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Why] 남편이 데리러 와? 안 부럽다, 안 부러운데, 그런데…

최만섭 2017. 7. 8. 09:01

[Why] 남편이 데리러 와? 안 부럽다, 안 부러운데, 그런데…

  • 이주윤 작가

입력 : 2017.07.08 03:01

[이주윤의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방귀·트림 참아가며
얻은게 남편의 에스코트?
택시 부르면 되지 그것 때문에 결혼하냐

어느날 난데없는 장대비
우산도, 부를 사람도 없어
친구가 진심 부러웠다

[이주윤의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일러스트=이주윤
결혼 삼 개월 차, 신출내기 유부녀인 친구에게서 '놀고 싶어 미치겠다'고 연락이 왔다. 놀고 싶으면 나가 놀면 그만이지 놀고 싶어 미칠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더니,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영 신경이 쓰여서 마음 편히 놀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놀아도 논 것 같지가 않아서 짜증이 난다나 뭐라나. 이어 그녀는 결혼 생활의 이런저런 불편을 줄줄 토로했다. 신혼집 가까이에 사는 시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시는 것, 방귀를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남편 몰래 푸다다닥! 한꺼번에 내보내야 하는 것, 트림 역시 그리할 수밖에 없는 것,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고개만 돌리면 남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것 등등. 그녀는 이 모든 일에서 자유로운 나를 부러워했다.

단점 말고 장점은 없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음, 글쎄, 뭐가 있을까" 한참 뜸을 들이더니 "데리러 오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 하고 대답했다. 그녀의 남편은 언제 어디로든 그녀를 데리러 온다고 했다. 그 덕에 낯선 동네에서 막차가 끊길 때까지 술 마시며 놀면서도 집에 돌아갈 걱정은 하지 않는단다. 그 많은 자유를 포기하고 얻은 것이 고작 '데리러 오는 사람'이라니.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만으로도 대체 가능한 장점이었다. 결혼 그까짓 거 안 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 없겠구먼그래! 나는 다른 어떤 것에도 구애받을 필요 없이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현재를 만족스러워하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원고를 썼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오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도서관을 나서는데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는데 이를 어쩌나. 택시를 부르려다가 그만두었다. 정문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와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와야 하는 도서관 입구에 택시를 댈 수 없는 까닭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지하철까지만 우산을 나누어 쓸 수 없겠냐고 말을 걸기에는 내가 너무 수줍음이 많은 탓이었다. 친언니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우산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염치 불고한 짓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밤은 차차 깊어져 갔다. 탁, 탁, 우산 펼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데.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이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꼼짝없이 발이 묶인 나는 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자유를 잃은 대신 데리러 오는 사람을 얻은 친구가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나도 언젠가는 나의 자유와 맞바꿀 만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이렇게 비가 오는 날 기꺼운 마음으로 우산을 들고 나를 데리러 와 줄까? 그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 작은 우산을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다녀야겠다. 아무리 해가 쨍쨍한 날이라 하더라도 갑자기 내릴지도 모르는 소나기에 대비해 절대로 우산을 빼놓지 말아야겠다. 오늘처럼 괜스레 감상에 젖어드는 일 없도록 말이다. 그런데 그 임은 언제면 오시려나. 이번 생에 오기는 오시려나? 오라는 임은 안 오고 왜 자꾸 비만 오는 거야. 하늘아, 뚝 그치라고. 울고 싶은 건 네가 아니라 나라고!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7/20170707014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