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6.30 04:00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애초에 쿨한 고부 관계란 없습니다. 쿨하기에는 너무나 큰 것을 주고받은 관계입니다. '쿨한 척'의 유통기한은 고작 3년입니다. 그 뒤로는 배신감과 부담감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펼쳐지지요. 이겨서도 져서도 안 되고 팽팽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힘만으로는 버틸 수 없습니다. 뚝심이 필요하죠. 참고 기다리며, 타이밍과 시간 싸움을 하는 여자들의 뚝심 말입니다.
홍여사 드림
홍여사 드림
![](http://life.chosun.com/site/data/img_dir/2017/06/29/2017062902333_0.jpg)
결혼을 앞두고 마음에 걸리는 점 한 가지쯤은 누구나 있겠지요? 저에게도 실은 살짝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외동아들이라는 점, 그것도 유난히 어머니와 친한 모범생 아들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죠. 결혼 7년 만에 겨우 얻은 귀한 아들이 속 한번 안 썩였다니 어머니의 기대가 얼마나 크시겠어요? 혹시라도 아들을 빼앗기는 기분을 느끼시지는 않을지….
다행히 저의 걱정은 빗나갔습니다. 어머님은 쿨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이제 네 신랑이니 네 맘대로 데리고 살라고요. 말씀뿐만 아니라 행동도 삼가주시는 걸 저는 느꼈습니다. 아들이 팔짱을 끼려 해도 제가 있으면 뿌리치실 정도로요.
어머님이 그렇게 배려해주시니 저도 가만있을 수 없더군요. 자주 뵙고, 전화도 자주 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고부간에 눈 흘길 일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주위 결혼 선배들은 콧방귀 뀌는 소리를 하더군요. 딱 3년만 살아보고 말해!
그들이 말한 만 3년을 서너 달 앞둔 시점이 요즘입니다. 그런데 정말 어머님과 저 사이에 쌓이고 쌓인 갈등이 불거지고 말았네요. 저희는 시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신혼집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방이 세 개인데, 그중 제일 큰 방은 저희 부부 침실로 꾸몄고 작은 방 하나는 일에 필요한 작업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나머지 방 하나는 손님방쯤으로 생각하고 비워두었죠.
그런데 살림을 차린 지 한 달쯤 되어서 어머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빈방이 휑뎅그렁하니 거기에 어머님이 쓰시던 예전 화장대를 갖다 놓자고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씀이라 저는 얼떨결에 좋다고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화장대가 들어오는 날 보니 당황스럽더군요. 어머님이 시집올 때 큰맘 먹고 해오셨다는 좌식 자개 화장대는 저희 집 인테리어 콘셉트와는 동떨어진 물건이었습니다. 방 크기에 비해 크기도 좀 커서 답답해보였고요.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어머님이 원하시니 그 뜻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장대가 끝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어머님은 오실 때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겨오셔서 화장대를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화장품은 물론이고 어머님 손에 익은 드라이어나 빗, 양말, 스타킹, 면봉에 손톱깎이까지….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쩌다 하룻밤씩 묵어가시기엔 너무 많은 옷을 저희 집으로 옮겨 오셨습니다. 게다가 액자에, 화병에, 자수 놓은 방석까지 집 안 물건 중 아까워서 못 버리고 있던 것들은 다 아들 집에 가져다 놓으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집에 들여놔서 해로운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제 마음은 어째 좀 심란하더군요. 단순히 편의를 위해서라고 보기엔 과했습니다. 어머님은 그 일을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님은 아들의 집에 당신의 방을 꾸미고 계신 거였습니다.
그 방을 쳐다보면 제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무거워졌습니다. 처음엔 어머님이 자주 오셔서 오래 묵으시려는 줄 알고 걱정했죠. 하지만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어머님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오신 적은 없어요. 오셔도 거의 주무시지 않았고요. 어머님은 그저 아들 집에 당신의 방도 하나 갖고 싶으신 모양이었습니다. 아들 곁에 옛날 추억으로 가득한 내 방을 두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셨던가 봐요. 아들 역시 그 일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아예 그 방을 '엄마 방'이라고 편하게 부르는 걸 보면요. 그러니까 저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게 안 될까요? 어머님이 저희 집에 오시는 건 환영이지만 그 방만은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다만 어머님 마음이 상하지 않을 묘안이 없어 실행하지 못할 뿐이었죠. 그러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전세 기간이 만료되어 저희가 이사를 하게 된 겁니다. 이사 날짜가 정해진 뒤 저는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참에 어머님 화장대와 물건들은 도로 어머님댁에 갖다 놓아 드리겠다고요.
그냥 그렇게만 말씀드렸고 어머님도 굳이 이유를 묻지 않으시더군요. 순간 어색한 냉기가 감돌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아무리 포장을 해봐도 진실은 하나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 곁에 자신의 공간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며느리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이 상황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방법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어머님의 방 거울 앞에 한참 동안 앉아 있어 보았습니다. 그저 방일 뿐인데 내가 너무했나 싶으면서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며느리 마음을 어머님이 좀 이해해 주셨으면 싶었습니다. 방을 되찾는 것일 뿐 어머님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셨으면…. 바로 그때 핸드폰이 메시지 도착을 알렸습니다. 역시 잠 못 들고 계신 어머님이었습니다.
