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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

최만섭 2018. 1. 19. 09:58

tap·es·try-명사[C , U] (pl. -ies) 태피스트리(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또는 그런 직물을 제작하는 기술)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

국가프랑스(France)
소장기관바이외 태피스트리 박물관(Musée de la Tapisserie de Bayeux)
관리기관프랑스 바이외 시
등재연도2007년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는 자수 작품이다. 이 예술작품은 11세기 만들어진 직물 작품으로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바이외(Bayeux) 시립도서관 최초의 소장품이었다. 


이 태피스트리에 대해 토론토의 요크대학교 미술사 교수 셜리 앤 브라운(Shirley Ann Brown)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놀라운 예술 작품이다. 이 작품은 11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나라의 역사를 바꾼 사건을 묘사한 역사적인 문헌이기도 하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라고 알려진 자수 작품은 약 275년 동안 연구·조사·가설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리고 역사가·학자·소설가·언론인 및 기타 여러 사람에 의해 연구되었다. 1720년 발견되어 왕립아카데미(Académie Royale)에 전시된 이래 이 태피스트리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은 500종이 넘는 출판물의 주제가 되었다.”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이 태피스트리는 일반적으로는 중세, 특정적으로는 11세기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원천 자료이다. 즉 이것은 르네상스 시기의 여러 문학 및 예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서술 기법과 상징을 사용하는 문헌적 기록이다. 또한 고유한 작품으로서 그와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 오늘날까지도 신비로운 요소를 유지하고 있으며, 몇 가지 의문점은 아직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이 태피스트리의 이례적인 특징은 그 크기에 있다. 길이가 68.80m, 높이가 50㎝이며, 무게는 350㎏에 가깝기(원래의 직물 및 안감) 때문에 전시할 때 매우 특별한 방식이 요구된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서양에서는 비슷한 작품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11세기에 제작된 작품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으며, 단지 9세기부터 12세기까지 만들어진 북유럽 태피스트리의 일부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 태피스트리는 브르타뉴 원정(Brittany expedition)과 바이외 선서(Bayeux oath)에 대한 정보 등 그 시대의 어느 텍스트에도 들어 있지 않은 노르만족의 잉글랜드 정복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태피스트리의 세계적 중요성은 다음 몇 가지 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주목할 만한 양식적 통일, 부정할 수 없는 미적 우수성을 보이는 독창적인 걸작이다.
주요 장면의 위쪽과 아래쪽을 따라 두 가장자리 장식에 동물 문양을 넣어 그 장면에 전개되는 이야기를 감싸고 보완한다. 때로는 「여우와 까마귀」와 같은 이솝 우화를 상기시키고, 때로는 예컨대 고무총으로 새를 잡는 장면이나 써레로 들판의 바닥을 고르는 장면 등 일상적인 광경을 묘사한 것도 있다. 게다가 주인공들 사이에 상당한 긴장이 감돌거나 이야기의 중요한 순간에 이르는 장면들에서는 가운데 해당 장면의 자수가 위쪽의 가장자리 장식 위에까지 겹쳐진다. 이처럼 그 내용이 가운데의 틀을 벗어나는 경우에는 움직임의 효과가 증가하여 교묘하게 활동성을 암시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장면을 거듭하면서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개하는 서술기법과 털실 가닥을 두툼하게 함으로써 빛과 그림자 효과를 자아내는 그래픽은 ‘만화’의 기법과 비슷하다.

둘째, 노르만족이 얼마나 여행을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다. 북유럽에서 온 그들의 조상 바이킹족은 센강을 거슬러 올라가 정착하면서 그 지방에 나라를 세웠다가 다시 떠나기를 거듭했다. 따라서 로마네스크 미술은 다양한 영향이 혼합된 예술이다. 그 영향의 원천은 다음과 같다.

- 이방민족의 미술(좁고 긴 배, 실내 장식물)
- 모자이크로부터 모사된 도드라지지 않는 납작한 형상이 등장하는 비잔틴 미술
- 이슬람 미술(삼엽 및 다엽형의 아치와 흑백 홍예석이 있는 아치 등이 차용된다)
- 사산조 페르시아의 미술(서로 마주보는 독수리, 사자들 사이에 있는 성화 등)
- 이집트의 초기 기독교 시대의 콥트교(Coptic) 미술(기둥머리, 서로 얽히게 하는 장식, 사자 등 야수가 서로 마주 보는 장식 등. 11세기의 교회와 지하실에는 이들 장식이 많이 보이며, 이들은 이 태피스트리에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세계적 중요성은 많은 관람객이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태피스트리는 해마다 360일에 걸쳐 약 400,000명이 관람하고 있으며 캐나다의 한 화가는 잡지에 실린 사진을 통해 이 태피스트리를 화폭에 옮기도 했다. 이 태피스트리는 매년 7월 첫째 주말에 개최되는 중세 축제 기간에 바이외 성당에 전시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이외 태피스트리 [Bayeux Tapestry]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번역 감수))


마크롱 "'바이외 태피스트리' 빌려주겠다" 한마디에… 영국 들썩

['950년 역사' 세계기록유산 대여]

英이 유럽대륙에 정복당한 사건, 70m 길이 천에 '자수'로 담아
여왕 대관식 때 대여 요청에도 절대 내주지 않았던 보물
영국 '마크롱의 선물'에 보답, 북아프리카 테러 집단 소탕 지원
佛칼레 난민촌 분담금 늘릴 듯

18일 영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샌드허스트 영국 육사에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가진 회담에서 프랑스가 보관하는 11세기 유물인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를 영국에 대여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역사학자들과 언론은 크게 반겼다. 브리티시박물관 측은 "프랑스가 지금까지 대여한 것 중 최고이며 극도로 관대한 조치"라고 밝혔다.

