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년 역사' 세계기록유산 대여]
英이 유럽대륙에 정복당한 사건, 70m 길이 천에 '자수'로 담아
여왕 대관식 때 대여 요청에도 절대 내주지 않았던 보물
영국 '마크롱의 선물'에 보답, 북아프리카 테러 집단 소탕 지원
佛칼레 난민촌 분담금 늘릴 듯
영국이 흥분하는 이유는 자수(刺繡) 제품인 '바이외 태피스트리'가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 때문.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바이외성당에 보존된 이 태피스트리는 영국의 중요 역사를 담고 있다. 1066년 앵글로 색슨계 영국 왕이었던 '참회왕 에드워드'가 후계자 없이 죽자 처남 해럴드가 일방적으로 왕위에 올랐다. 해럴드로부터 '신하의 예(禮)'를 받았던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공작('정복왕 윌리엄')은 이에 분노해 잉글랜드로 쳐들어갔다. 결국 그해 10월 14일 잉글랜드 남단의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를 죽이고 영국을 정복했다.
이 태피스트리에는 잉글랜드 왕 해럴드가 눈에 화살을 맞아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여러 사료에 따르면 해럴드 왕은 '정복왕 윌리엄'을 포함한 4명의 노르만족에게 목과 다리가 잘려 죽었다. 이를 '신(神)이 쏜 화살'로 꾸민 것이다.
또 노르만 왕조 때 약 1만개의 단어가 영어에 추가됐다. 의회(parliament)·군주(sovereign)·하인(servant)·판사(judge)·적(enemy) 등이다. 더 타임스는 "영국 인구의 20%를 차지했던 '노예'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항복한 상대는 죽이지 않는 중세 '기사도 정신(chivalry)'이 피어난 것도 노르만 왕조"라고 전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이 있었던 1953년과 '헤이스팅스 전투' 900주년이었던 1966년에도 바이외 태피스트리 대여를 요청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거절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프랑스 내에서도 1804년 영국 침공을 꿈꾸던 나폴레옹이 파리로 옮기고, 1945년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잠시 전시한 것 외에는 성당을 떠난 적이 없다.
메이 영국 총리는 "최대한의 사람이 볼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벌써 70m의 전시실이 있는 브리티시박물관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성당·캔터베리성당, 1066년 전투 현장인 '배틀사원'도 이 태피스트리 전시에 눈독을 들인다. 그러나 이 유물이 안전하게 옮겨질 수 있기까지 여러 테스트가 필요해 바이외성당이 수리를 위해 문을 닫는 2022년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더 타임스는 내다봤다.
'950년 만의 첫 나라 밖 행차'에는 당연히 '가격표'가 붙는다. 마크롱 대통령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테러 집단 소탕을 위해 영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영국 입국만 기다리며 프랑스 칼레에 머무는 아프리카·중동계 난민들에 대한 영국 정부
영국 언론은 메이 총리가 프랑스군의 북아프리카 작전에 군(軍) 헬기 지원을 약속하고, 칼레 지역의 보안장벽 설치 등을 위해 4450만파운드(약 660억원)를 추가로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보답 차원에서 1801년 이집트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격퇴하면서 획득한 '로제타 스톤'을 프랑스에 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