"며늘아. 너는 모른다. 아들이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아들이 떠나자 집이 집이 아니더라. 내 마음이 살고자 하는 곳은 정 없는 남편 곁이 아니라 아들 곁이었단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일이었지. 너를 위해 나는 참고 또 참았단다. 내 마음 조각만 부려놓고 몸은 절대 거기 두지 않으려 했단다. 네가 늘 웃는 얼굴로 대해줘서 내 마음 이해하는 줄 알았다. 옷 보따리쯤은 받아줄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눈에 걸리고 마음에 걸리더냐? 그렇다면 미안하구나. 오늘은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 때문에 너무 아프다."
아 어쩌면 좋을까요? 어머님의 글을 읽고 가슴에 고구마가 한가득 얹히는 느낌입니다. 우린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어머님은 또 저를 그렇게 느끼시며 고구마 한가득이시겠죠?
다행히 저의 걱정은 빗나갔습니다. 어머님은 쿨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이제 네 신랑이니 네 맘대로 데리고 살라고요. 말씀뿐만 아니라 행동도 삼가주시는 걸 저는 느꼈습니다. 아들이 팔짱을 끼려 해도 제가 있으면 뿌리치실 정도로요.
어머님이 그렇게 배려해주시니 저도 가만있을 수 없더군요. 자주 뵙고, 전화도 자주 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고부간에 눈 흘길 일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주위 결혼 선배들은 콧방귀 뀌는 소리를 하더군요. 딱 3년만 살아보고 말해!
그들이 말한 만 3년을 서너 달 앞둔 시점이 요즘입니다. 그런데 정말 어머님과 저 사이에 쌓이고 쌓인 갈등이 불거지고 말았네요. 저희는 시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신혼집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방이 세 개인데, 그중 제일 큰 방은 저희 부부 침실로 꾸몄고 작은 방 하나는 일에 필요한 작업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나머지 방 하나는 손님방쯤으로 생각하고 비워두었죠.
그런데 살림을 차린 지 한 달쯤 되어서 어머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빈방이 휑뎅그렁하니 거기에 어머님이 쓰시던 예전 화장대를 갖다 놓자고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씀이라 저는 얼떨결에 좋다고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화장대가 들어오는 날 보니 당황스럽더군요. 어머님이 시집올 때 큰맘 먹고 해오셨다는 좌식 자개 화장대는 저희 집 인테리어 콘셉트와는 동떨어진 물건이었습니다. 방 크기에 비해 크기도 좀 커서 답답해보였고요.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어머님이 원하시니 그 뜻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장대가 끝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어머님은 오실 때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겨오셔서 화장대를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화장품은 물론이고 어머님 손에 익은 드라이어나 빗, 양말, 스타킹, 면봉에 손톱깎이까지….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쩌다 하룻밤씩 묵어가시기엔 너무 많은 옷을 저희 집으로 옮겨 오셨습니다. 게다가 액자에, 화병에, 자수 놓은 방석까지 집 안 물건 중 아까워서 못 버리고 있던 것들은 다 아들 집에 가져다 놓으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집에 들여놔서 해로운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제 마음은 어째 좀 심란하더군요. 단순히 편의를 위해서라고 보기엔 과했습니다. 어머님은 그 일을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님은 아들의 집에 당신의 방을 꾸미고 계신 거였습니다.
그 방을 쳐다보면 제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무거워졌습니다. 처음엔 어머님이 자주 오셔서 오래 묵으시려는 줄 알고 걱정했죠. 하지만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어머님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오신 적은 없어요. 오셔도 거의 주무시지 않았고요. 어머님은 그저 아들 집에 당신의 방도 하나 갖고 싶으신 모양이었습니다. 아들 곁에 옛날 추억으로 가득한 내 방을 두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셨던가 봐요. 아들 역시 그 일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아예 그 방을 '엄마 방'이라고 편하게 부르는 걸 보면요. 그러니까 저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게 안 될까요? 어머님이 저희 집에 오시는 건 환영이지만 그 방만은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다만 어머님 마음이 상하지 않을 묘안이 없어 실행하지 못할 뿐이었죠. 그러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전세 기간이 만료되어 저희가 이사를 하게 된 겁니다. 이사 날짜가 정해진 뒤 저는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참에 어머님 화장대와 물건들은 도로 어머님댁에 갖다 놓아 드리겠다고요.
그냥 그렇게만 말씀드렸고 어머님도 굳이 이유를 묻지 않으시더군요. 순간 어색한 냉기가 감돌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아무리 포장을 해봐도 진실은 하나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 곁에 자신의 공간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며느리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이 상황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방법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어머님의 방 거울 앞에 한참 동안 앉아 있어 보았습니다. 그저 방일 뿐인데 내가 너무했나 싶으면서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며느리 마음을 어머님이 좀 이해해 주셨으면 싶었습니다. 방을 되찾는 것일 뿐 어머님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셨으면…. 바로 그때 핸드폰이 메시지 도착을 알렸습니다. 역시 잠 못 들고 계신 어머님이었습니다.
"며늘아. 너는 모른다. 아들이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아들이 떠나자 집이 집이 아니더라. 내 마음이 살고자 하는 곳은 정 없는 남편 곁이 아니라 아들 곁이었단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일이었지. 너를 위해 나는 참고 또 참았단다. 내 마음 조각만 부려놓고 몸은 절대 거기 두지 않으려 했단다. 네가 늘 웃는 얼굴로 대해줘서 내 마음 이해하는 줄 알았다. 옷 보따리쯤은 받아줄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눈에 걸리고 마음에 걸리더냐? 그렇다면 미안하구나. 오늘은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 때문에 너무 아프다."
아 어쩌면 좋을까요? 어머님의 글을 읽고 가슴에 고구마가 한가득 얹히는 느낌입니다. 우린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어머님은 또 저를 그렇게 느끼시며 고구마 한가득이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