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하응백의 해산물식당 紀行] "단칼에 싹둑 베어내니 잘 익어 석류처럼 빨간 대구알"

최만섭 2018. 1. 18. 09:02

[하응백의 해산물식당 紀行] "단칼에 싹둑 베어내니 잘 익어 석류처럼 빨간 대구알"

  • 하응백 문학평론가  입력 : 2018.01.18 03:11

[대구 요리 '거제 국자횟집']

겨울철 알밴 대구의 産地는 경남의 진해만 일대
소설가 박경리도 '토지'에서 먹음직스럽게 대구 음식 묘사
통영 여행 나섰던 시인 백석은 대굿국에 빗대 失戀의 아픔 노래

하응백 문학평론가
하응백 문학평론가
1597년 이순신 장군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왜군은 이간책을 짜낸다.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막료로 이중간첩이던 요시라가 역할을 맡았다. 요시라는 "고니시와 가토가 서로 원수 사이인데, 가토가 한 척의 배로 바다에 이르러 다시 오고 있는 중이다. 만일 수군이 바다 한가운데서 그를 요격하면 가토를 사로잡고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첩보를 조선 조정에 전달한다.

만약 이순신이 이를 토대로 가토를 공격한다면 이순신을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고, 반대로 이순신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조정은 이순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이 계책은 적중했다. 이순신은 적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돼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이르렀다.

선조는 회의를 열어 신하들의 마지막 의견을 물었다. 이때 판충추부사 정탁(鄭琢, 1526∼1605)이 이순신을 구원했다. 정탁은 이순신이 명장이니 살려두어 후일의 성과로 책임지게 하자고 했다. 윤휴가 쓴 '통제사이충무공유사(統制使李忠武公遺事)'에 나오는 이야기다.

선조는 전쟁 후인 1600년, 고향 예천에서 쉬고 있는 정탁에게 푸짐한 선물을 보낸다. 이순신을 죽이지 말라는 간언에 대한 보상이었는지 모른다. 이에 정탁은 선조에게 "…바닷가 가까운 곳에서 운송된 대구어절(大口魚折) 10마리, 청어 40속, 문어 4마리가 전달되어 신이 예천 집에서 수효대로 공경히 받았습니다"라고 편지를 보낸다('약포집'). 대구어절은 말린 대구를 말한다. 대구는 청어, 문어 등과 함께 하사품(下賜品)으로 애용되었다.

[하응백의 해산물식당 紀行]
/송윤혜 기자
겨울철 알밴 대구의 주산지는 경남의 진해만 일대였다. 그래서 진해, 통영, 거제 등지에서 대구 요리가 발달했다. 고향이 통영인 소설가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대구로 만든 음식이 자주 등장한다. 생대구국, 말린 통대구, 약대구, 대구알, 대구 아가미젓 등이다. 박경리는 "마른 대구를 먹기 좋게 찢어서 초장을 곁들여놨고 단칼에 싹둑 베어낸 대구알은 잘 익어서 석류같이 빨갰는데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고 고춧가루 깨소금을 살살 뿌려놨고…"처럼 먹음직스럽게 대구 음식을 묘사했다.

한편 시인 백석에게 대구는 쓰라린 상처의 환기물이다. 백석은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1935년 겨울 이화여고를 다니던 처자를 짝사랑하여 천 리 먼 길 통영으로 갔다. 하지만 길이 엇갈려 처자는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쓸쓸히 여행하다가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이라고 통영을 노래했다('통영'). 훗날 백석은 만주에서 그녀를 생각하며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조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흰 바람벽이 있어')고 노래한다. 백석에게 대굿국은 그녀와 함께 먹을 수 없는 아픔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겨울이 제철인 대구 맛을 보기 위해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 외포리로 간다. 외포리 일대의 어선들은 알을 잔뜩 실은 대구가 진해만으로 입성하는 겨울철이 되면 호망(壺網)으로 대구를 잡는다. 호망은 긴 통발 모양이기에 대구를 산 채로 잡을 수 있다. 이렇게 살려서 잡은 대구로 외포리에서는 해마다 12월이면 '거제대구수산물축제'를 벌인다. 아담한 외포항에는 10여 군데 이상의 대구 음식 전문집이 도열해 있다. 살아서 퍼덕이는 대구에 바닷바람에 말리는 대구까지 온통 대구 천지다.

대구를 갓 잡아 온 어부가 추천하는 집 '국자횟집(대표 허성권)'으로 들어선다. 대구회, 대구전, 대구찜, 대구탕 등을 내놓는다. 밑반찬이 차려진다. 대구알젓은 짜릿한 맛이고, 전갱이를 토막 쳐 넣은 김치의 곰삭은 맛 또한 일품이다. 인근에서 양식한 싱싱한 굴도 훌륭하다. 메인 요리인 회를 맛본다. 뱃살 쪽이 조금 더 고소하긴 하지만 회는 그리 추천할 만한 맛은 아니다.

아무리 싱싱해도 살 자체가 가지는 투명한 맛으로 인해 대구는 회로는 적합 하지 않다. 대신 전은 상당히 맛있다. 부드럽고 고소해서 동태전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역시 대구는 맑은 탕이다. 국물의 시원 담백한 맛은 '역시 대구탕'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 배가 불러 찜을 먹을 수 없어 아쉽다. 20대 초반의 백석에게는 이름이 '란'이라는 처자가 절대적이었겠지만, 반백 년을 넘어 산 사람들에게는 대구의 맛도 소중하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7/20180117030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