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최보식이 만난 사람] "기계의 叛亂이라고? 인간은 기계에 당할 만큼 어리석지 않아"

최만섭 2017. 12. 25. 08:55

[최보식이 만난 사람] "기계의 叛亂이라고? 인간은 기계에 당할 만큼 어리석지 않아"

[停年 맞은 '한국 최초 컴퓨터 박사'…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알파고'의 바둑 대결 당시 우리만 난리가 났다
자동차 바퀴만 보고 열광… 숨어있는 엔진을 못 봤다"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인터넷 접속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



문송천(65)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 최초 '전산학(電算學) 박사'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24세의 새파란 나이에 교수가 돼 41년간 재직했다. 국내 컴퓨터 학계의 산 역사인 셈이다.

그가 "정년(停年)을 맞아 떠나는 마당에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메일을 보내왔을 때, 선뜻 응할 수 없었다. 내 구태의연한 지식으로는 그의 컴퓨터 세계를 이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회신하려니 전화를 안 받았다. 나중에 그는 "주말이나 평일 저녁 8시 이후에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그런 쪽에 삶이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내가 별난 사람이다. 남들이 안 하는 것만 골라서 해왔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했다. 어느 날 신문에서 '컴퓨터가 인간 생활을 바꿀 것'이라는 기사를 보고는 꽂혔다. 당시 유일하게 전자계산학과가 개설된 숭실대에 들어갔다. 그 전까지 컴퓨터 실물은 못 봤다."

이미지 크게보기
문송천 교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도와줄 순 있어도 인간을 대신할 순 없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대학에 들어가 컴퓨터를 배웠을 때 이렇게 빨리 세상이 바뀔 줄 알았나?

"그때는 학교 전산실이 IBM의 대형 컴퓨터로 꽉 찼다. 하루에 수십 번 고장 났다. 1970년대 컴퓨터는 은행에서 월급 계산 같은 단순 업무에만 사용됐다. 그때부터 컴퓨터의 계산 성능과 메모리 능력은 1년 반마다 정확히 두 배씩 향상돼왔다."

―컴퓨터가 빠르게 바꿔놓는 세상에 인간이 숨차게 쫓아가며 적응하는 모습이다.

"컴퓨터의 발전 속도가 무한정 빨라질 수는 없다. 인간이 일하는 속도에서 결정된다. 인간 반응 속도에 컴퓨터 역시 구속된다. 인간이 못 따라가면 그 지점에서 컴퓨터의 발전 속도도 멈출 수밖에 없다."

―인간 반응 속도에 컴퓨터가 구속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컴퓨터에 무엇을 물어보고 빨리 답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 속도의 기준은 3초다. 이를 넘으면 사람들은 좀 답답해한다. 더 빠르면 인간이 따라가지 못한다. 컴퓨터 정보 시스템 개발자들은 대개 3초에 답이 나오게 하려고 한다. 이를 '3초 룰(rule)'이라고 한다."

―'알파고'의 충격이 있었다. 어떤 철학자는 '신(神)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이제 인간이 신의 역할을 맡아 인공지능을 창조한다'고 표현했다.

"AI(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가 너무 부풀어 있다. 호사가들이 말하는 AI 세상이 되려면 앞으로 수백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인공지능이 뉴스 기사를 작성하고, 판례(判例)에 의거해 판결하고, 환자를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지 않은가?

"틀에 맞춘 스트레이트 기사는 쓸 수 있겠지만 창의적 칼럼을 쓸 수는 없다. 법원 판례나 진료 기록을 기억했다가 활용할 수는 있지만, 상황에 따른 융통성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기계(인공지능)가 인간을 도와줄 순 있어도 인간을 대신할 순 없다."

―페이스북 설립자인 저커버그가 "AI는 우리 삶을 더 좋게 만들 것"이라고 하자, 전기차 테슬라를 만든 일론 머스크는 "AI가 대량 실업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인류에게 근본적 위협"이라고 했다. 어느 쪽인가?

"인공지능은 전산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계산 능력과 기억력만 뛰어날 뿐, 창조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인간의 무한한 창조 능력을 흉내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AI가 인류 문명사를 종결지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분은 가끔 미래학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컴퓨터 전문가가 아니어서 인공지능의 현 위치와 향후 기술 발달에 대해 정확히 모를 수 있다."

―실제 인공지능이 탑재된 '스마트 무기'가 생산되고 있다. SF 영화에 나오는 로봇 병사가 현실화되고, '기계의 반란'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컴퓨터는 지능적 기계에 불과하다. 인간이 제어 활용하고 관리할 수 있다. 인간은 기계에 당할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전원만 다운시키면 컴퓨터는 단지 기계 뭉치에 불과하다. 물론 인간의 뇌 기능을 기계에 그대로 옮기려는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뇌(腦) 영역은 인간도 아직 못 푸는데 어떻게 옮길 수 있겠나."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단계로 가고 있지 않은가?

"고난도 퀴즈 대회에서 인간 챔피언을 압도적으로 제압하기도 했지만 실생활에서 활용되는 수준은 아직 초보 단계다. 스마트폰의 음성 인식 기능이나, 수술실에서 스마트 안경을 끼고 수술하는 것 정도다. 기계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고장 난 부위를 고치고, 스스로 복제·증식할 수 있게 되면 대(大)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각각 다른 산업 분야의 첨단 기술이 합쳐져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해오던 사업을 제쳐두고 이런 합동 연구를 하기란 쉽지 않다."

