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5.13 03:09
백악관, 대통령의 다음 날 일정 非보도 전제로 언론에 미리 알려
트럼프가 소셜미디어 등에 한 말, 대변인이 기자들에 적극 설명
우리 국민, 靑과의 소통에 목말라… 美 브리핑처럼 못할 이유 없어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새 정부가 미국 백악관의 일일 언론 브리핑 방식을 시도해봤으면 한다. 이전 정부에서도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거의 매일 브리핑을 했지만 대개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란 이름으로 하는 배경 설명이었다. 물론 그런 방식의 설명도 필요하다. 백악관도 마찬가지다. 카메라 끄고 하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대변인과 출입기자들이 현안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생중계해서 정부가 무엇을, 왜 하려고 하는가를 둘러싼 토론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기본이 된다. 이름은 언론 브리핑이지만 사실은 국민에게 하는 브리핑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언론 브리핑을 거의 매일 챙겨 본다고 한다.
백악관은 매일 밤 기자들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다음 날 대통령 일정을 보내준다. 상당히 구체적인 일정이 나온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오전에 정보보고를 받고, ○○ 보좌관을 만나고, 어떤 단체 사람들을 접견하고 ○○ 장관과 점심을 먹는다, 어느 나라 국가원수와 전화 통화를 하고 어떤 행사를 방문한다'는 일정이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여기에 기자단이 조를 짜서 대통령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취재해 공유한다. 비공개 행사는 어쩔 수 없지만, 대통령이 기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인다.
백악관 브리핑룸과 기자실은 겉에서 보면 백악관에 붙여 지은 가건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뉴스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안은 좌석이 마흔아홉 개밖에 안 돼 딱 소극장 분위기이다. 모든 좌석엔 매체 이름이 적혀 있어서, 좌석을 배정받지 못한 매체 기자들은 서서 브리핑을 들어야 한다. 논란거리가 많아 기자들이 몰려드는 날엔 만원 지하철을 탈 때처럼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야 가까스로 대변인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
오후 1시 반에 시작되는 백악관 언론 브리핑은 CNN과 폭스뉴스, MSNBC 등 뉴스 채널이 생중계한다. 하루 평균 360만~450만명이 시청한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온라인 시청자도 많다. 숀 스파이서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면 시청률이 평균 10% 이상 높아진다고 한다. 덕분에 스파이서 대변인은 미국 TV 방송의 낮시간대 스타가 됐다. 기자들도 자신이 할 질문을 다듬고 또 다듬는다. 브리핑이 생중계되니 대변인뿐 아니라 기자들도 시청자들의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언론 인터뷰를 34번쯤 했다. 거의 사나흘에 한 번꼴이다. 언론을 무시하고 적대시하지만 사실은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인터뷰는 하나같이 화제와 논란을 불러 미국 내외에서 톱 뉴스가 됐다. 한국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비용 요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북한 김정은과 만날 가능성 등은 모두 이런 인터뷰와 트위터를 통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워낙 언론에 말을 많이 하니 전통적인 의미의 대변인이 필요없는 정치인이다. 대신 그가 쏟아낸 말을 교통정리 하고 해석해줄 대변인이 필요하다. 백악관 언론 브리핑이 그 어느 대통령 때보다 붐비고 시청률이 높은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백악관 브리핑룸의 기자들은 끈질기게 묻고 대변인은 치열하게 대답한다. 목소리도 높이고 얼굴도 붉힌다. 그 과정을 보면 이 정부가 어디로 가려는지,
오랫동안 청와대와의 소통에 목말라온 국민 입장에선 새 정부의 그 어떤 소통 시도도 참신할 것이다. 하지만 잠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소통의 흐름을 구축할 수 있어야 건강하게 멀리 갈 수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착시킨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도 이렇게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