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6.22 03:04
[민노총 건설노조 1박2일 집회… 경찰, 출근길 시위 이례적 허용]
- 6000여명, 2.8㎞ 1시간 행진
어제 오전 8시30분부터 점거… 최근 10년 평일 출근길 행진 없어
- 시민들 불만 터져나와
"시위 자유 보장하는 것도 좋지만 일반 시민들 편의는 고려 안하나"
시위대 향해 고함·경적 항의도
- 경찰은 적극적 단속 안해
새 정부 출범후 집회 최대한 허용… 금지지침 안내리고 차량 통제만
21일 오전 8시쯤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에서 서울시청 방향 편도 5차로 가운데 2개 차로를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전날부터 1박 2일 집회를 했던 6000여 명(경찰 추산)이 행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직동과 안국동 쪽에서 몰려온 출근길 차들이 갑자기 좁아진 차로 때문에 뒤엉켰다. 같은 시각 광화문사거리 부근 왕복 8차선 새문안로에도 민노총 조합원들이 2~3개 차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이들은 약 30분 후 세종로 소공원에서 출발해 안국역과 종각역을 거쳐 대우건설, 내자로터리로 이어지는 2.8㎞ 구간에서 2~3개 차로를 점거하고 1시간가량 행진했다.
경찰은 이날 행진하는 시위대 주변에서 교통정리를 했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서대문 방향 좌회전을 금지하는 등 시위대 진행 상황에 따라 교통을 통제했다. 도로에 멈춰 선 운전자들은 텅 빈 도로에서 행진하는 시위대를 향해 항의 표시로 경적을 울리거나 고함을 질렀다. 광화문 인근 회사에 근무하는 김형준(47)씨는 "10년 넘게 출근하면서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며 "경찰이 시위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좋지만, 일반 시민들 생각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노총, 출근 시간 도로 점거 강행
건설노조는 지난 20일부터 '이주 노동자가 들어오면서 건설 현장 임금과 노동 조건이 악화됐다'고 주장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1박 2일 집회를 가졌다. 애초 경찰에는 출근 시간대를 피해 오전 9시부터 행진하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30분 먼저 행진에 나서면서 출근길 차량 정체가 더 심해졌다.
경찰은 그동안 출근 시간대 도심의 시위대 행진은 교통 혼잡을 이유로 금지해 왔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집회·시위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방침을 바꾸면서, 이날 평일 출근길 도로 점거 행진까지 허용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서울 도심에서 출근 시간 행진을 허용한 것은 최근 10년 동안 처음"이라고 했다. 일선 경찰 간부는 "이전 같으면 경찰청에서 평일 아침 행진을 금지하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지침이 내려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상방뇨에 불법 주정차까지
민노총 건설노조 일부 조합원은 경찰이 노숙 농성을 허용한 지역을 벗어나 밤샘 집회를 했다. 청계천이나 세종문화회관 계단 등에 드러누워 잠을 잤다. 박민희(32)씨는 "청계천에서 술 마시고 고성방가하는 걸 보니, 시위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21일 점심쯤 시위대가 해산한 뒤에도 세종문화회관 앞 대로변에는 종이상자와 페트병, 돗자리 조각 등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건설노조는 종로구청에 '쓰레기를 치워달라'고 요청했고, 구청에 청소비용 400만원을 지불할 예정이다. 청계천 인근 예금보험공사 빌딩 경비원은 "시위대가 건물 계단과 화장실 바닥에 소변을 눴다"며 "서울시에서 (시위대가) 화장실 쓸 곳 없다고 해 협조했더니 이렇게 만들어 놨다"고 말했다. 해산 때도 광화문 일대에 노조의 임대 버스 수십대가 불법 주정차를 하는 바람에 차량 소통이 막혔다.
◇"정치 파업은 국민 공감 못 얻어"
민노총은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등을 요구하며 '촛불 민심'을 언급했다. 이상진 민노총 부위원장은 "촛불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은 게 문재인 정권"이라며 "(총파업은) 촛불 혁명의 정신을 올곧게 계승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중 일부는 서울 중구 조선일보 업무동 앞으로 몰려왔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면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최근 본지 외부 기고문을 문제 삼았다. 김기완 홈플러스 노조 위원장은 "그런 내용을 사설로도 쓴다면 조선일보 간판을 떼어 버리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등을 공약했다. 취임 후에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등 노동계 친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학 금재호 교수는 "민노총은 이번 파업으로 2015년 도심 폭력 집회 이후 떨어진 위상을 회복하고, 새 정부에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폭력 사태로 한상균 위원장이 구속돼, 3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경제학과)는 "뚜렷한 노동 현안이 없는데, 정권 초기
민노총은 오는 30일 '사회적 총파업'을 예고했다. 하지만 파업 동력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 노조는 21일 민노총 총파업에 간부들만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측과의 임금 협상 등에 집중하기 위해 사실상 민노총 파업에는 동조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