―인공지능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있다면, 그러한 합동 연구에 뛰어들지 않을까?

"기업의 속성상 돈이 안 되면 하지 않는다. 애플은 스마트폰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OS)로, IBM은 금융권에 대형 컴퓨터를 팔아먹는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으로 돈 벌 수 있는 사업은 별로 없다. 시범 사업 수준에서 병원 진료나 주식·금융거래에 적용해보는 정도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무인 자동차처럼 상용화되고 있지 않나?

"무인 자동차는 반도체 중심의 센서 기술에 인공지능이 다소 가미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화 봉송 주자로 나온 카이스트의 인공지능 로봇이 흥미를 끌었지만, 소비자가 받아들일 만한 가격 수준으로 상용화되려면 너무나 갈 길이 멀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와 최보식 선임기자 사진
―인공지능이 지금처럼 관심을 받게 되면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지지 않겠나?

"그건 맞지만, 사실 인공지능은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너무 많이 부풀려졌다.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비중은 20%쯤 된다. 자동차로 치면 '알파고'는 바퀴에 불과하다. 자동차 엔진은 소프트웨어의 운영체제와 데이터베이스다. 이게 없으면 인공지능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알파고' 개발은 영국에서 했지만,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인 구글에 팔렸다. '알파고' 대국 당시 영국에는 단 세 건 언론 보도가 있었다. 우리만 난리가 났다. 자동차 바퀴만 보고 열광했지, 그 속에 숨어있는 소프트웨어라는 진짜 실력자를 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 사회를 흔든 열풍은 '국가 인공지능연구소' 하나 만들고 끝났다."

―국내 스타트업은 대부분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 않나?

"꽤 잘하는 기업도 소수 있지만, 대부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앱을 개발하는 정도다. 내가 말하는 것은 운영체제와 데이터베이스다. 1950년대 IBM의 운영체제나 1970년대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 엔진은 미국 정부의 제작 주문으로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정부 주도로 키운 것이다. 지금 미국은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0.8%다. 정보통신 기술 강국이라고 내세우는 우리의 숨겨진 성적표다. 정부나 기업은 여기에 관심이 없다."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시장에 뛰어들어 봐야 승산이 없다는 판단 때문 아니겠나?

"안 될 걸 왜 하느냐며 지레 포기하는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퇴장해버린 격이다. 컴퓨터 언어는 모두 영어로 이뤄지니까, 잘 만들기만 하면 글로벌 표준 경쟁을 할 수가 있다. 정부 관료들은 소프트웨어가 뭔지 모르니 정책이 있을 리 없다. 지금까지 우리를 먹여 살려온 반도체는 중국에 곧 추월될 것이다. '반도체 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없다. 며칠 전 발표한 정부의 5대 신(新)산업 육성 정책에서도 소프트웨어는 빠져 있다."

―교수 시절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을 개발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1990년 시제품 제작에 성공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였다. 삼성, 금성, 현대 등에 상품화를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내가 전산학과에서 경영대학원으로 옮긴 이유가 그런 충격과 좌절감 때문이었다. 그 뒤 국내 대기업의 데이터 관리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대기업이 저장하고 있는 데이터 중 절반가량이 전혀 가치 없는 쓰레기였다. 관리 방식만 첨단이었지 그 속에는 쓰레기 데이터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 것이다."

―요즘 '빅데이터'가 유행인데.

"유럽입자연구소의 중성미자 실험 과정에서 글자 수가 10의 15승(乘)인 1000조(兆)개가 나오면서 '빅데이터' 시대가 최초로 열렸다. 거대 규모 물리나 유전공학 실험, 기상 관측 분야에서만 빅데이터가 사용되고 있다. 매스컴에서 말하는 '빅데이터' 용어는 대부분 잘못 쓰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빅데이터'로 후보 분석이 있었고, 최근 서울시에서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심야 버스 노선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빅데이터가 아니라 스몰데이터다. 단지 빅데이터 처리 방식을 따랐다는 거다. 일반 사회에서는 교신량이 큰 소셜 미디어 분야를 빼면 아직 빅데이터 시대가 오지 않았다.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할 컴퓨터조차 제작되지 않고 있다. 상업적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 세상을 파괴하는 어둠의 적(敵)은 '해킹'이다. 미국 백악관이 지난 5월 전 세계 병원, 은행, 기업 네트워크를 마비시킨 '워너크라이(WannaCry)' 랜섬웨어 사이버 공격의 배후로 북한을 공식 지목했다. 미국은 어떻게 이를 단정할 수 있나?

"처음 인터넷을 만든 나라가 미국이다. 전 세계 인터넷은 실질적으로 미국 상무부의 통제를 받는 체제다. 인터넷의 최상위 루트(root) 서버의 관리 권한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인터넷 접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다. 해킹도 진원지 추적이 가능할 것이다."

―왜 우리 사회는 유독 해킹에 취약한가?

"대학에서 '해킹' 과
목을 강의해왔다. 해킹은 고도의 데이터 게임이다. 해커들은 개인 정보를 연결, 가공, 재구성하는 데 귀재다. 한국에서 그런 해킹에 결정적 단초를 제공하는 데이터가 주민등록번호다. 주민번호 체제를 개편하면 해커를 무력화할 수 있다. 해킹 건수가 현재보다 1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기 비밀번호를 닷새에 한 번만 바꿔줘도 해킹을 막을 수 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24/20171224013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