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IF] 사랑을 부르는 마법… 동물에겐 페로몬, 인간에겐 키스

최만섭 2017. 3. 25. 06:42

[IF] 사랑을 부르는 마법… 동물에겐 페로몬, 인간에겐 키스

입력 : 2017.03.25 03:02

이성을 냄새로 탐색하는 과정이었던 키스, 사랑의 상징이 되기까지…

키스하면 세상이 아름다워~
도파민·엔도르핀 나와 스트레스 줄어들어… 입속 박테리아 교환돼 면역력도 높아져

페로몬… 인간은 없다?
유력 후보였던 2개 물질 性的 매력 못 끌어올려
시각·청각·촉각으로 주로 교감하는 인간, 페로몬 나와도 효과 적어

동물 세계에는 강력한 사랑의 묘약이 존재한다. 바로 성(性)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는 '페로몬(pheromone)'이다. 상대가 내뿜은 페로몬을 맡은 동물은 거부할 겨를도 없이 즉각적으로 상대에게 이끌린다. 여왕벌이 수많은 무리를 이끌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도 페로몬 덕분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에게도 이런 힘을 가진 페로몬이 있을까. 혹시 인기가 많은 사람들이나 바람둥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페로몬과 같은 화학물질을 분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랜 기간 과학계에서 분분했던 '인간의 페로몬'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기존에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인간의 페로몬은 다 가짜라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인간의 페로몬 후보

서호주대 진화생물학과 연구팀은 지난 8일 "인간의 페로몬으로 알려졌던 물질들이 실제로는 성적(性的)인 매력을 높여주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영국왕립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오픈 사이언스'에 실렸다.

연구팀은 페로몬 후보 물질로 거론돼 온 '안드로스타디에논(AND)'과 '에스트라테트라에놀(EST)'이라는 두 종류의 인체 분비 물질을 시험했다. AND는 남성의 땀과 정액(精液)에 포함돼 있고 EST는 여성의 소변에 들어 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AND와 EST를 맡게 한 뒤 남녀를 구분할 수 없는 중성적인 얼굴을 보여줬다. 만약 AND와 EST가 페로몬처럼 성적 매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졌다면 남성은 중성적인 얼굴을 여성으로, 여성은 중성적인 얼굴을 남성으로 인식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실험 결과 AND와 EST는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연구를 이끈 리 시몬스 박사는 "이번 실험으로 AND와 EST는 더 이상 연구할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지금까지 나온 인간 페로몬에 대한 연구들은 부정적인 결과를 애써 무시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트리스탐 와이어트 박사는 "AND와 EST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임금님의 새 옷'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AND와 EST는 가장 유력한 인간 페로몬 후보였다. 앞서 중국 과학아카데미 연구팀과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이 AND와 EST가 인간의 페로몬이라는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마서 매클린톡 시카고대 교수는 "다른 사람의 스웨터에서 나온 AND를 극미량만 흡입해도 감정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실험 설계가 정밀하지 않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낸 과학자도 많다. 웬 조우 중국 과학아카데미 박사는 "완벽히 중성적인 얼굴을 제시하지 않았거나 스테로이드의 냄새가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동물의 본능이 진화한 '키스'

만약 인간에게 페로몬이 있다면 왜 동물이나 곤충과 달리 발견하기 어려운 것일까. 박주민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연구위원은 "동물과 사람은 종족 번식 방식이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물의 경우 후각(嗅覺)이 생존과 구성원 간 상호작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화학물질의 일종이자 후각으로 들어오는 페로몬이 중요한 성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다.

반면 사람은 후각보다는 상대방의 얼굴과 같은 시각(視覺), 목소리 등의 청각(聽覺), 서로를 만지면서 느끼는 촉각(觸覺)을 주로 사용해 이성과 교감한다. 또 감각뿐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학습도 친구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중요한 지표로 활용한다. 결국 인간은 후각으로 인지하는 페로몬이 있더라도 동물에서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박주민 연구위원은 "다만 후각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시기가 생식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젊은 성인 시절이라는 점은 인간이 완전히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하지만 후각 능력의 변화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인간 관계가 가능한 것은 인간이 진화하면서 얻은 새로운 교감 방식 덕분"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인간의 사랑 방식에는 동물과 비슷한 원초적인 경향이 상당수 남아있다. 사랑의 행위인 '키스(kiss·입맞춤)'가 대표적이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키스가 상대방이 자신의 짝인지 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서로 냄새를 맡았던 먼 조상들의 행동이 진화한 결과로 본다. 이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상대방의 냄새를 맡으며 탐색하지는 않지만 키스가 주는 이점이 계속 같은 행동을 갈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키스를 하 는 동안 나오는 도파민, 엔도르핀 등의 신경 전달 물질들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높여준다. 키스에서 일어나는 타액 교환을 통해 박테리아가 옮겨다니면서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키스는 미각·촉각·후각 등 세 가지 감각을 활성화시키는 작용도 한다. '달콤한 키스'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24/20170324019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