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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영화 & 역사] 록키, 팍스 아메리카나의 현대판 로마인

최만섭 2017. 6. 15. 05:40

[남정욱의 영화 & 역사] 록키, 팍스 아메리카나의 현대판 로마인

  • 남정욱 작가

입력 : 2017.06.15 03:11

['록키']

'록키' 무대 필라델피아는 미국이 출범한 도시이고
伊 이민자 출신 주인공은 삶의 링 오르는 로마인 은유
현대의 帝國 되고픈 갈망과 인간의 도전정신 함께 찬미해

남정욱 작가
남정욱 작가
한 번 본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그건 누구 말대로 우연히 목격한 교통사고 같은 거다. 두 번, 세 번 볼 때부터 그때부터 영화다. 영화 속에 숨어 있는 상징과 은유가 하나둘씩 보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정이 안 가게 생긴 아이가 나와 양철로 만든 북을 두드리며 초음파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는 영화가 있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의 '양철북'이다. 비정상이 일상인 한 가족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상징이다. 누구는 유대인 박해를 누구는 폴란드의 몰락을 또 누군가는 나치 독일의 패망을 암시한다. 알고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당연히 재미도 두 배, 세 배 올라간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1980년대 할리우드를 양분한 절정의 라이벌이다. 그러나 스크린 밖 성적표는 확연하게 갈린다. 인생에서는 아널드가 승리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던 오스트리아 촌뜨기가 케네디 가문에 장가들면서 존재의 '계급'이 달라지더니 나중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자리까지 올랐다. 반면 실베스터의 인생은 우울하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몸매만 훌륭한 모델과 결혼하면서 인생에 '망조'가 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조연급 배우로 전락했다. 인생이 망가지면 몸도 따라 망가진다. 한때 섹스어필의 대명사였던 그의 입술은 과다한 약물 주사로 흉측한 살덩어리로 변했고 힘의 상징이었던 울퉁불퉁한 혈관은 정맥 질환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승자는 항상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그의 1976년 작 '록키'가 영화사(史)에서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1등일 때도 많다). 뒷골목 채권 추심원이 무패의 복싱 챔피언과 맞붙는 이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설정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희망의 근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록키'는 단지 복싱과 갱생(更生)의 이야기일까.

[남정욱의 영화 & 역사] 록키, 팍스 아메리카나의 현대판 로마인
/이철원 기자
'476년 로마는 멸망했다'고 역사가들은 쓰고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멸망이라고 하면 도시가 불타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나가야 맞는다. 476년 로마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뛰어놀았고 엄마들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빵을 구웠다. 다만 그해 9월 로마에서는 황제가 없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이민족의 장군들이 이탈리아 왕을 자칭했을 뿐이다. 로마는 멸망이 아니라 쇠퇴했고 대신 로마라는 시스템은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이후 등장한 프랑크 왕국은 포스트-로마다. 로마의 확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청교도들이 바다를 건너가 세운 미국은 아예 처음부터 로마 공화제를 모델로 삼았다. 그러니까 미국이라는 제국은 포스트-포스트-로마인 셈이다. 미국인들은 다섯 개의 도시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첫째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신의 도시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인간이 세운 것이 아닌 신의 손길이 빚은 '홀리 시티(거룩한 도성)'라고 믿는다. 둘째는 아테네다. 당연히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셋째는 로마다. 설명이 필요 없겠다. 넷째는 런던인데 대립과 충돌 대신 타협과 합의를 앞세운 국민 청원의 도시다. 마지막이 필라델피아다. 그리스어로 '형제 사랑'이라는 의미의 필라델피아는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헌법을 비준한 곳이다. 이 다섯 도시가 상징하는 것이 미국의 가치다. '록키'의 무대가 바로 필라델피아다. 우연일까. 영화를 만들어 본 사람은 다 안다. 지명(地名) 하나, 대사 하나, 등장인물의 이름 하나하나에도 제작자들은 반드시 의미를 담는다. 영화 속 록키는 순수한 미국인이 아니다. 이탈리아계 이민으로 명백하게 로마의 은유다.

루스벨트에서 시작해 케네디 시대에 정점을 찍은 미국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지미 카터에 와서 파경을 맞는다. 카터는 이상주의자였고 도덕주의자였다. 다른 나라와 외교를 맺을 때도 기준은 그 나라의 인권 상황이었다. 선함이 항상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1979년 11월 반미 이슬람 과격파들이 이란의 미국 대사관을 습격했고 12월에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은 손가락만 빨고 있었고 미국인들은 도덕과 인권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래서 등장한 이가 로널드 레이건이다(그런 의미에서 트럼프는 레이건의 재방송이다). 레이건은 힘의 외교와 반공으로 두 번의 임기를 밀고 나갔다. 그러니까 '록키'는 위대한 미국, 힘의 미국을 앙망하는
당시 미국인의 심정을 대변한 영화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록키'를 삐딱하게만 볼 필요는 없겠다. 록키는 이기기 위해 링에 오른 게 아니다. 그는 다만 마지막 순간까지 서 있기 위해 링에 올랐다.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는 대부분 버티기 위해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록키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라본다. 그것이 '록키'가 세월을 넘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4/20170614034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