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BUSINESS 용어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

최만섭 2017. 9. 15. 09:45

체험 한 모금, 놀이 한 스푼

단순히 카페·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는 대신 식사를 하면서 체험과 놀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가 주목받고 있다.
'먹는다'라는 뜻의 'eat'와 '오락'이라는 뜻의 'entertainment(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단어로, '먹으면서 놀 수 있는 문화'라는 얘기다.

입력 : 2017.09.15 04:00

먹으면서 경험하고 즐기자

음식만 먹기엔 심심해
카페 한쪽에 세탁기 8대
커피 한 잔 즐기며 빨래 기다릴 수 있어

놀이와 결합한 한끼
드레스코드는 '흰 옷' 식기·의자도 자가공수
미식·패션·엔터 합쳐진 디네앙블랑 파티 인기

카페에서 그림·공예
커피와 함께 물감 제공
자유롭게 그림 그리거나 팝아트 배울 수 있어
도자기 빚어보거나 나만의 컵 만들어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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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빨래방과 카페가 복합된 서울 해방촌 ‘론드리 프로젝트’에선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면서 음료를 마실 수 있다. ② 수채화 팔레트를 쟁반 삼아 음식을 가져다주는 서울 성수동 ‘피치그레이’. ③ ‘피치그레이’ 내부 모습. 한쪽 벽엔 손님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외출 나간 아내를 기다리면서 빨래하고 있으려고 해방촌까지 옷 담긴 가방을 들고 왔어요."

미국 뉴욕에서 온 후안 베라씨가 빨래가 한가득 담긴 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서울 해방촌에 있는 '론드리 프로젝트'에 들어섰다. '론드리 프로젝트'는 빨래방 겸 카페. 베라씨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세탁기 8대가 있는 빨래방으로 직행해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렸다.

[friday] 체험 한 모금, 놀이 한 스푼
"빨래하면서 커피 마실 수 있는 곳은 처음이에요. 미국에선 빨래방에서 세탁이 끝나기만 지루하게 기다려야 하는데 말이에요. 미국으로 가져가고 싶은 카페네요." 카페 공간으로 와 커피와 빵을 먹으며 카페 사장 이현덕(31)씨와 베라씨가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단순히 카페·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는 대신 식사를 하면서 체험과 놀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가 주목받고 있다. '먹는다'라는 뜻의 'eat'와 '오락'이라는 뜻의 'entertainment(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단어로, '먹으면서 놀 수 있는 문화'라는 얘기다. 먹는 게 하나의 놀이가 된 현상이다.

온라인 미국 영어사전인 '어번 딕셔너리'에 따르면 '이터테인먼트'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 사진, 포스팅, 만족감 등을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오락이다. 코트라(KOTRA)는 '이터테인먼트'를 '2017년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 중 하나로 손꼽았다. 먹는 행위에 색다른 경험이 더해진 식문화는 단순히 한 끼를 채우는 형태에서 나아가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발전해 가고 있다.

미식·패션·엔터테인먼트가 합쳐진 이색 파티인 '디네앙블랑(DÎner en Blanc)'은 이런 트렌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행사다. 매년 참가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으로 차려입은 채로 식전 빵에서부터 디저트, 만찬을 즐길 테이블과 의자, 포크와 나이프까지 일일이 챙겨와 저녁 자리를 마련한다. 한 번의 저녁을 위해 치장하고 준비물을 일일이 챙겨와야 하지만 취향을 반영해 자신만의 파티를 만들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지난 8월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디네앙블랑'에 참여한 이한솔(33)씨는 "단순히 다 같이 모여 밥만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콘셉트에 맞춰 옷을 입고, 식사 자리를 꾸며야 하는 만큼 준비 과정부터가 즐거웠다"고 했다. 지난 4월 서울 행사에 참여한 유다연(26)씨는 "다른 테이블과 차별화된 나만의 개성이 담긴 자리에서 저녁을 먹으니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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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이터테인먼트 행사와 공간. 지난 8월 해운대 바닷가에서 열린 '디네앙블랑'. / 디네앙블랑 제공
그림 그리기나 컵 만들기 등 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식당과 카페 수도 늘어가고 있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카페화실(02-561-8889)은 카페인 동시에 아크릴 물감과 연필 등으로 그림 그릴 수 있는 화실이다. 화실보단 조금 더 따뜻하고,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카페보단 자유로운 분위기다. 카페 안은 아그리파, 비너스 같은 석고상과 카페 사장 주명희씨가 직접 그린 그림들로 꾸며져 있다. 한편엔 사장의 작업실이 있고, 미술 서적들이 갖춰져 있어 화실다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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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이터테인먼트 행사와 공간.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서울 역삼동 '카페화실'. '카페화실'에서 아크릴물감을 사용해 만든 그림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주위를 더럽힐 염려 없이 편안히 그림을 그려도 된다. 이젤에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려도 되고 매장 한편에 갖춰진 아크릴 물감과 색연필을 사용해도 된다. 그림 문외한이라면 주씨의 도움을 받아 팝아트 그림 체험(음료 포함 2만5000원)을 할 수 있다. 주씨는 "바쁠수록 여유가 필요한 만큼 종일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이 주는 특별한 힐링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 성수동 피치그레이(02-412-2726)는 인스타그램에서 '그림 그리는 카페'로 인기몰이 하고 있는 곳. 음료를 주문하면 수채화 물감이 짜진 팔레트를 쟁반 삼아 종이와 붓을 함께 자리로 가져다준다. 붓의 몸통을 누르면 물이 나오는 간편 수채화 붓을 사용해 따로 물통에 붓을 헹궈야 할 필요가 없어 깔끔하다. 음료를 시키면 엽서지만 한 크기의 종이 한 장을 주는데, 300원을 내면 새것을 살 수 있다. 그림 그릴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카페 한편에 수채화 관련 서적을 구비해놨다. 이 카페 주인인 김민경(27)씨는 "보통 카페에선 손님들이 얘기하다 소재가 고갈되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데, 여기선 그림을 그리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며 웃었다. 직장인 김은(29)씨는 "맛있는 걸 먹으며 아무 생각 없이 그림만 그리다 가니 기분이 전환된다"고 말했다.

한쪽 벽엔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 빼곡히 걸려 있다. 전체가 순백 공간인 카페에 사람들의 그림과 수채화 팔레트가 색감을 더해준다. 대학생 이하나(23)씨는 "내가 그린 그림이 이곳의 인테리어 일부가 된다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폭신한 식감의 팬케이크가 인기 메뉴다. 주문 즉시 반죽하기 시작해 30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구수한 빵 냄새를 맡으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서울 혜화동 그리기 좋은날(02-744-0327)에선 음식을 먹은 뒤 직접 머그컵(작은 컵·17000원)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흙으로 빚은 컵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한 뒤, 1~2주 뒤에 찾으면 된다. 용산동 드도트(02-794-2419)에선 도자기 체험이 가능하다. 가장 많이 하는 수업은 '원데이 클래스'로 약 2시간(8만원)이 소요된다. 예약은 2일 전에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