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나한테 장가와라!"… 얌전한 신부는 옛말

최만섭 2018. 1. 3. 09:00

"나한테 장가와라!"… 얌전한 신부는 옛말

남성에게 청혼하는 여성 늘고 결혼식서 신랑 위해 춤추기도
"여성의 경제적 지위 상승해 결혼은 男女 공동 주체라 인식"

부산 사는 오미경(33)씨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결혼식에서 걸그룹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신랑에게도 알리지 않은 깜짝 이벤트였다. 아무도 예상 못 한 발랄한 춤에 결혼식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신부는 꼭 얌전히 있으라는 법 있느냐"는 오씨는 "깜짝 놀라 웃음을 터뜨리던 신랑 얼굴이 생생하다. 신랑이 결혼식 하이라이트였다며 아직도 자랑하고 다닌다"고 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춤을 선보이는 '신부 댄스'가 유행이다. 신랑이 축가를 부르는 건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신부가 여기에 춤으로 답하는 셈이다. 이들에게 '신부는 조신해야 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유튜브에는 국내 '신부 댄스' 영상만 3만5000여개 올라와 있다. 대부분 댄스곡에 춤을 추지만 트로트를 선곡하는 신부들도 있다.

/김성규 기자
신부 댄스는 상반신 위주로 추는 춤이 대부분이다. 웨딩드레스와 하이힐 때문에 다리를 움직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부 댄스가 인기를 끌자 이벤트 업체들은 예비 신부들을 대상으로 댄스 강습부터 선곡, 영상 편집, 백댄서 지원까지 해주는 '신부 댄스 코스'를 내놓았다. 가격은 50만~100만원 선. 이벤트 회사 '탑레이디' 손영주 팀장은 "3년 전쯤부터 신부 댄스를 하겠다는 여성 고객들이 생겨났고 이제는 결혼식에서 댄스 이벤트를 하는 고객 절반이 여자"라고 했다.

남자가 프러포즈하고 여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도 바뀌고 있다. 요즘 여자들은 남자 옆구리 찌르며 청혼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서울 사는 직장인 이선환(30)씨는 작년 가을 남자친구 고정욱(30)씨에게 프러포즈한 뒤 12월 결혼했다. 함께 연극을 보고 막이 내릴 때 고씨를 데리고 무대에 올라갔다. 미리 극단에 말해 양해를 구해놓은 상태였다. 이씨는 결혼하자는 내용의 편지와 선물을 고씨에게 전했다. 관객들은 깜짝 이벤트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씨는 "평소 남녀 역할을 굳이 따지는 사이가 아니어서 프러포즈도 내가 먼저 하게 됐다"며 "신랑이 감동받은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역시 먼저 프러포즈한 박은혜(24·전북 완주군)씨도 "신랑이 결혼을 망설이는 것 같아서 내가 선수를 쳤다"며 "청혼은 남자가 먼저 해야 하고 여자는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건 편견"이라고 말했다.

여자들의 프러포즈는 결혼반지를 건네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좀 다르다. 각자 이름을 새긴 커플 도장을 약속의 징표로 건네거나, 케이크에 '장가 와라' 같은 문구를 써넣어 선물하기도 한다. 이벤트회사 '고프로포즈' 이찬희 이벤트플래너는 "여자가 둘만의 추억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거나 편지를 읽으면서 청혼하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 남자가 결혼반지를 건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부들의 적극적인 모습은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신랑 신부가 공동의 주체라는 인식이 강해지며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남자들이 결혼의 책임감을 부담스러워해 여자들이 나서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3/20180103000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