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소추-2016·12·9 표결

[朝鮮칼럼 The Column] 불복하면 안 되나요?

최만섭 2017. 3. 13. 07:00

[朝鮮칼럼 The Column] 불복하면 안 되나요?

  •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입력 : 2017.03.13 03:09

탄핵 결정에 대한 불만도 엄연한 의견이고 사상의 자유
不服을 행동으로 안 옮기면 통합 앞세워 단죄할 수 없어
나와 다른 생각 서로 인정하되 법질서 안에서 조화 이뤄야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대통령을 탄핵할지를 결정짓는 헌법재판소 결정보다 그 결정에 승복할지 여부에 온 관심이 집중되는 사회는 좀 이상하다. 어떤 정치인은 대통령에게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승복 선언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어떤 법조인은 불복 자체가 국기 문란이라며 비장함을 내비친다. 헌재(憲裁)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이며 의무라는 각계의 훈계도 이어진다. 나라를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사회 통합과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헌재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두가 분열을 걱정하고 파국을 염려한다.

뜨거운 양철 지붕처럼 달궈진 분위기를 아는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탄핵 전 반대파와 찬성파에게 각각 "당신은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인용될 경우와 기각될 경우 불복 여론을 계산해 불안한 숫자들을 생산했다. 그리고는 불복한다는 응답자에게는 다시 불복하는 강도와 함께 "불복 의사를 표현하겠느냐?"고 또 캐물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경찰은 10일 서울에 최상위 경계 태세인 갑호 비상을 내리고 '헌재 결정 불복 폭력 행위 엄정 대응'을 선언했다.

승복하겠다는 사람의 생각과 목소리는 하나인데, 불복하는 사람들은 모양도 이유도 제각각이다. 마치 '모든 행복한 가정은 유사하나 불행한 가정은 각각의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고 한 톨스토이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속의 단순 불복, 불복의 표현, 현시적 불복 선동, 암묵적 불복 선동, 집단적 불복 부추김, 불복 폭력,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불복에 기생하여 이익을 취하는 불복 장사꾼까지, 불복은 이렇게 종류도 제각각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건 이 중 상당 부분이 합법적이며 민주사회에서 용인되는 불복이라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 사상의 자유다. 의견을 가질 자유는 침해할 수도, 침해해서도 안 되는 양심의 영역이다. 16세기 말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불온한 사상을 허락하지 않는 이른바 '사상 검열법'을 폐지했다. 인간의 영혼과 비밀 생각에 창문을 내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 결과 당시 로마 교황청의 이단 심문소를 피해 여러 철학자와 천문학자들이 영국으로 건너와 가톨릭 교회의 이론적 권위에 도전하는 자유로운 사상을 펼쳤다. 아마 그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영국에 왔다면 그의 지동설은 조금 빨리 세상에 알려졌을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공상을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 자유가 있다. 문제는 그걸 어느 수위에서 드러내 표현하고 사회와 조화를 이루느냐이다.

헌재 결정에 불복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 문항의 거친 문구와 조사 결과를 놓고 불안해하는 모습에서 나는 한때 사상이 억압된 사회를 살았던 우리의 슬픈 그림자를 보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생각경찰'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단정하고 단죄하듯 우리의 마음속 생각이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까 두려워하며 불복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고 여기게 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불복의 반대말이 대통합이 되어버렸고, 그런 사회에서 불복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대통합을 해치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믿는 것 같다. 불복하는 마음과 불복의 행동, 행동 중에서도 불법 행동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도 말이다. 극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대개 특수한 목적이나 자기 이해가 걸린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여전히 그 둘을 혼동하는 것 같다.

헌법재판소에 결정을 맡겨놓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지를 고민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온 국민을 힘들게 한 이번 탄핵 정국에서 그래도 한 가지 순기능을 찾아본다면 법의 테두리와 시스템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왔다는 점이다. 기존의 탄핵 찬반 의견은 헌재가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생각이 바뀐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문제는 그런 생각을 어떻게 기존의 법질서와 조화시키며 함께 살아가느냐이다.

세상에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마땅히 취해야 하는 이성적 행동들이 많고, 심지어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울 때도 있다. 사람들이 모두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세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사상과 양심에 따른 생각은 자유롭게, 그러나 행동은 법과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하는 약속이 시 민사회의 다양성과 안전을 보장한다.

국민 통합이란 온 국민이 한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를 인정하며 조화롭게 행동할 때 이뤄진다. 생각이 다른 사람도 봐 넘기고, 생각과 다른 결정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게 가능해진다. 이번 탄핵 정국을 기점으로 우리의 사상도 근대화를 향해 한발 더 성숙해져야 한다. 이제 그 시작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2/2017031201724.html