼 막힘없었다. 새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작년 9월 이미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기예르모 델 토로(54) 감독이다. 그는 최근 줄곧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오는 3월 열리는 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을 비롯한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번 달 초 미국감독조합(DGA)도 델 토로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겼다.

지난달 말 전화로 만난 델 토로 감독 목소리도 그만큼 쾌활했다. "그동안 멜랑콜리한 기분에 사로잡혀 영화를 찍었다면 이번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나 생각하며 스케치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더 동화처럼 느끼는지도 모르죠(웃음)."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 8㎜ 코닥 카메라를 쥐고 단편영화를 찍었다는 델 토로 감독이다. 어릴 때부터 축축하고 그늘진 곳 얘기에 끌리곤 했다. 친구들과 놀 때도 지하도에서 숨바꼭질했고 잠자리 들기 전엔 할머니가 들려준 얘기 속 귀신이나 죽은 사람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델 토로 감독은 "멕시코 출신이라서 그런 걸까, 어릴 때부터 삶과 죽음에 관심이 많았다. 곤경과 재앙, 폭력이 왜 도처에 있을까 생각하며 자랐다"고 했다.

스케치는 이후로도 그의 영화 뿌리가 된다. 책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 노트'를 보면 그가 영화 속 캐릭터를 어떻게 그림으로 완성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델 토로는 아마도 전생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미믹' '악마의 등뼈' 같은 공포 영화를 찍으며 이름을 알렸고 '헬보이' '판의 미로' '크림슨 피크' 같은 SF·판타지 영화에 천착해왔다. 델 토로 감독은 "희로애락이라는 갖가지 빛깔 감정이 부딪혀 매번 다른 무지개를 띄우듯 나 역시 다양한 영화에 끌려왔다"면서 "이 과정을 관통하면서 얻은 철학 한 가지가 있다면 삶은 역설이 있기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고통, 슬픔, 어두움, 갖은 재앙, 그것을 딛고 피어나는 판타지에 여전히 관심 많은 이유다"라고 했다.

영화‘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포스터.
영화‘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포스터. 델토로 스케치가 담겼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셰이프 오브 워터'는 델 토로 철학을 선연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는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실험실에 들어온 괴생명체에 끌린다. 과학자들이 그를 해부해 우주개발에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엘라이자는 괴생명체를 탈출시키려 한다. 델 토로 감독은 "미디어가 온갖 뉴스를 쏟아내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논쟁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논쟁을 멈추고 동화에 빠져드는 시간일 것"이라고 했다.

델 토로 감독은 봉
준호·박찬욱 등 한국 영화감독 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가 나으면 한국에 꼭 가고 싶다"면서 "내가 멕시코 출신인 덕에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왔듯 한국 감독들도 한국만의 정서를 녹여 색다른 영화를 만든다. 우리가 창작을 멈추면 안 되는 이유다"고 했다. "세상은 한 가지 빛깔로 이뤄진 게 아니니까요. 알록달록할수록 매혹적이니까요."



출처 : http://news.chosun.c
om/site/data/html_dir/2018/02/11/20180211018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