영국이 흥분하는 이유는 자수(刺繡) 제품인 '바이외 태피스트리'가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 때문.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바이외성당에 보존된 이 태피스트리는 영국의 중요 역사를 담고 있다. 1066년 앵글로 색슨계 영국 왕이었던 '참회왕 에드워드'가 후계자 없이 죽자 처남 해럴드가 일방적으로 왕위에 올랐다. 해럴드로부터 '신하의 예(禮)'를 받았던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공작('정복왕 윌리엄')은 이에 분노해 잉글랜드로 쳐들어갔다. 결국 그해 10월 14일 잉글랜드 남단의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를 죽이고 영국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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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바이외 태피스트리’에서 당시 잉글랜드 왕 해럴드가 프랑스에서 쳐들어온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군사가 쏜 화살에 눈을 맞아 죽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 위에 라틴어로 ‘여기서 해럴드 왕이 살해됐다’고 쓰여 있다. 자수(刺繡)로 꾸민 그림 이야기 형태인 이 태피스트리는 전체 길이 70m, 폭 50㎝에 당시 중세의 전투 방식과 무기, 복장 등을 상세히 담았다. /위키미디어커먼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정복왕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하기까지의 사건을 50개 장면으로 나눠 무려 70m의 길이에 '그림 이야기'로 엮은 것이다. 학자들은 윌리엄의 이복동생이 1070년쯤 제작을 주도해 '뛰어난 자수 솜씨를 지닌 전문가들이 한 장소에서 함께 제작을 한 것'으로 봤다.

이 태피스트리에는 잉글랜드 왕 해럴드가 눈에 화살을 맞아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여러 사료에 따르면 해럴드 왕은 '정복왕 윌리엄'을 포함한 4명의 노르만족에게 목과 다리가 잘려 죽었다. 이를 '신(神)이 쏜 화살'로 꾸민 것이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바이외성당에 걸린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다. 이 유물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바이외성당에 걸린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다. 이 유물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1066년을 계기로 앵글로 색슨계의 600년 영국 지배가 끝나고 대륙에서 온 '노르만 왕조(1066~1154)'가 들어섰다. 가디언은 "이때 영국은 유럽 대륙의 여러 민족과 섞이면서 '진정한 유럽 국가'가 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지금의 영국은 결코 앵글로 색슨계만의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도 프랑스 노르망디의 2차 대전 영국군 묘지에는 '우리는 한때 윌리엄에게 정복당했지만 이제 정복자의 고향을 해방했다'고 쓰여 있다. 그만큼 1066년은 영국 역사에서 중요하다.

또 노르만 왕조 때 약 1만개의 단어가 영어에 추가됐다. 의회(parliament)·군주(sovereign)·하인(servant)·판사(judge)·적(enemy) 등이다. 더 타임스는 "영국 인구의 20%를 차지했던 '노예'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항복한 상대는 죽이지 않는 중세 '기사도 정신(chivalry)'이 피어난 것도 노르만 왕조"라고 전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이 있었던 1953년과 '헤이스팅스 전투' 900주년이었던 1966년에도 바이외 태피스트리 대여를 요청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거절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프랑스 내에서도 1804년 영국 침공을 꿈꾸던 나폴레옹이 파리로 옮기고, 1945년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잠시 전시한 것 외에는 성당을 떠난 적이 없다.

메이 영국 총리는 "최대한의 사람이 볼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벌써 70m의 전시실이 있는 브리티시박물관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성당·캔터베리성당, 1066년 전투 현장인 '배틀사원'도 이 태피스트리 전시에 눈독을 들인다. 그러나 이 유물이 안전하게 옮겨질 수 있기까지 여러 테스트가 필요해 바이외성당이 수리를 위해 문을 닫는 2022년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더 타임스는 내다봤다.

'950년 만의 첫 나라 밖 행차'에는 당연히 '가격표'가 붙는다. 마크롱 대통령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테러 집단 소탕을 위해 영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영국 입국만 기다리며 프랑스 칼레에 머무는 아프리카·중동계 난민들에 대한 영국 정부
의 신속한 난민 절차를 요청했다.

영국 언론은 메이 총리가 프랑스군의 북아프리카 작전에 군(軍) 헬기 지원을 약속하고, 칼레 지역의 보안장벽 설치 등을 위해 4450만파운드(약 660억원)를 추가로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보답 차원에서 1801년 이집트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격퇴하면서 획득한 '로제타 스톤'을 프랑스에 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9/20180119002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